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 브릿지를 보고 나서
산후조리원의 마지막 주말,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영화를 보러 다녀왔다. 007을 볼까 끝까지 고민하다가 결국에 선택한 영화는 믿고 보는 톰 행크스가 열연한 스파이 브릿지. 국내의 흥행성적은 다른 경쟁작들 때문인지 그리 높지 않지만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 리스트에 올리고 싶은 완성도 높고 생각할 꺼리를 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영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될 수 있으니, 보실 계획이 있는 분은 읽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 영화는 냉전시대에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이성이 마비되고 오로지 "민주주의 vs 공산주의" 의 대결구도 속에서 중요한 가치들이 무시되고 있던 시절,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소련의 스파이가 검거된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요식행위" 를 하기 위해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검사로 활약했던 제임스 도노반을 스파이의 변호사로 임명한다. 가족의 생계와 현실적인 성공을 위하여 이제는 "보험전문 변호사" 로 활동하지만, 법이 수호하고자 하는 올바른 가치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신념이 있는 그였기에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파이 "아벨" 의 변호사로 활동한다.
모두가 그에게 "사법적으로 공정한 절차적 대우" 를 받았음을 요구했을 뿐, "진정으로 변호하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론은 "사형" 으로 이미 정해져있었으며, 그가 올바른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 그를 임명한 사람들과 가족조차도 등을 돌리려고 한다. 또한, 국가마저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미쳐가는 시대에 올바른 이성을 가진 사람이였고, 적국의 군인이지만 조국을 배신하지 않고 올바른 정신을 가진 자신의 의뢰인 소련 스파이 아벨에게 존경의 감정까지 가지게 되었기에 최선을 다하여 그를 변론한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YES"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저 자신이 매일 비겁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뿐.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위대한 가치와 현실적인 어려움의 충돌 속에서 고뇌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초지일관 초탈한 모습을 보이는 스파이에게 하나의 가르침을 얻는다.
"Would it help?"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까?)
그리고, 그는 도노반을 향해 자신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얘기해주며 당신은 Standing Man 이라고 얘기해준다. 그 순간 현실의 어려움에 흔들리던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번 일으켜세우고 올바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신념을 지키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상당히 공허했겠지만, 감독은 그 가운데서 "올바른 목적" 을 달성하기 위해 "신념을 가진 철인" 의 방법론적인 모습도 함께 그려냈기 때문에 그 감동이 배가 된다.
1. 현실적인 타협을 두려워하지 말 것. 그것이 신념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사형 구형을 원할 때 그는 전략적인 선택을 한다. 국가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고 1심 법원은 헌법적인 가치보다 실정법 중심의 가치 판단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판사를 찾아가 "우리의 스파이가 소련에 잡혔을 때, 우리는 그가 어떤 대우를 받기를 바라겠는가? (신념적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 또한, 그들이 잡혔을 때 우리가 아델을 살려두면 '교환할 수 있는 수단' 으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전략적인 설득) 이를 통하여 적국과 세계에 미국의 진정한 위대함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설득하고 "30년형" 이라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낸다.
그저 그가 고루하게 신념만을 주장했다면 결코 이런 결과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올바른 신념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이 함께 있어야 함을 보여준 위대한 사람이였다.
그 결과에 포기하지 않고 "헌법적인 가치" 를 판단하는 대법원에 헌법소원을 통하여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가지는 위대함과 미국이 올바르게 서있을 수 있는 위대한 가치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나중에 아들이 성장했을 때 반드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그의 위대한 가치를 기각한다.)
2. 신념을 지키는 선택으로 인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30년 구형으로 인해 그는 전국적인 "역적" 이 된다. 출근 길에 그를 보는 모두의 시선은 당장이라도 달려와서 폭행할 것 같은 분위기다. 집까지 테러를 당하며 가족의 안전까지 위험에 처하고, 급진 보수주의적 일부 경찰은 시민의 보호라는 의무를 망각하고 그를 비난한다. 자신의 로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도노반을 스파이의 변호인으로 앞장세웠던 대표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하는 그를 더이상 지원하지 않고 그는 "왕따" 가 된다.
자식들도 부인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게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쉽게 소신있는 발언과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나 역시 그러한 선택을 하지 못해 하루하루를 비겁하게 살아가는 한명의 "정신승리자" 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수호하고자 하는 법의 가치와 직업으로 선택한 변호사로서의 신념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살아가지만 그러한 가치가 무너질 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더욱 비참해질 것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자와 추종하는 자, 그리고 그 시대가 잘못 흐르고 있을 때 올바르게 이끌어가려는 자로 구성된다. 올바르게 이끌어가려는 자의 대부분은 이 영화와는 다르게 결과적으로도 "비참한 삶과 고난" 을 겪게 된다. (최근 이랜드 비정규직 파업 사태를 이끌었던 위원장의 삶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나는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여전히 스스로에게 남아있는 숙제이다.
3. 신념을 지키는 것에는 "운" 도 필요한 법이다.
실제로 그의 주장대로 미국의 스파이가 소련에 잡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더불어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던 곳에서 동독지역에서 유학하던 미국 대학생이 스파이 혐의로 잡혀간다. 동독에서는 자신들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미국에게 협상력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그를 이용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국가의 역적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물론 이 때까지도 비밀이고, 잘못되었을 경우 모든 책임은 그가 져야하는 상황) 그는 일말의 고민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물론 가족에게는 비밀로 하고..
동독 지역에서 갱들에게 목숨도 위협당하며 코트도 빼앗기고, 소련의 전형적인 협상전략 및 동독의 담당자의 비우호적인 태도로 인하여 감옥에도 신세를 지게 되지만 올바른 신념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에는 어떠한 흔들림도 없었다. 국가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국민의 일부는 버리자고 할 때도 그는 어떻게 해서든 모두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을 이끌어낸다.
만약 미국의 스파이가 훈련받은대로 자폭을 하고 잡히지 않았다면? 아벨이 30년형을 모두 마치고 수감에서 풀려나는 상황이라면? 도노반의 삶은 비참한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렇듯이 신념을 지킨 자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려면 "운" 도 도와줘야 한다.
어떤 것이 더 우선시되는 것인지 우리가 판단할 영역은 아니지만, 노력하고 신념을 지켰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울부짖는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현실 직시는 반드시 필요하다.
시대를 잘못만나 적국의 국민으로 만났지만 누구보다 서로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존경심을 가진 친구의 마지막을 끝까지 바라보는 도노반의 모습. 다리를 건너기 전 아벨이 그에게 건넨 선물을 받으며 자신은 준비한 것이 없다고 말하자 적국의 땅에서 죽지 않고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아델은 "This is a gift." 라고 되뇌이며 다리를 건넌다.
이러한 신념을 함께 고민하고 밤새 토론하며 작은 변화의 달성을 위해서 인생을 나누는 멋진 친구를 만나는 것. 그리고 그 친구와 삶에서 이별이 다가왔을 때 당신을 만난 것만으로도 "그것이 나에게는 선물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인간관계를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람을 향할 수 있도록" 그것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