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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을 출 때 무엇을 느끼는가

<뇌는 춤추고 싶다> 속 문장들이 알려주는 춤의 소중함

by C W

중학교 1학년 때 댄스동아리 오디션 준비를 같이 하자는 친구의 제안으로 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댄스동아리는 관심받는 걸 무서워하고 반에서 존재감 없던 내 인생의 첫 변환점이 되었다. 그땐 유명한 춤을 따라 추는 게 동아리 활동의 전부였다. 하지만 몸 쓰는 걸 전혀 하지 못한 나는 안무 따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려서 집에서 남들의 몇 배를 연습해 갔다. 학원 갔다가 9시에 돌아와 새벽 1시까지 연습하고 영상 피드백 하며 내 춤을 계속 고쳐나갔다. 이 시간은 내가 나랑 친해질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고, 덕분에 부원들에게 칭찬도 들으며 자신감이 많이 생기고 밝아졌다.


고등학생 땐 1학년 장기자랑 말고는 춤을 추지 않았다. 평범하게 공부하고 생기부를 채우며 입시 기간을 보냈다. 이런 긴 시간 보낸 후, 대학교에 합격하자마자 찾아봤던 동아리가 댄스동아리였다.


다시 다른 사람들과 춤을 추고 싶었다.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여보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 핫했던 스우파, 스걸파도 안 봐서 스트릿댄스를 몰랐는데 일단 들어갔다. 유튜브를 보며 따로 장르에 대해 공부했는데 알면 알수록 왁킹이라는 장르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국 왁킹 장르로 활동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22학번 새내기 때 인생의 두 번째 변환점을 만나게 되었다.


*왁킹 - 팔 동작, 포즈 위주로 표현하는 장르, 디스코 노래에 맞춰서 팔을 뻗는 왁(waack)이 장르화 된 것.

스크린샷 2024-02-03 204731.png youtube 'waacking sharing' 립제이 춤 영상



"재미있게도 춤을 추면 이 세 가지가 모두 일어납니다. 사람을 만나고, 몸을 움직이고 감정을 표현하며 이해하죠. 그리고 리듬에 맞추어 나 자신을 변화해 가는 법을 배웁니다. 멈춰야 하는 순간에 멈추고, 빠른 스텝을 밝아야 하는 순간이 언젠인지 알게 되죠." - <뇌는 춤추고 싶다> 중


대학교에서는 다른 춤을 따라하는 걸 넘어 춤으로 내가 나 자신을 표현하게 되었다. 나를 표현하는 건 현대무용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는데 스트릿댄스도 표현력이 굉장히 중요했다. 기본기를 배운 뒤에 그 동작들로 프리스타일을 했다.


1시간 짧게 배우고 케이팝 노래를 틀어준 뒤

"자 이제 프리스타일 할 거니까 배운 동작들로 자유롭게 춤춰보세요" 라면서 블랙핑크 노래를 틀어주셨다.

'남의 춤을 따라 추기만 했는데 갑자기 자유롭게 춤을 추라고???' 당연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근데 추라니까.. 일단 나갔다. 박자도 몰랐다. 배운 걸 열심히 나열해가며 팔만 돌렸다.

그런데도 언니는 칭찬해주셨다.



처음엔 식음땀이 나고 내 차례가 올 때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흥분과 떨림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해보고 싶었다. 프리스타일을 해보고 싶었다.


댄서들 영상을 몇 시간 동안 보면서 어떻게 팔 흐름을 이어나가는지, 노래는 댄서들마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살펴봤다. 이동할 때는 왁킹 노래인 디스코 음악들을 계속 들으면서 리듬, 노래의 포인트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머릿속이 전부 다 왁킹이었다. 점차 내가 아는 동작들을 연결해서 하나의 춤을 완성시키기 시작했다.

image02.png '스트릿 우먼 파이터' 립제이 피넛 프리스타일 배틀 영상


"춤도 말과 같이 어느 순간에 충분한 어휘력, 즉 스텝을 익히면 첫 걸음마를 떼는 것처럼 오래 생각할 필요업시 그냥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스켑 하나하나가 문장이 되고, 움직임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휘가 늘면 할 수 있는 말이 많아지듯, 동작들이 늘어나면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가 풍부해진다. 똑같은 이야기도 서로 다른 단어들로 전달할 수 있듯, 꼭 같은 동작들이 아니어도 표현이 가능해진다. " - <뇌는 춤추고 싶다> 중


프리스타일을 접하게 된 후로, 정해진 춤보다 프리스타일에 더 끌리게 됐다. 춤이 예술이라는 걸 프리스타일 덕분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프리스타일은 내가 잘 추는지, 못 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춤을 ‘춘다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손짓 하나하나가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되고 나만의 정답이 된다. 틀에 박힌 방식과 정답에서 벗어나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게 춤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아이돌 춤, 유명한 크루의 춤을 커버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큰 문제는 춤을 알고 있는 곡이 아닌 다른 노래가 나오면 ‘어, 나 이 노래의 춤은 모르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춤추기를 멈춘다. 레시피 밖의 춤은 요리할 줄 모르게 된다. 내 춤을 추게 되면, 동작들을 하나하나 익혀나가면 만들 수 있는 스토리가 다채로워진다. 나만의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예전엔 ‘아 이 노래에 춤추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댄서들의 안무 영상을 찾아봤다. 따라하는 것밖에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냥 혼자 프리스타일도 해보고 그러다 괜찮은 안무가 있으면 루틴도 만들어본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나의 동작으로 춤을 만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춤에 있어서 많이 자유로워졌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어떤 노래가 나오든 리듬, 노래 스타일을 찾고 내 춤으로 그 노래를 표현해보려 한다.


전공 공부를 하느라 정신없을 때, 춤은 앞만 보고 달리는 중간중간 하늘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잠시나마 벗어던지고 하늘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이 노래엔 어떻게 춰야 하나?’를 고민하고, 디스코 노래 듣고, 영상도 보면서 나는 하늘을 즐긴다.


KakaoTalk_20240203_210022004.jpg 디렉터로 안무 만들었던 무대


하지만 즐기려고 노력을 해도 욕심이 많이 생긴다. 취미 생활이어도 잘하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으니 말이다. 말은 지금 번지르르 하게 해도 프리스타일을 하다가 막힌 적도 많고, 춤선이 예쁜 것도 아니고 노래에 대한 표현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춤을 보면서 내 춤은 왜 이럴까 한탄한 적도 있다. 끝도 없이 생기는 욕심과 현생에 치여 살아 그 욕심을 채우지 못하는 연습량 때문에 우울한 적도 많았다. 즐겁게 하고 싶다는 내 초심을 잃고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프로 댄서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즐거움 없이 춤을 췄을 때가 있었지만 그 속에서 배우는 것도 많았다.


"우리가 목표를 너무 높이 설정하면 성공 체험은 오히려 줄어든다. 이 때문에 더 작은 구간 목표들을 설정해서 계속 밀고나가는 데 필요한 도파민 효과를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 - <뇌는 춤추고 싶다> 중


가장 큰 배움은 당연히 '시작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프리스타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하지 않으면, 절대 늘지 않는다. 일련의 동작들을 셀 수도 없이 반복해야 그것이 연결되어 비로소 내 춤을, 노래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쁘게 연결되기 전까지는 분명 꼬이고 끊어지고 엉키고 못생겼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런 내 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춤을 사랑하지 않으면 영상 속뿐만 아니라 거울 속 내 모습도 싫은 법이다. 이렇게 두 번째 배움이 나온다. '내 춤을 사랑해야 한다' 내가 춤을 추면서 느낀 중요한 포인트이다.


가끔 내 영상을 보는 것도, 내 춤을 고치는 것도 싫었다. 그러니 실력은 당연히 늘지 않았고 그 춤은 더더욱 보기 싫었다. 이 과정이 악순환이 되다 보니 날 즐겁게 했던 춤이 날 우울하게 한 적이 꽤 있었다. 내 춤을 사랑하는 건 말로 백 번 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계속 추면서 내 춤과 친해져야 한다. '아 나 꽤 추네?' 이런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춰야 한다. 그리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자신감이 없다면, 내 노력으로 자신감을 만들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한다. 이건 춤뿐만 아니다. 내가 하는 일, 좋아하는 취미 모두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 자존감이 채워진다.


384780013_18384284242000277_2463235149093183901_n.jpg?_nc_cat=108&ccb=1-7&_nc_sid=3635dc&_nc_aid=0&_nc_ohc=itE_NxtP5K4AX9DTA_8&_nc_ht=scontent-ssn1-1.xx&oh=00_AfAsT0wAGUkUDdKAlRrv-zOy1RQiDLeOaoxg0TwcXziEXg&oe=65C294CC Line up 8 배틀 사진, 출처 : 라인업 페이스북


댄서들의 SNS를 보면 항상 자신의 춤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감정을 말로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한 마디의 언급 없이도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춤을 사랑하는지가 보인다. 난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재능과 엄청난 노력이 섞여 나온 자신만의 결실을 사랑하는 모습이 말이다. 수업을 들을 때도 순수하고 밝으신 선생님들의 모습 덕분에 신선한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댄서들 뿐만 아니라 대학씬의 여러 동기, 선배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모두 그들의 끝도 없는 노력과 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자신감이겠지.


해외 전공연수 갔을 때 무용실에서 연습

"춤추기에서는 어떤 스텝이 '올바르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다고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물론 프로 무용수들에게는 안무에 정해진 대로 동작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춤추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표현이며 열정이다. 남들이 지켜본다는 사실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춤을 출 때 무엇을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뇌는 춤추고 싶다> 중





"나는 춤을 출 때 무엇을 느끼는가?"






만일 단지 짧은 기간 동안 살아야 한다면
이 생에서 내가 사랑한 모든 사람들을 찾아보리라.
그리고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확실히 말하리라.
덜 후회하고 더 행동하리라.
또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두 불러봐야지.
아, 나는 춤을 추리라.
나는 밤새도록 춤을 추리라. (...)

- 작자 미상, 존 포엘 신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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