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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Jun 25. 2023

[북리뷰] 트렌드에 맞춰 급조해 내는 책에 대한 단상

김영욱 외.『생성형 AI 사피엔스』. 경기도 파주:생능북스. 2023.

1.

 2주 전쯤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챗GPT시대의 출판: 도전과 기회>란 세미나에 다녀왔었습니다. 2시간이 후딱 지나갈 만큼 흥미로운 시간이었는데요, 오히려 2시간에 때려 넣기엔 터무니없는 주제가 아니었나 하는 치명적인 부분을 참석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월요일 오후에 있었던 세미나인지라, 오전엔 한 시간 정도 회사 대표와 이 주제로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저자 됨 authorship'이나 저작권에 대해서만 이야기가 집중됐었다 싶습니다.

 세미나를 다녀오고 그다음 날 오전에도 또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습니다. 세미나를 통해 접했던 내용들을 정리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갖고 있던 치명적인 근본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챗GPT가 대명사처럼 쓰여서, 생성형 AI generative AI란 개념 자체를 확보하고 있지 못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써본 적도 없다는 거였죠. 우선 책을 하나 읽어 보던가 해서 기본 개념부터 탑재하고, 현재 제공되고 있는 서비스부터 확인해 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2.

 세미나가 있던 날부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기 시작한 터였고, 얀 뤼카선의 <인간은 어떻게 노동자가 되었나>라는 벽돌책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차였습니다. 이 벽돌들의 특징은 폰트가 작고 행간도 좁아서, 요즘 나오는 국판 책들보다 두 배 이상 텍스트가 많다는 점입니다. 2주에 걸친 지리한 독서 끝에 얀 뤼카선의 책을 덮고 나니, 무언가 ‘숨을 돌릴’ 책이 필요했습니다. 네댓 시간이면 읽고 치울 수 있는 책이 필요했는데, 마침 이 책이 손에 들어왔습니다.      

 공교롭게도 세미나 당일에도 곁가지로 빠져나왔던 문제 중에 하나가 “함량 미달의 출판물”이었습니다. 그저 신고만 하면 되는 출판사 등록 제도의 문제에서 시작해, 12만 개의 출판사가 1년에 내놓은 출판물이 6만 4천 종이라는 사실에서 유추해 보면, 1년 내내 제대로 된 출판물을 내놓은 출판사는 3만 개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함량 미달의 출판물’이 언급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쓴 글이 저자 됨 authorship을 담보하는 진정성 authenticity을 갖출 수 있겠느냐는 문제, 그리하여 저작권이 귀속되는 저자의 확립에 명확한 독창성 origianlity 문제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6인 이상의 공저자가 있는 책을 싫어합니다. ‘책의 완성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단독 저자나 2인 공저의 경우는 그나마 전체를 아우르면서 검토를 하는 누군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4명 이상만 넘어가도 공저자 시스템은 꽤나 난잡해지게 됩니다. 챕터를 나눠서 각자 책임지기로 하면서, 누가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다뤘는지 알지 못합니다. 보통 저자 각자들도 남의 글에 관심이 없습니다. 문제는 편집자 역시 그 가운데에서 조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넘어온 원고를 기계적으로 배정하는 것으로 편집자의 업무가 끝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책이 아주 개판이 됩니다. 챕터가 다르고 제목이 다른데 내용은 똑같은, 그런 함량미달의 책이 나오곤 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의 원고는 주로 트렌드 소개서적에서 자주 보입니다. 아주 개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팀 김난도’에서는 전체적으로 조율할 전문작가를 섭외해서 ‘톤 앤 매너’를 손보기도 합니다.     


 무언가 불온한 기운이 느껴지는 빌드업에서 눈치채셨다시피, 이 책에서도 그런 혐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출판사의 강한 의지는 제목에 챗GPT나 AI가 들어가는 여러 권의 책을 올 상반기에 출간했던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발 빠른 출판 기획도 좋지만, 저자들을 섭외해서 원고를 뽑아내는 능력도 참 좋습니다. 심지어 목차만 들여다봐도 생성형 AI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정도로 목차는 참 잘 짜여 있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한 이야기 또 하고, 한 이야기 또 하는’ 편집력의 부재는 너무 크게 다가옵니다. 꼼꼼히 정독하면서 공부할 생각으로 펼쳐든 책이 아니라, 설렁설렁 쓰윽 읽어서 기본 개념 정도만 이해하자는 독서 목표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덮었을 책이었습니다.     



3.

 물론 위와 같은 지적들이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우선 급하게 끌어모은 원고들이다 보니, 너무 깊지 않아서 읽기 정말 편합니다. 언제부턴가 위키피디아를 정보의 원천으로 삼기 시작한 사람들의 심리 그대로,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지만 필요한 기본 정보는 빠짐없이 보여주는 무겁지 않은 책은 제법 편합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충분히 확인해 볼 수 있는 정보들일지라도, 그걸 일일이 찾아보는 것도 대단히 피곤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찾아낸 정보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매번 ‘과학기술지식인프라’나 ‘한국학술지인용색인’과 같은 사이트에서 논문을 찾아보기도 힘들 뿐만, 찾고 있는 바로 그 정보인 경우도 흔치 않습니다. 차라리 ‘저자’에 의해 한 번 걸러진 정보의 진정성 authenticity를 믿어 보는 것이 맘도 몸도 편합니다.

 텍스트의 양도 만족스럽습니다. 320페이지나 되지만, 벽돌책들 수준의 편집으로 환원하면 1/3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반나절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읽어치울 수가 있게 되는데요, 갑자기 내가 ‘읽기의 제왕’이 된 듯한 착각도 들면서 독서효능감이 올라갑니다. 저는 지난 2주간의 벽돌책과의 싸움에서 지쳤다가, 무언가 복수를 이뤄낸 듯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다음 책으로는 세미나의 발제자이기도 한 이시한의 <GPT 제너레이션>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루 먼저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은 책이었지만, 목차의 매력에서 밀리고 말았습니다. 다만 내용적 깊이는 단독저자의 저서이다 보니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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