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10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

by 수필가 박찬선


말라가의 야자수를 뒤로하고 네르하를 향해 출발했다. 자동차로 달리기 시작한 지 45분, 드디어 네르하에 도착했다.
네르하의 바다는 유리처럼 맑았다.
스페인의 왕 알폰소 13세가 이곳을 내려다보며 “유럽의 발코니”라 불렀다는데 과장이 아니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발코니에 서니 에메랄드 빛의 지중해는 끝없이 열려 있었고, 하늘로 향한 길을 만들고 있었다

네르하 해변가로 열려있는 계단을 내려와 바닷가에 앉았다. 발밑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작은 돌들이 깔려 있었다. 파도에 젖은 자갈들은 햇빛을 머금어 겨울밤에 빛나는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파도가 혀를 내밀어 살짝살짝 흔들 때마다 모차르트의 리듬이 탄생했다.

수정같이 맑은 물이 조용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양말을 벗고 맨발로 바다에 들어갔다. 발끝에 닿는 싱그러움이 심장을 깨웠다. 바다는 말없이 발을 감싸며, 먼 길을 날아온 나그네를 맞이하듯 부드럽게 흔들렸다. 손을 내밀어 다가오는 파도를 밟으며 떠밀려온 해초를 건져 올렸다. 부드럽고 짭조름한 향이 코끝을 스치자, 온 바다가 영혼 깊이 녹아 들어왔다.

바닷가에 널브러져 있는 작은 돌을 집어 올렸다. 하얀 바탕에 나무 모양의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다. 자연이 붓이 되고 바다가 화가가 되어 그려진 것이다.

아이들은 해변에서 뛰어놀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파도보다 맑았고, 그 위로 갈매기들은 춤을 추듯 하늘을 맴돌았다. 아이들의 웃음과 갈매기의 날갯짓이 하모니를 만들어 해변 전체를 살아 숨 쉬게 했다.

모래밭 구석진 곳에 우뚝 솟은 작은 바위에 앉아 반짝이는 조약돌 몇 개를 주머니에 담았다. 이곳의 햇살과 파도의 향취, 그리고 바다를 담아 가고 싶어서였다.

네르하는 나를 붙잡고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걸음을 떼려 할 때마다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바다는 끝없이 손짓하며 “조금만 더 머물다 가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하지만 순례자의 길은 멈출 수 없었다. 다시 길을 나섰다.

네르하를 떠나 프리힐리아나로 향했다.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마을 전체가 눈부신 흰색으로 나를 맞이했다.
오래전 이슬람의 침략과 역사 속의 격랑 속에서, 유대인과 무슬림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고 한다. 피난과 공존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오늘의 마을을 이룬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지중해의 뜨거운 여름 햇살을 견디기 위해 집도, 담펴락도, 하얗게 칠했다고 한다. 흰색은 더위를 견디며 살아가려는 삶의 지혜였던 것이다.

네르하의 바다가 마음을 흔들어 깨웠다면,
프리힐리아나의 하얀 마을은 가만히 이렇게 속삭였다.

“여행은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색을 바꾸는 것이다.”

바다에서 담은 조약돌이 주머니 속에서 조용히 부딪혔다.

“바다는 떠나왔지만, 내안에 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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