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8

헤밍웨이가 숨쉬는 곳 론다

by 수필가 박찬선

아침 햇살이 세비야의 지붕 위를 맴돌고 있을 때, 우리는 론다를 향해 길을 떠났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마치 하나님께서 정성스럽게 그려 놓으신 한폭의 성화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올리브 나무들, 그 사이사이로 푸르게 물든 밀밭이 파도처럼 다가와 나의 마음을 삼켰다. 정신을 차릴 때 쯤 아몬드 나무들이 하얀 꽃을 피워 작은 눈송이처럼 들판을 수놓고 있었다. 겨울과 봄 사이 어딘가에 방황하던 봄의 숨결이 꽃들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사하라라 불리는 작은 마을을 지나고, 그라살레마 산맥을 넘어갈 때에는 길이 점점 좁아지고 구불구불해졌다. 산맥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은 더 짙어졌다, 고요한 침묵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이 길이 여행지가 아니라 오래전 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의 중심으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세비야에서 출발한지 시간 반이 지났을 때 론다에 도착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저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론다는 사람의 손과 자연이 함께 빚어낸 하나의 장엄한 무대처럼 보였다.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공원 길을 따라 투우 경기장으로 향했다. 길은 여행자들을 평온함으로 반기고 있었고, 바람은 싱그러웠다. 그러나 그 평온 속에는 오래된 역사의 그림자가 스며 있었고 투우 경기장 앞에 서자 맞은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한 인물이 있었는데 헤밍웨이였다. 그의 눈빛은 우리를 향해 있었고, 그 시선은 마치 이 도시의 기억을 모두 품고 있는 듯했다.

헤밍웨이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걸음이 이어질수록, 그의 작품 속 세계가 이 풍경과 겹쳐졌다.
스페인 내전의 비극, 인간의 고뇌,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그가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문장들이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가?”

이 질문은 결국 나를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도시의 절벽은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울렸던 수많은 종소리의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눈앞에 펼쳐진 누에보 다리, 절벽을 가로질러 세워진 높은 다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두 세계를 잇는 통로 같았다. 과거와 현재, 비극과 희망,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섭리를 연결하는 다리처럼 보였다. 깊은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자 아득한 높이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절벽 위에 서 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 존재......

이곳 론다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고, 수많은 이야기의 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투우가 시작될 때 울려 퍼지는 빠소도브레의 음악처럼, 이 도시는 언제나 긴장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흐르는 공간이었다. 삶과 죽음, 용기와 두려움이 교향곡처럼 교차하는 곳, 음악이 울릴 때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인 질문이 함께 울리고 있었다.

헤밍웨이가 이곳에서 느꼈던 영감은 단순한 문학적 상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이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는가?
결국 그 종소리는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울리는 것이리라.

누에보 다리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아래, 절벽 사이로 불어오는 깊은 울림이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순간 마음속에서 조용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주님, 이 종소리가 제 영혼을 향해 울리게 하소서.
세상의 역사와 비극 속에서도
결국 당신의 뜻을 향해 걸어가게 하소서.”

론다에 도착한 나는 한 도시를 본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질문과 마주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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