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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s meaningless Mar 02. 2024

글쓰기를 하니까 변한 것(2/2)

왜 진정성 있는 사람이고 싶었을까. 패션이다.

왜 진정성 있는 사람이고 싶었을까. 패션이다. 계절이 바뀌면 사고싶은 옷이 보이듯. 글쓰기 동기는 그만큼이었다. 진솔한 사람이라 불리는 이미지는 걸치고 싶은 외투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5년 전 비슷한 동기로 책 읽기와 서평 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는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적합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느 날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책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멋진 문장을 구사한다고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다. 읽는 사람이 글쓴이의 마음과 생각을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써야 잘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표현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을 내면에 쌓아야 하고, 그것을 실감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표현할 가치를 쌓아라. 실감나게 표현해라. 글을 잘 쓴다는 조건이 내게는 없었다. 표현은 연습하면 된다. 문제는 가치다. 나는 어떤 가치를 쌓으며 살았나. 답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했다. 차라리 볼품없음을 드러내자. 그동안 어떻게 하면 멋진 순간을 보여줄까만 고민했다. 이제 반대의 길도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첫 이야기를 썼다. 관심받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내용.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 썼는데 그 주제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고백하는 글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이 방법 외엔 솔직해질 방법이 없었다. 용기만 내면 되는 일이었다. 그게 어려웠다.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일.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 일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직접 써보면 알 테다. 친구들과 후배들이 이 글을 본다고 생각하면 쉽사리 써지지 않는다. 나를 비웃지 않을까 두려웠다. 인파로 붐비는 거리 한복판. 발가벗고 서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무슨 변화가 생겼을까


차분함이 생겼다. 내 주변 사람이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라 그랬을까. 글을 쓰는 내내 신경이 곤두섰다. 거짓을 쓰면 마음에 찔렸다. 단어와 문장, 문장과 문단 사이로 진실함을 보이려 씨름했다.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일지 고민할수록 퇴고가 되풀이됐다. 퇴고를 거듭하니 공허가 드러났다. 늘어가는 글의 수가 곧 침잠의 시간이었다. 어디 가서 못 할 말을 대놓고 띄우니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예전보다 불필요하게 들뜨지 않게 되었다.


두 번째는 세파를 견딜 힘이 생겼다. 글을 쓰면 고민한다. 생각을 정리할수록 내 몸뚱이지만 다 아는 건 아니구나 느낀다. 지난날을 반성한다. 자성하는 시간이 늘수록 스스로와의 대화도 길어졌다. 나를 안다는 건 닻을 내리는 것과 같다. 흔들릴 수 있어도 떠내려가지 않는다. 글이 쌓일수록 닻이 묵직해졌다.


글을 계속 쓰니 책을 내었다. 주변에서 다르게 본다. 글의 구조가 보인다. 표현이 다양해졌다. 모두 좋지만 가장 크게 느낀 게 있다. 안정감이다. 관계에서 어느 정도 내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남을 좇지 않게 되었다. 나와 너의 처지가 다르다는 걸 진심으로 이해한다.


진정성 있는 사람이란 이미지. 그 옷을 입으려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제 와 보니 알겠다. 그런 옷은 입을 수 없다. 진정성에 도달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그래도 만족한다.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몇 걸음은 걸었다. 생각 없이 글만 썼으면 거리를 좁힐 수 없었을 테다. 나의 심연에 푹 빠져봐야 한다. 깊게도 들어가 보고 갈 수 있는 데까지 헤엄쳐봐야 한다. 그렇게 유영하다 보면 흩어졌던 나의 조각들이 보인다. 발견했다면 가까이 다가가자. 모두 나의 본모습이니까.


글을 쓰면 자연스레 검색을 자주 한다. 검색창에 패션을 쳐봤다. 4년도 더 된 기사가 나온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페트 별세.’ 그의 생애를 소개하며 첫 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옷이 당신에게 어울리는지 고민하기 전에, 당신이 그 옷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먼저 고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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