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름방학 어린이 책 읽기 프로젝트 11
개학을 이틀 앞둔 날이다(8월 19일 쓰는 글). 책을 85권 빌렸는데 겨우 11권 밖에 읽지 못했다. 어린이 책이니까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쓱쓱 읽지도 못했고 이것저것 하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방학 동안 바빴다. 핑계인가...?
<블랙아웃> 책은 어제 다 읽었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의 소재는 어린이책이 다룰법한 것이었다면 이번 책은 조금 다르다. 이 책은 정전이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도 스릴러, 범죄 추적, 재난영화를 좋아하고 책도 김유정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거 꼭 읽어야지 했었다. 전국이 정전으로 인해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물이 나오지 않고 가스도 나오지 않는다. 전기 없이 하루도 살기 힘든데 이와 같은 상황이 7일이나 계속된다. 이런 재난 속에서 주인공 동민이와 누나 동희 남매는 부모님도 없이 일주일을 버텨낸다.
많이 뚱뚱한 동민이, 그런 동민에게 필터 없이 말을 뱉어내는 진수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민이가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가 있는 은신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곳을 둘이 함께 찾아간다. 그러다 잠깐 들른 은행에서 정전이 시작된다. 지금 우리는 충전해서 쓰는 스마트폰, 노트북, 에어컨, 선풍기 등 거의 모든 게 전기로 돌아간다. 이야기 속에서 정전이 되는 때는 한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이다. 전기뿐 아니라 곧 물도 나오지 않고 가스도 나오지 않는다. 물이 나오지 않으니 대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못한다. 가스가 안 나오니 음식을 해 먹지 못하고 전기가 끊기니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 더위에 바로 상하게 된다. 사람들은 여행용 가스레인지에 부탄가스를 이용해서 밥을 해 먹는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곧 먹을 것도 물도 떨어지게 된다. 사람들이 마트로 몰리게 되니 경찰이 마트를 지키고 사람들은 차츰 화가 차오른다.
그 와중에 동민이와 진수는 몸이 다쳐 은신처에 혼자 남아 있게 된 하얀 아기 고양이를 돌보게 된다. 동민이가 집으로 데려와 돌보게 되는데 이미 약하게 태어난 데다 몸도 다쳤던 고양이는 불안해 보인다( **스포 주의** 결국 고양이는 죽게 되는데 이로 인해 동민이도 폭발하게 된다). 동민이와 동희의 부모님은 하필 이때 중국으로 출장을 가게 된다. 그래서 이 7일간의 재난상황을 아이들끼리 겪는다. 악조건 속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사람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어린이 소설임에도 상당히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랫집에 사는 진수네 엄마는 동민이엄마가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아서 대신 쌀로 가져가겠다며 아이들만 있는 집에 와서 동희로부터 쌀을 빼앗아간다. 동희와 동민이가 비상금으로 겨우 산 음식이 든 봉투를 누군가 날치기해 간다. 그래도 다치지 않고 성폭행이나 폭행을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일을 한 번 더 당하게 된다. 동희와 동민이는 고생 끝에 어떤 마트를 찾아가는데 마트에서 나와 집에 가는 길에 낯선 아저씨들한테 묻지마폭행을 당한다. 각목으로 맞고 마트에서 산 물건을 빼앗긴다. 성난 사람들과 몰려간 마트에서 넘어진 동희가 메고 있던 배낭을 어떤 아저씨가 잽싸게 벗겨간다. 경찰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하고 사람들을 지키기보다는 마트를 지키고 있다.
평소에 나는 물이나 전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가끔 생각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다큐를 보면 사람들이 물을 틀어놓고 양치질을 하거나 얼굴을 씻는다. 틀어놓은 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장면을 보면 나는 물이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쓸 물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씻고 머리 감고 손에 뭐가 묻으면 바로 비누로 씻어내고 과일과 채소를 씻는 물이다. 블랙아웃 속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사실 무엇보다 급한 건 똥, 오줌을 싸고 처리하는 것이다. 지금은 쉽게 물만 내리면 되는데 만약에 물이 없어지면...... 어렸을 때 단수가 되어 욕조에 물을 가득 받고 변기에 물을 쏟아 흘려보낸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때는 물을 받아놓았었는데 그런 것도 없이 물이 갑자기 안 나오면 어떻게 되지? 전기는? 핸드폰도 충전되지 않고 이 더위에 에어컨, 선풍기도 켤 수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평상심을 유지하고 나의 악함과 이기심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도 잠이 조금만 부족하거나 움직일 때 허리가 살짝 아파도 짜증을 낸다.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에 선풍기, 에어컨도 없고 씻지도 못하는데 아이들까지 건사할 수 있을까? 동민이네 집에서 쌀을 빼앗아간 진수엄마를 욕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곤란한 지경에 처하면 나보다 약하고 만만한 존재를 착취하고 화풀이를 하는 게 인간이다. 나도 소설 속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민이는 모두가 화를 내고 날카로워진 재난 상황에서 약하고 여린 존재, 아기 고양이를 돌본다. 아기 고양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나름의 분노도 표출한다. 하지만 동민이는 이 소설 속에서 그나마 중심을 잡는 편이다.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어려움 속에서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돌보고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동민이처럼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이 더 분노하고 이성을 잃어가는 이유 중에 하나는 마트에서 CCTV는 돌아가고 전광판에서 뉴스는 나온다는 것이다.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전기가 나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전광판에서 나오는 뉴스가 답답한 소리만 한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건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만 한다.
속보
전국 초유의 정전 사태
블랫아웃 엿새째
청와대 정전 복구 독려. 관련부처 문책
위기대응 비상대책위 경계경보 3단계 선포
원전 뇌물 수수 수사 중 전력 예보제 및
정전 대비 위기대응훈련 도입 제기
168쪽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가요??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떠올랐다. 원인규명과 대책은 세우지 못하고 어먼 곳에 책임을 덮어씌웠던 정부와 관계자들. 나는 그저 소설과 같은 블랙아웃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에어컨을 켜고 샤워를 하고 대소변을 보고 물을 탁 내릴 수 있는 현재에 안도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도 읽으면 좋을 책이다. 사실 지금까지 읽은 책 모두 그렇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준다. 배우는 것도 있고. 사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