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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Aug 27. 2024

난 이제부터 남자다

방학은 끝났지만 앞으로 꾸준히 어린이 책을 읽어볼 예정

이규희 글, 이영림 그림

  막내가 읽어보고 재밌다고 추천해 주었다. 사실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았다. 제목이나 표지가 너무 직관적이라 무슨 내용일지 뻔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날까 봐 읽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요즘 시대에도? 내가 어렸을 때도 그랬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여자아이들이 차별받는 현실이 싫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기 싫었던 이유와 같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기 전에 나는 한참 망설였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책을 덮고 한숨을 쉬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분노했던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출근을 앞둔 방학 말미에...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랑 살았는데 할머니는 확실히 남동생을 예뻐했다. 우리 집은 딸 둘 아들 하나였는데 나는 둘째 딸이었고 남동생은 남자였다. 엄마는 아들 낳으려고 아이를 셋 낳았다고 하셨다. 막내이자 아들이니 얼마나 예쁨을 받았을까. 예쁨을 받고 오냐오냐 키워진 아이는 현재... 아니, 중학교 때부터... 아... 아, 여기까지만 하자. 


  엄마는 이제야 조금 인정하시긴 한다. 본인이 남자와 여자에 대한 양육과 교육, 진로에 대한 다른 잣대를 두었다는 것을. 딸이라고 덜 사랑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엄마아빠는 딸과 아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엄마아빠 감사합니다. 다만 엄마나 아빠는 '양성평등'이라던가, '젠더감수성'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셨다. 그렇더라도 다름이나 개인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 무지로 인한 차별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아들은 서울로 대학을 보냈고, 아들보다 시험 잘 본 서울로 대학 가고 싶다던 딸에게는 지방에서 교대를 다니라고 권유하셨다. 나는 그 말을 따랐고. 어렸을 때 남동생이 나와 언니를 때리면 '맞을 짓을 했겠지'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남동생이 누나들을 때려도 무관심하셨다. 이건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다. 남자와 여자, 아들과 딸인 것을 떠나서 폭력은 안 되는 것임을 교육하셔야 했다. 할머니는 거기에 한 술 더 떠 아들 손자 편을 드셨다. 그 아들 손자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누나들을 때린 적이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다시 한번 전합니다. 


  직장에서의 성희롱, 성추행, 가정 내에서 차별 등 드러나는 것들 뿐 아니라 우리가 쓰는 말에서도 남성중심적 사고가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쓴 책 <엄마는 개인주의자>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세상의 언어는 상당히 남성중심적이다. 나는 경제, 주식, 부동산 유튜브를 즐겨 듣는데 진행자나 게스트들이 다들 이런 식이다. '아들에게 부동산을 물려줄 때', '아들에게 증여를 할 때', '우리 아들은 요즘 주식에 관심 많다', '아들이 집 없이 살아도 되겠냐'라고 말한다. 분명히 자식 중에 딸도 있을 텐데 일단 '자식=아들'로 인식하는 것 같다. 

 

  나야 이제 확실한 40대 여성으로서 그렇다 치자. 그런데 아직도 어린아이들이 '여자는', '남자는'이라는 틀속에서 말하고 행동하기를 강요받으며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이다. 심지어 현재 내 주변에 자신의 딸 얘기를 할 때나 어린 후배에게 '시집을 잘 가면 된다', '남자 잘 만나면 된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봤다. 아... 정말 할 말이 많은데 이와 같은 이야기는 <엄마는 개인주의자> 책에 다 써놨다. 시간 많으신 분은 읽어보시기를. 


  그렇다고 여자니까~ 하면서 뭘 못한다거나 피해자라고 외치기만 하기에는 뭔가 좀 떨떠름하다. 게다가 잘나고 멋진 여성들이 많다. 무엇보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보고 불합리한 차별에 대항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여자니까, 딸이니까 라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게으름과 두려움에 대한 핑계밖에 안 된다. 유력한 미국 대통령 후보가 '해리스'인데 어디 무력하게 앉아만 있나! 으쌰으쌰 해야지! 그러니 결국 열심히 살자는 말이 나오게 되는데...


  단순히 열심히만 살면 안 되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의심을 품고 따르지 말 것을 강조하고 싶다. 무시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난 이제부터 남자다> 책에서 할머니의 말과 행동을 적당히 무시하면 될 것 같은데 한 집에 사는 사람을 무시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 함정이다. 내가 무시하라는 말의 뜻은 이렇다. 대답은 '네~!'하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쉽나. 그것도 어린아이가. 이 책 주인공 수지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특히 아이로서 엄마를 무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수지엄마도 꽤 깊은 차별적 사고와 행동을 한다. 성인이 되면 부모 뜻을 무시하고 내 뜻대로 살아도 큰 문제가 없으며 중학생만 돼도 어느 정도 저항을 해보겠는데 이야기 속의 수지처럼 4학년 어린아이는 어떻게 엄마와 할머니를 무시하며 살겠는가. 책에서 아빠는 전형적인 방관자이자 그냥 허허 웃는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책 말미에서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꿋꿋이 버티며 살 길을 찾아가는 어린 수지가 불쌍했다. 


  작가 또한 한 아이의 글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보며 가슴이 아파서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수지엄마가 빛나는 초록색 반지를 당연한 듯 '며느리에게 물려주겠다'는 말을 할 때는 내가 다 화가 났다. 아니 왜? 며느리한테 물려줘? 딸한테 줘야지?! 한 번 더 안타까운 포인트는 현실에 이런 엄마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엄마를 싫어했던 딸들도 서서히 남성중심적 사고에 물들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남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면, 나는 과연 이러한 남성중심 사고와 세상의 프레임에서 자유로운가 스스로 묻게 된다. 나도 많이 세뇌당한 것 같다. 조금이나마 인지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내 딸들은 독립된 개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며 차별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 최소한 스스로 그 틀에 갇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밥은 스스로 먹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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