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의 시대 vs 잉여의 시대
25년 11월, 구글이 제미나이 3.0을 발표했다. 구글이 발표한 것처럼 이제 새로운 AI 시대가 개막되었다. 여전히 AI 기반의 무한 경쟁은 지속되겠으나 AI 초격차 전략은 이제 본격화되었고, 이러한 움직임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26년도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이 시점에서 돌아봐야 하는 질문이 있다. 더 늦기 전에 나는 그 질문을 모두에게 화두로 던지고 싶고 이러한 작은 파장이 앞으로 인류 공동체가 어떤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지 고민하는데 작은 기여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준비하지 않으면, 착취의 시대는 끝나고 잉여의 시대로 나아간다.
산업혁명, 과학혁명이 이전의 인류의 생산성은 대부분 "1차산업"에 기반하였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잉여생산물"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국가적, 계급적 투쟁은 있었을지라도 이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해서 "인간의 생산성"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잉여 생산물의 생산과 분배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계급들의 삶과 그저 하나의 노동 착취 수단으로서의 노예와 같은 계급들의 삶은 구분되어 있었으나 그것 조차도 개별 단위에서는 확실한 가치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인류는 "공존"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대의 가장 중요한 생산자본은 결국은 1차산업 생산물이 만들어지는 "영역"과 여기에 투입할 수 있는 인간 노동력이었고, 그렇기에 인류는 오랜 시간동안 "영역과 인간"을 더 넓고 많이 차지 하기 위한 끊임없는 전쟁과 투쟁을 해왔다.
기존의 계급은 변화에 대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었다. "영역"에 대한 생산자본 독과점화가 심화되면서 착취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결국 해당 국가는 무너졌고 새로운 국가로 대체되었다. 이는 대부분의 인간은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문제의식을 동일하게 가진 일정 규모가 변화에 대한 에너지를 형성하면 기존의 불합리함에 항거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변화에 대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폭력성의 규모라는 점이다. 기존의 국가나 계급은 불합리한 선택을 하더라도 이를 지키는 폭력을 군대라는 형태로 조직하고 착취 대상을 통제한다. 하지만 기존의 군대라고 해도 "조금 더 잘 훈련된, 조금 더 좋은 무기를 가진" 수준일 뿐이고 이에 대항하려는 에너지가 응집되는 순간 "규모적으로 유리한 착취 계급과 이를 이끄는 변화에 대한 선동 세력(새로운 권력층)"은 얼마든지 이러한 시스템을 바꿔낼 수 있고, 그게 우리가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해왔고 기록으로 배우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과학혁명이 시작된 이후의 양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기계화가 시작되면서 생산수단에 대한 변화가 시작된다. "영역"은 물론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가졌지만 1차 산업에서 만들어지는 생산물에 기술의 진보와 산업의 고도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된 이후 역사의 흐름은 일정하게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본격적인 일정한 비가역성을 가지는 K자형 양극화가 시작되었다는게 필자의 관점이다.
이 시점부터 기술의 진보와 산업의 고도화는 전체적인 부의 총량은 분명하게 늘려왔지만, 그 과실은 분배하는 시스템은 언제나 예외없이 자본과 기술을 가진자와 그렇지 못한자의 격차를 벌리는 K자형 궤적을 그려왔다.
산업혁명 이후에도 기존의 성장 동력인 영역 확대를 포기 못한 일부 제국주의 국가들의 다툼으로 인하여 인류는 1,2차 세계대전이과 핵무기라는 공멸적인 폭력이라는 끔찍한 이벤트를 경험한 이후 영역의 확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성장 동력의 정의를 바꾸게 된 이후부터의 역사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 이 명확하게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증기기관 정도의 변화와 달리 대량생산과 전기의 발명으로 인한 규모의 경제의 실현은 국가 간 기업 간의 격차까지도 극대화시켰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K자형 궤적의 양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제는 사회과학적 연구로조차 밝혀진 것처럼 "어느 국가"에서 태어나느냐가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주요 결정 요인이 되어버릴 정도까지 시대는 개인 단위, 조직 단위, 기업 단위, 국가 단위로 K자형 궤적을 그리고 있고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미시적인 이벤트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역사적 비가역성은 강화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더 이상 변화를 위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폭력성은 단위적인 공동체에서 발현되기는 불가능해졌다.
그저 너무 빠른 변화와 성장 속에서 벤치마크를 예전에 두며 그래도 지금의 극빈층조차도 예전 시대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에 살고 있다는 헛소리를 가끔씩 접하게 될 때가 있지만 그런 것조차도 이런 비가역적인 역사적 흐름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착시적인 사고"일 뿐이다.
시대별 K자형 양극화의 핵심 동인을 분류해보자면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역사는 기술이 노동을 대체할 때마다 생산자본(기술)을 가진 쪽은 급격히 상승하고, 노동력만 가진 쪽은 하락하는 K자형 패턴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왔다. 그럼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속도와 회복가능성
과거에는 새로운 산업이 생기면, 기존에 쇠퇴하는 산업도 존재했고, 하강곡선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올라갈 사다리가 어느 정도는 존재했다. 공장 노동자도 얼마든지 자신의 "성실성"에 따라 중산층이 될 수 있었고 격차는 점점 벌어지더라도 "독점적 생산자본"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자산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는 계속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다르다. S/W 기반의 AI 시대는 그리 두려운 시대는 아니다. 하강곡선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기회는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Physical AI 가 확대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달라진다.
우리는 쿠팡의 새벽 배송 문제를 얘기하고 있지만, 이마 아마존을 시작으로 빅테크는 인력 감축을 시작했다.
"새벽배송은 혁신 아닌 착취"…택배노조, 광화문 시민대행진 :: 공감언론 뉴시스 ::
“끝까지 버티던 애플마저”…정부·기업 영업 인력 대규모 감축|동아일보
이러한 변화에 끝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부터 명확한 화두를 던지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를 해나가지 않다면 앞으로 전개될 역사의 방향은 아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던 관계없이
다같이 함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착취의 역사였다.
Physical AI 까지 완성된 이후의 미래는 다르다.
차라리 착취 당하는 것은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지만
무용하다는 것은 시스템에서의 존재가치는 없다는 것이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실존하는 계급적 차이가 존재함에도 함께 할 수 있는(다르게 표현하면 생존시킨) 이유는 인도주의적인 차원, 우리 안에 선한 본성이 아니라 그것 역시 경제 공학적인 필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소 잔인하지만 사실에 가깝다.
생산자로서 공장과 물류센터, 운전대를 잡고, 청소도구를 들고 서비스를 제고하는 손이 필요했고, 이렇게 벌어들인 소득으로 다시금 소비하며 전체적인 규모의 성장에 기여하는 역할이라도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 착취의 대상이 되는 계급의 삶이었다면, 이제는 생산의 완전 대체가 일어나고, 노동소득을 상실한 구매력을 상실한 계층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다. 한계 수준의 계층은 앞으로 시스템 유지에 최소한의 필수 요소로서의 가치조차 상실하고 비용으로 작용할 뿐이다.
유발 하라리가 경고한 Useless Class 의 탄생이 그리 멀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생각보다 이런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 문제가 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걸까?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하여 "함께 생존"하자는 문제 의식을 잃어버린 순간, AI 디스토피아는 없다. AI 유토피아만 남을 뿐이다.
왜냐구?
생존한 계급에게 지구는 현실에 구현한 실질적인 유토피아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계급은 디스토피아를 외칠 수 없는 우주 속의 먼지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칠 수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럼 다음 글에서는 이미 나타나고 있는 전조 현상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눠보면 좋을 듯.
* 덧붙이는 추천 영화 - 엘리시움
Useless 계급은 지구에 남겨져 로봇보다도 못한 삶을 살게된 지구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좋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