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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Feb 16. 2024

볼빨간 사춘기의 스쿨오브락

볼빨간 사춘기는 고단하다.

그분이 오신 바람에 싸늘한 눈초리 유지하느라, 세상 시름을 몽땅 짊어지느라, 반항하는 청춘을 뽐내느라.

열 일 하기 참 바빠 보인다.

방학에 그런 아이 비위 맞추는 엄마 비위도 편할 리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운 중2 병앓이를 잠시나마 덜어낼 묘안은 무얼까.




방학이 끝나가고 겨울도 슬슬 막바지로 가고 있다.

다이어트에 피부미용에 아이돌 덕후, 맛집 발굴까지. 한시도 쉴 틈이 없는 청소년들.

엄마는 이렇게 숭숭 벌어지는 거리가 아쉽다.

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는 또 얼마나 급히 달려가고 우리 사이는 얼마나 더 벌어질까.

그러다 눈에 띈 옥외광고, 저거다!

스쿨오브락.

추천에 힘입어 전혀 내키지 않았으나 한번 봐볼까 해서 고른 오래된 영화 스쿨오브락.

깜짝 놀랄 만큼 힘을 얻고 열의에 찡했던 기억.


냉큼 뮤지컬 스쿨오브락을 예매했더니 웬걸.

노땡큐라고 가족끼리의 문화행사는 시크하게 거절한다.

이 상처, 어쩌지?




뒤늦게 그 질색하던 피아노를 치고 드럼 하는 아이는 새 학기 밴드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가족행사로는, 뮤지컬 관람으로는 어울림 권유가 씨알도 안 먹힌다.

드러머 한번 봐줘봐. 밴드 오디션에서 영감 팍 온 작품이라고 어필해 봐. 누구랑 보는 게 뭣이 중한데?

통했다.


https://www.sac.or.kr/site/main/show/show_view?SN=48556




예술의 전당 가는 날은 미세먼지 주의보로 앞이 뿌옇고 기침이 나오도록 탁했다.

그래도 따라와 주는 볼빨간 사춘기 의지에 감동받기로.

파리크라상에서 까다롭게 고르느라 몇 바퀴 도는 것도 꾹 참고 팸플릿 가져오느라 거북이 걸음마도 꾹 참고 착석했다.

엄만 아뭇소리도 내지 말라는 둥, 좌석에 몸 바짝 붙이라는 둥 안내직원 저리 가는 에티켓 폭풍 잔소리도 꾹 참았다.

그리고.


아이는 열광의 도가니로 제대로 볼 빨간 사춘기 2시간 40분(20분은 인터미션)의 짜릿한 시간을 즐겼다.

그것 봐, 뮤지컬은 무조건 빠진다니깐. 엄마 말 들으면 뭐 하나라도 얻고 간다는 말씀!





틴에이저들의 실공연은 프로 같다거나 빼어나지 않다.

헉 소리 날 수준급까지는 아니다. 그래서 좋았다.

어린아이답게 끌어 르는 뿜뿜 에너지들이 빛났다. 그래서 예뻤다.

우리 아이 어깨도 들썩이고 입꼬리도 쑤욱 올라가서 박수가 절로 나오는 도가니로 기꺼이 풍덩 빠지아이의 온 세상을 가진듯한 기운.

필 받아 볼 빨개진 사춘기가 그 순간은 얼마나 반짝반짝 소중하게 다가오던지.

공연은, 무대는, 라이브는.

이렇게 힘이 세다.



스쿨오브락은 사회인으로. 교사로는 함량미달인 자칭 라커 듀이가 명문학교에서 아이들을 망가뜨려가는 과정이다.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락버전 무늬랄까.

타의 모범을 보여 별스티커를 하나라도 더 붙이는 경쟁이 당연하고 짝을 눌러서 좋은 상급학교에 가는 게 목표이다.

이런 아이들에게서 책을, 성적을, 규율을 빼앗아 자유와 열정과 어린이다움을 넘치게 허락하는 듀이선생님.

클래식만큼 락도 아름다운 출구이며 이를 뿜어내고 폭발하는 성장기를 듀이선생님으로 인해 눈뜨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발돋움에 부흥하고 몰입하고 열광하는 내 볼빨간 사춘기 아이의 숨찬 기색에.

그래, 너희들 안에서 불이 나오다 물이 나오다 수분부족에 바짝 말랐다 홍수도 나겠지.

그렇게 질풍노도 끝에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스쿨오브락에서 꽃이 되고 힘이 되는 락처럼

볼빨간 아이에게도 꽃이 되고 힘이 되는 락같은 무언가가 뭉게뭉게 샘솟길.





공연장을 나와서 가족끼리 기념사진 찍자는 말에.

가족끼린 그런 거 안 하는 거야. 하는 듯한 싸한 표정.

돌아왔구나 그분이.



덧붙임.

예술의 전당에서 로렌차일드의 [요정처럼 생각하기] 작품전이 전시 중이다.

얼마 전 책 메릴포핀스를 아이와 로렌 차일 삽화로 읽었는데 생동감 만발한 그림에 책내용이 한층 살아나서 정말 좋았다.



방학중에 매일 붙어있느라 으르렁대는 오누이 남매라면 더욱 잘 어울릴 로렌차일드  눈호강 나들이 추천 드린다.


https://www.sac.or.kr/site/main/show/show_view?SN=62140#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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