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움출판사. “사카린처럼 쓴, 사업 홍보물”
최근 책읽기가 더뎌져서, 작정하고 1박2일의 독서여행을 떠났다.
챙겨간 책은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김소영의《진작 할 걸 그랬어》, 배지영의 《한상의 동네서점》이었다. 읽은 순서대로 나열했다.
새벽 세 시, 챙겨간 마지막 책을 펼쳤을 때에서야 알게 됐다. 이 책은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관한 책이란 걸 말이다. 공교롭게도 여행지는 군산이었고, 읽어야 할 책은 군산 한길문고의 상주작가 배지영의 글이었다는 것이 새벽의 감성에 묘한 울림을 주었으나...
읽는 내내 사카린이 생각났다.
사카린은 엄청 달다. 김치나 깍두기를 담글 때는 물론이고, 옥수수를 삶을 때도 사카린을 사용하는데, 이게 참 신세계다. 어린 시절부터 미원과 뉴슈가에 익숙해진 나의 혀에는 사카린의 단맛은 거부감이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사카린을 희석하지 않으면 엄청 쓰다. 바로 혀에 대면 위험할 정도다.
10년 전쯤인가 인터넷에서 본 짤이 생각났다.
“한미FTA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한 90%가 거지 된다던데, 그럼 막 밖에서 야영 같은 분위기잖아요. 밤에 왠지 재밌을 듯”하다는 말에, “개새끼 거참 심하게 낙천적”이라고 자조적인 댓글이 달린 짤 말이다. 네이버 댓글이 다른 커뮤니티로 넘어가면서 또 한 줄이 추가된다. “해맑은 두뇌.”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며,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관한 글이다. 에세이라기보다는 사업보고서에 첨부하는 후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뒷맛이 씁쓸할 정도로 찬양 일색의 글들이 중복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상주작가에계는
- 사업 참여기간에 집필활동 유지
- 사업 종료 후 사업주관기관에 작품 활동 실적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문학작가
- 본 사업의 후기 작성이 가능한 문학작가(사업 백서에 수록)
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책을 쓰면 1타 3피가 될 수 있다. 컨설턴트 입장에서는 원소스 멀티유즈의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경제활동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가 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도 응모해 선정됐다. 이쯤 되면 성공적인 비즈니스모델을 확립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이 책에서 문학적 성과는 1도 찾기 힘들다.
평이하고 친근감 있지만 문학미를 이룩하지는 못한 짠내 나는 문장들 하며, 당의정을 만들려다가 사카린 범벅을 만들어 놓은 쓴내 나는 이야기들도 그렇거니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한계서껀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덮었던 책장을 다시 펼쳐들었던 이유는 지원사업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교과서로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은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이용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지원 사업이라서, 대부분의 국가 지원 사업과 마찬가지의 구조를 갖는다. 지원 자금은 소모성 자금으로 일정 사업을 진행할 때 필요한 지불해야 하는 대가에 쓰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처음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돈을 꼬불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아 불만들이 높다. 조장업무는 많은데 지원 자금은 충분하지 않다 싶어서, 이 놈의 사업을 또 해야 하나 볼멘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용처가 잘못됐다며 토해내란 소리까지 듣다 보면, 욕이 나오는 건 인지상정일 테다.
그런데 자주 하다 보다 보면 꼼수는 늘어난다. 지원사업 중에는 자부담 20%와 부가세를 포함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지원사업을 수혜한 업체는 바로 갑질을 시작한다. 하청업체에게 “자부담과 부가세를 총액에 알아서 맞춰 달라”고 주문하게 된다. 표준화된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가짜 견적서와 부풀린 영수증이 일상이다. 그렇게 수혜업체는 모든 비용을 하청업체에 떠넘긴다. 더 웃기는 건,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고, 지원 사업의 수혜자들이 반복해서 수혜를 받게 된다. 모르는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받아먹을 생각을 못한다.
우야든동,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은 꽤나 규모가 있는 지원사업이다 보니 욕심을 내볼 만하다. 문학거점서점과 작은서점 2개소에 각각 7개월간 매달 80만원의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하고, 이 프로그램을 운영할 코디네이터인 ‘상주문학작가’의 인건비와 4대보험료를 지원해준다. 그뿐이랴, 월 2회의 파견문학작가 사례비 30만원도 지원해준다. 자체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동네책방이라면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2021년도 사업은 연속 10개소, 신규 10개소를 모집했으나, 결과는 연속 13개소와 신규 7개소로 결정됐다. 사업이 처음 시작된 2018년 이후로 군산의 한길문고와 배지영 작가는 계속해서 수혜하고 있다. 역시나 먹어 본 놈은 다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도 꽤나 짭짤한 사업이다. 편당 출판제작지원금 600만원에 저작상금 300만원까지 지원해 준다. 1쇄 1000부 출판 정도의 비용은 충분한 수준이다. 여기에 “선정작 발간도서는 표지에 우수출판콘텐츠 인증마크를, 판권란에 선정 사실 문구를 의무 표기”해야 한다는 단서규정이 있지만, 이를 사양할 출판사와 저자는 없다. 그런 거 없어서 못 다는 책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에, 훈장 하나까지 달아준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