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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Aug 30. 2022

2022 경기서점학교 후기

좀 아는 사람에겐 부족했지만, 하나도 모르는 사람에겐 좋았을 강의들.

1. 전반적으로 불만족스러웠다.


 요즘 후기의 생산성에 대해 자주 고민해보게 된다.

 조지 오웰의 관점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살펴본다면, 아무래도 남에게 읽혀서 어떻게든 나의 생각에 동조하게끔 만들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그렇다 보니, 매번 ‘좆같다’는 푸념으로 쓰는 글로는 그 ‘생산성’ 담론이 목에 걸려 답답함을 준다. 리뷰라면 모름지기 ‘남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편견을 넘어, 후기의 대상에 대한 ‘나의 순수한 적의’만으로도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반감이 강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꽤나 오랜 기간 고민하다가, 이번에도 악의를 숨기지 말고 악평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전반적으로 좋았다고 평을 하긴 힘들다.

 아무리 일이 없더라도 명색이 경영컨설턴트이며, 자영업으로 말아먹어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서점이란 소규모 자영업의 독특함에 대한 고민은 재작년 말부터 꽤나 진지하게 고민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점이란 마치 편의점의 상품들처럼 규격화되고 가격 차별 정책을 가져가기 힘든 상품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서점의 상품인 책은 꽤나 저관여상품의 양상을 띄게 된다. 하지만 개별적인 도서들은 작가와 출판사는 물론 표지 디자인에서부터 독자 리뷰까지 이것저것 다 따져보는 꽤나 고관여상품의 양태를 띄고 있다. 이 기묘한 조합에서 제대로 된 마케팅 전략을 구현해 ‘계속가능한’ 자영업으로 자리잡으려면 도대체 어떤 전략이 필요하겠냐는 자문은 1년 반이 넘도록 해답을 도출해내기 힘든 난제였다. 기껏해야, 차별화 전략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서점 그 자체의 브랜딩’이란 점밖에 도출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전반적인 강의의 구성 자체에는 동감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수강 신청도 한 것이다. 하지만 개별 주제에 따른 강의 내용이 적절했는가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결코 좋은 평가를 해줄 수는 없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서점 창업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꽤나 정보하중이 높은 강의가 되었을 테다. 자영업 창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서점도 마찬가지다. “서점을 구상하면서 처음에 한 일은 생각해보니 참 어처구니없게도 서점에 가서 서점에 관한 책을 사서 읽는 거”였다는 노명우 선생만큼이나 바지런한 경우도 흔치 않다. 그래서 이 강의정도가 예비창업자들에겐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역량 강화’를 위한 과정은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았다.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은 어디서 본 게 맞았고, 짧은 시간에 때려넣은 내용들은 역량 강화에는 턱없이 부족한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막 때려 넣어서 될 수 있는 건 한계가 명확하다.          



2. 그래서 책을 추천한다.     


 첫 강의 “브랜딩”을 보고 나서 절망했었다. 앞으로도 이런 식의 강의가 계속된다면 들으나 마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딩에 대한 개념적 접근을 알튀세르적 ‘호명’의 이중적인 구성작용에서부터 시작해 본다면, 그 개념의 허위성에 대해서 보다 면밀히 고민해봐야 할 테지만... 서점학교에서 고민해봐야 할 문제는 아니다. 쓸데없이 깊은 고민은 남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이 머리를 짜내서 써낸 책을 읽는 것으로 간단히 때우는 게 상책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브랜딩’이란 마케팅 전략을 이해하고, 서점 운영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실용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첫 강의의 사례 2가지는 그닥 적절하지 못했다. 지역 빵집은 레퍼런스로서의 접점이 ‘로컬’이란 점밖에 없고, 문을 닫은 서점은 실패사례 분석으로는 너무 부족했다. 결국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헛헛함은 책으로 달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역량강화 과정에서 마케팅, 삼일문고의 사례는 되레 1강의 브랜딩의 사례가 돼야 했다 싶었다. 지방 소도시의 서점이 갖추어야 할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지방 소도시의 중형서점이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과의 경쟁에서 도태되어 버린 현실을 생각해 보면, 분명 모순적일 테다. 하지만 지역서점이 살아 남기 위해서 필요한 형태는 결국 거점으로서의 중형서점과 전문서점으로서의 동네서점이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 것이란 점은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출판문 유통구조의 변화에 따라, 위탁판매로 분산되었던 중형서점의 재정적 위험이 직접 구매로 전환되면서 꽤나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한다. 3만 권 정도의 도서를 서점에 구비한다는 것은 언제라도 5억 원 정도의 처분 불가능한 악성 재고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과거 위탁판매와 반품 그리하여 어음거래라는 요상한 유통과정이 정상인 것처럼 간주했던 이유도 책이란 상품의 재고 위험성에 근간한 것일 테다. 그렇다 보니 이 위험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중형서점들은 계속해서 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브랜딩 관련 책으론 이게 국내 최고”라는 회사 대표의 추천으로 홍성태 교수의 『배민다움』을 읽어 보았다. 왜 추천해주었는지 절감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강의는... 그냥 강연자의 책을 읽자. 아직 강연에 익숙하지 않아서 강연 자체가 답답했지만, 그 내용 그대로 잘 담겨져 있는 책을 읽는다면 해결될 문제이다.

 노명우 선생의 “그렇게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어떤 책에도 서점을 차리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가게 터를 임차하는 법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더군요”라는 푸념을 한방에 뒤집어 버리는 책이기도 하다. 물론... 책이 나온 시점은 니은서점이 차려진 한참 뒤였다는 게 함정이다. 서점 ‘책인감’의 대표인 이철재가 쓴 『동네책방 운영의 모든 것』도 내용면에서나 구성면에서나 꽤 뛰어난데, 진짜 매뉴얼처럼 써버려서 읽는 재미는 거의 없다는 단점이 있어서 추천하긴 어렵다.  

   

 





 

세 번째 강의만큼은 꽤나 길고 오랜 고민을 건네주었다. “북큐레이션”이란 정의되지 않은 개념을 마치 호명하는 그것으로 존재하는 무엇으로 규정하게 되는 허위성은 브랜딩의 경우를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최근 Platform-P에서 진행된 총서 관련 강의에서 ‘큐레이션’이란 단어를 꽤나 자주 들어야 했지만, 강연자와 청자들이 그 개념에 대해 충분히 공유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김미정의 『북큐레이션』에 분노하고, 다카세 쓰요시의 『책의 소리를 들어라』에 좌절한 뒤에 도대체 어떤 책을 읽어 봐야 북큐레이션이란 말장난에 대해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개념을 확립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마이클 바스카의 『큐레이션』 정도가 가장 나은 듯한데, “과잉을 덜어내는 것이 큐레이션”이라 역설(力說)하는 책에서 문장들이 과잉이라 그 자체가 역설(逆說)적이기도 하다.     

 

    

이제 곧 2023년 트렌드 분석서가 나올 시기인데, 작년 10월에 나온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 모니터 2022』의 내용 그대로를 강연에 선보이는 것은 좀 아니다 싶다.

 트렌드 분석서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트렌드코리아 2022』, 이노션의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2』 정도가 읽은 만하다. 그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이다. 다른 책들은 어딘가에서 제공되는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책을 쓰는 것처럼 천편일률적인 면이 있다. 그에 반해,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낯뜨거운 작명으로 큰 비호감을 사지만, 그래도 한발 앞서가는 트렌드 분석을 보여준다. 굳이 트렌드 분석서를 한 권 읽는다면, 트렌드코리아를 읽는 것이 맞다. 또 다른 트렌드 분석을 원한다면, 맥킨지나 베인, 커니,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팅회사의 보고서를 찾아 보는 것도 좋겠고, 제일기획과 같은 국내 광고회사의 트렌드 리포트를 얻어 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일반인이 구하긴 쉽지 않다는 게 함정. 제일기획과 광고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이노션에서 책을 내놓는다 점을 고려하면,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시리즈가 최선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책방 사례에 관한 책으로는 브로드컬리의 책 두 권을 추천하고 싶다. 밝은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암울한 책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건, 현실을 직시한 인터뷰어의 질문과 담담하게 풀어낸 인터뷰이의 답변임을 누가 봐도 부정할 순 없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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