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모운 Jun 25. 2024

실패로 성공하기

처음 장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이 만류했다. 엄밀히 말하면 장사를 하기 전까진 나 역시 장사하려는 배우들을 말렸다. 배우가 연기를 해서 돈을 벌어야지, 장사나 선생으로 길이 틀어지면 온전히 배우로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잃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장사와 선생 일을 둘 다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는 주변 사람들이 배우로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다. 혹시나 포기할까 봐. 다른 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연기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편안한 생활에 젖어 낭만을 잊을까 그랬다. 그리고 나도 그 길을 따라가게 되진 않을까 두려웠다. 


"너 그러다 곧 포기하는 거야. 곧 죽어도 연기를 붙잡고 있어야 된다니까?" 


그들의 속사정도 모르면서 심한 말을 하기도 했다. 누군들 오래 꾼 꿈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함께 꿈을 꿔 온 친구에게 이제 다른 일을 하겠다고 고백하는 이의 마음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내가 범한 실수는 그들에게 응원을 해주지 못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힘겨운 배우 생활을 그만두거나 잠시 멈추고 다른 일을 하면 편히 살 거라 생각했던 것 또한 커다란 착각이었다. 비로소 나도 그 길을 따라 걷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같은 연기의 길이라도 직접 하는 것과 누군가를 지도하는 일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처음 차려 본 가게가 오픈과 동시에 가득 찰 거라는 착각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장사는 계속 본전을 겨우 쫓는 수준에 머물렀다. 매일같이 출근해도 본전 치기라니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하지만 꾸준히 버텼다. 언제든 촬영이 생기면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직원이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동업자를 떠나보내고 잠시 고민했다. 나도 그만둘까. 과연 미래가 있을까. 단역을 전전하더라도 연기만으로 버텨내는 게 맞는지, 언젠가 잘 되기만 한다면 안전장치처럼 나를 경제적으로 보호해 줄 가게를 하나 갖고 있는 것이 맞는지 매일 고민했다. 


한 번 더 버텼다. 함께 운영하는 저녁 멤버들이 생색 한 번 내지 않으면서 물심양면으로 날 도왔고, 몇 번의 개편으로 인해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메뉴가 구성되었다. 거기다 낮에 함께 일해주는 열정적인 동료들 덕에 힘을 내서 일할 수 있었다. 


이제는 제법 매장이 가득 차 있는 풍경을 자주 바라본다. 때로는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기도 하다. 이천이십일 년 구월에 오픈했으니 벌써 사 년 차다. 가족이 생기며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할 수단을 찾다 만난 첫 번째 기회였다. 이제는 꽤 많은 동료들이 서로 스케줄을 맞춰가며 근무하는 복작한 일터가 됐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꾸준히 채워나가고 있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는 일이, 주방의 더운 열기 속에서 팬을 돌리는 일이 제법 익숙해졌다. 가끔 드라마를 잘 봤다고 인사해 주는 손님을 맞이하면 더욱 힘이 난다. 


어쩌면 심심한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멋진 배우가 되는 원대한 꿈은 추억 속에 묻어두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 같다고. 주 5일 일하며 쉬는 날엔 맛집을 찾아다니다 집에서 푹 쉬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게에서 바쁘게 일하고, 마감 후 레슨실로 달려가 학생을 지도하고 나면 피로감보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피어오른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감사한 일이지만 정말로 지쳐도 계속하고 싶은 일,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언제든 불러만 준다면 당장 뛰어나갈 수 있는 일, 그런 희망을 주는 일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정말 즐겁고 벅차다. 


곧 그만두는 직원이 출연하는 연극을 함께 관람하고 다 같이 회식을 했다. 매장에 관련된 이야기가 시작이었지만 이내 연기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지는 대화를 바라보고 있자니 다들 연기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싶어 행복했다. 


이제는 출근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함부로 문을 닫을 수 없는 가게가 되었지만, 여전히 촬영으로 인해 '출근 불가'라고 적힌 타임 테이블을 보면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꿈을 이뤄나가는 모습에 나도 한 번 더 꿈을 크게 꾼다. 


"안녕하세요, 아스론가입니다. 낮 타임 모든 근무자가 배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촬영이 생기면 언제든 스케줄을 조정해 드립니다." 


아직 멀고 먼 길이지만 서른 너머 생긴 또 하나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하기 싫은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