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5. 싱긋. 2024.
매년 트렌드 분석서를 몇 권 읽습니다.
김난도 패밀리의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와 이노션의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시리즈’는 반드시 사서 읽어 봤습니다. 제가 보기에, 매크로 트렌드 분석은 ‘트렌드 코리아’가 좋고, 마케팅 측면에 특화된 마이크로 트렌트 분석은 ‘트렌드 뒷담화’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김용섭, 대학내일20대연구소나 마크로밀엠브레인의 분석서도 손에 닿으면 펼쳐보곤 했습니다.
트렌드 분석서를 읽는 이유는 별 거 없습니다. 매일같이 접하는 정보들을 범주화하다 보면, 결국 트렌드 분석이 되곤 합니다. 꽤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서,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수고로움을 대신해 주는 게 바로 트렌드 분석서입니다.
혹자들은 별 변화 없는 메가 트렌드를 쓸데없이 마이크로 트렌드로 변주하면서, '글을 팔아먹는다'라고 비판하곤 합니다. 그래서 책조차 읽지 않지요. 사실 보통 사람들에겐 트렌드 분석서의 미시적 분석은 '쓸 데'가 없긴 합니다. 쓸모를 찾는다면 굳이 읽어볼 필요가 없긴 합니다. 책을 읽어봐야, 그저 우리 주변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생각해 보는, 실용적이지 않은 고민에 도움을 줄 뿐입니다.
아직 마케팅 학술 용어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트렌드는 생존주기(survival period)에 따라 마이크로 트렌드, 매크로 트렌드, 메가 트렌드로 구분하는 듯합니다. 혹은 범주(category)의 크기에 따라서도 적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분석 대상이 무엇이 되었건, 미시적으로 접근하면 기간적으로는 단기적일 수밖에 없고, 범주는 좁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범주를 확장하면 그 대상의 관찰 기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생존주기와 범주의 크기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매크로 트렌드 분석이 ‘똥망’입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저자가 무려 20명이나 되는 공저입니다. 별책까지 포함해 20개의 챕터를 ‘자기 꼴리는 대로’ 쓰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 관점이 존재할 수 없는 태생적인 약점이 존재한다는 거죠. 16개의 마이크로 트렌트와 ‘쿨 개념 분석’ 그리고 별책의 공간 트렌드 분석 3종을 각자 썼다는 겁니다. 그래서 중복되는 발언들이 꽤나 많습니다. 게다가 마이크로 트렌드 분석에 집중하다 보니, 최근 2~3년에 걸쳐서 초기 단계의 매크로 트렌드에 겹치는 부분은 ‘어디서 읽어본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단언컨대, 어디서 읽어본 것이 맞습니다.
네 가지 파트로 나누고 각 파트마다 4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긴 합니다만, 파트 자체의 범주화가 갖는 의미는 없습니다. ‘놀이’, ‘일상’, ‘세상’, ‘마케팅’이란 카테고리에 욱여넣긴 하지만, 매크로 트렌드로 재분석해보면 매년 달라집니다. 매년 빠질 수가 없는 세대 담론은 해가 바뀌면 카테고리도 바뀝니다. 20명의 공저자에 의해 쓰이는 책이 가질 수밖에 없는 ‘목차 없음’이란 태생적 한계입니다.
책의 세세한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면, 크게 눈여겨 볼만한 마이크로 트렌드와 앞으로 몇 년간 더 고민이 이루어져야 하는 매크로 트렌드 그리고 메가 트렌드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영속적인 테마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메가 트렌드를 살펴보자면, 역시나 세대 담론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세대 담론이 재미있는 부분이 변할 것 없는 구조 속에서 그 구성인자들은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단 겁니다. 연령대라는 틀은 변하지 않지만, 그 틀 안에 있던 사람들은 나이를 먹고 다음 틀로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20년 전에는 20대였던 이들이 이제는 40대가 됐고, 20년 후에는 60대가 됩니다. 동시대성(Gleichzeitkeit)을 공유하면서도 차별적으로 체득하는 각자 다른 세대가 시간이 흐르면서 다음 연령대로 이동하기 때문에, 같은 세대이면서도 다른 특질을 가진 세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트렌드 분석에서 매년 빠질 수가 없습니다. 메가 트렌드를 넘어선 영속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매크로 트렌드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트렌드로 보여줍니다. 이를 테면 노인세대라는 메가 트렌드를 다룸에 있어서, 초고령사회 진입이란 매크로 트렌드를 다루지 않을 수 없고, 그 와중에 노인세대의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마이크로 트렌드는 꽤나 심각한 문제로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 세대’라는 특정 연령대도 존재합니다. 미성년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재생산 노동’에 필수적으로 동원되는 시기에 도래한 연령대 말이죠. 아이세대는 α세대, 부모 세대는 밀레니얼세대(또는 Y세대)라 불리는 특정 시기 출생자들로 채워졌습니다. 부모가 된 밀레니얼 세대라는 메가 트렌드에서 눈에 띄는 매크로 트렌드로 ‘에잇포켓키드’를 눈여겨볼 수 있겠고, 이에 마이크로 트렌드로 ‘유아 명품 시장의 성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최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매크로 트렌드는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될 듯합니다.
첫 번째는 ‘생성형 AI’입니다. 여기에 ‘검색’과 ‘쇼핑 플랫폼’이 결합됩니다. 생성형 AI에 대한 과한 기대는 광풍을 일으켰지만, 메타버스의 거품처럼 쑥 꺼지진 않았습니다. 되레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서 높은 실현가능성(feasibility)의 상용서비스를 하나둘 내놓고 있습니다. 워낙 빠른 속도로 기술이 선행하면서 문화가 지체되고 있기 때문에, 윤리와 같은 철학적 고민들과 그에 기반한 규제의 법률적 문제가 속도를 맞혀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는 ‘중독’입니다. 애나 램키의 『도파민 네이션』이나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 세대』와 같은 책들에 의해 집중해서 살펴볼 수 있었던 ‘디지털 중독’의 문제는 ‘해독’이란 마이크로 트렌드를 만들어냅니다.
셋째는 ‘무인 가게’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비대면의 기술적 진보는 로봇과 키오스크를 통해 소매업으로까지 무인화를 진행시켰습니다. 무인화에 따른 보안(security)과 고객경험(CX)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마이크로 트렌드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넷째는 중국 e커머스 플랫폼의 약진입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공격적인 한국시장 진출은 눈에 띄는 시장 점유율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쿠팡과 네이버 쇼핑의 약진이 중국 이커머스플랫폼을 통해 구입한 물건에 이윤을 붙여서 되파는 ‘나까마질’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쇼핑 플랫폼의 지각 변화는 당연한 일이 될 터입니다.
다섯째는 버티컬 커머스의 재성장과 커머스플랫폼 다변화입니다. 유통시장은 초기 단계에서 전문화로 경쟁력을 키우지만 점차 경쟁이 격화되면서 집중화를 이루게 됩니다. 버티컬 커머스로 시작했다가 덩치를 키우고 공룡으로 변한 이커머스 기업들 사이에서 다시 버티컬 커머스가 눈에 띄고 있습니다. 여기에 라이브커머스, SNS커머스에 이어 숏폼커머스까지 소매시장의 유통 경로를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눈에 안 띌 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