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7

빌라도의 집

by 수필가 박찬선


주일아침 여행자가 된 가족들이 과달키비르 강가의 공원에 앉았다. 강물은 유유히 흐르며 지나가는 시간처럼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여행 중이라도 주일은 여전히 주님의 날이다.
성전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강가의 바람이 예배의 찬송이 되었고, 하늘은 우리의 지붕이 되었다.

나는 조용히 성경을 펼쳤다.
본문은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제목은 "내 영혼은 지금 어디를 향하여 흐르고 있는가?”

세비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도, 수많은 관광객 사이에서도, 내 마음에는 계속 이 질문이 맴돌고 있었다.

우리는 찬양으로 예배의 문을 열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바벨론 강변에서 예배하던 에스겔 선지자의 마음이 다가왔다. 우리가 부른 찬양은 강물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았다.
이 땅의 아름다운 도시들, 찬란한 문화와 역사, 그 어떤 것과도 주님을 바꿀 수 없다는 고백이었다.

찬양은 깊어졌고 우리의 손은 하늘을 향해 들려져 있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눈앞에 펼쳐진 강, 하늘, 나무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이 찬송의 가사가 되었다.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다시 보았다.

여행길의 피곤함도, 미래에 대한 생각도,
사역과 삶의 무게도 잠시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힘이요 기쁨이요 소망임을 고백했다.

예배의 마지막은 통성기도였다. 강가에 앉아 있지만 우리의 기도는 강을 넘어, 도시를 넘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닿아 있었다.

“주님, 우리의 영혼이 세상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향해 달려가게 하옵소서.”

기도를 마쳤을 때 내 안에 한 문장이 또렷이 남았다.
내 영혼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방향이다.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가, 아니면 풍경을 향해 머무르는가?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빌라도의 집(필라토스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비야의 골목을 지나며 마음은 여전히 예배의 여운 속에 있었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섞인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지어진 무데하르 양식으로 지어진 집.
정원의 고요함 속에서 한 청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집은 한 귀족의 아들이
2년 동안 로마와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돌아온 뒤
깨달음을 얻고 지은 집이라고 전해진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더 깊이,
하나님을 찾아 떠났던 모든 사람들을 생각했다.

로마를 보고, 예루살렘을 보고,
수많은 성전과 유적을 보고 돌아온 그 청년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장소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거룩함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화려한 성전을 짓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정원과 묵상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집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외형은 평범하지만, 중심이 아름다운 내면을 향한 집, 정원을 걸으며 나는 다시 내 영혼에게 물었다.

“나는 어디를 향해 집을 짓고 있는가?”

사역의 집인가, 명예의 집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집인가.

과달키비르 강가의 예배와
필라토스의 집 정원이 하나의 메시지로 이어졌다.

강가에서 드린 예배는 방향을 묻는 시간이었고, 빌라도의 집은 그 방향으로 살아간 한 사람의 흔적 같았다.

빌립보서의 말씀처럼
나는 여전히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달려가는 사람이다.
여행 중에도, 사역 중에도, 가정 속에서도
내 영혼은 계속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세비야의 아름다움이 나를 붙잡으려 할 때,
나는 다시 고백한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강가의 예배, 가족들의 찬양,
그리고 조용한 정원의 묵상 속에서
주님은 내게 다시 말씀하시는 듯했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

오늘도 내 영혼은
과달키비르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그 방향은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나의 힘이요, 기쁨이요,
그리고 영원한 참 소망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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