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감악산(951미터)의 정상부근, 풍력발전단지에서 매년 10월 중순에 열리는 아스타 국화 축제가 끝나고 그다음 주가 되고서도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아스타 국화는 대부분 지고 없었지만, 그 빈자리를 억새와 구절초 그리고 가을 국화, 그리고 아쉬움에 찾은 인파가 메우고 있었다. 감악산은 본디 짙푸른 색(紺色, 감색)의 산(岳, 악)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보랏빛(紫色)의 자악산(紫岳山)이 되고 있었다.
그 감악산 정산 부근에 천년 고찰 연수사(演水寺)가 있다. 사찰 안내판에 의하면 연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 말사로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감악조사가 세웠다고 하며, 조선시대 때 벽암선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 연수사에 유명한 것이 있는데 바로 약수다. 절 이름에 물 수(水) 글자가 들어가는 만큼, 연수사 약수는 유서가 깊다. 신라 헌강왕이 이 약수를 먹고 목욕하여 지병과 중풍을 고쳤다는 일화가 있다. 최근에도 많은 사람이 와서 약수를 마시고 몸에 약수를 맞는 곳으로 유명하다. 약수의 원수는 대웅전 뒤 산신각-칠성각 옆 짙푸른 바위 밑에서 솟아 나오는데 일 년 열두 달 물의 온도가 일정하다고 한다. 이 물은 대웅전 밑에서도 솟아 나오고 또 사찰에서 북쪽, 계곡 쪽으로도 물길을 돌려 흐르게 해서 여름이면 많은 사람이 그 물을 몸에 맞으며 건강해 지기를 소원한다고 한다. 거창군에서는 남녀가 구분하여 물을 맞을 수 있도록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산신각-칠성각이라고 쓴 건물은 밖에서 보면 산신과 칠성여래만 모신 것으로 보이지만 안에는 용왕탱까지 모신 ‘한 지붕 세 가족’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샘에도 ‘용왕당’이라는 글씨가 작게 쓰여있는 것 같다. 샘 좌측에는 세석산방(洗石山房)이라는 건물이 있다.
감악산의 다른 특징으로는 대웅전 옆에 조성된 석조약사여래입상이다. 사찰의 설명은 없지만 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세상에, 특히 몸에 좋다는 물을 먹고, 몸에 맞으러 오는 사람들(그들은 질병에 걸렸거나 혹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족일 가능성이 크다)을 배려해서 중생의 모든 병을 고쳐 주시는 약사여래불을 조성하여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하는 뜻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연수사의 또 다른 특징은 사찰 입구의 600년 된 은행나무다. 사찰 설명문에 의하면 원래는 전나무와 같이 있었는데 전나무는 20여 년 전 강풍으로 부러지고 은행나무만 남았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유복자와 헤어져 승려가 된 비구니가 심었다고 하며, 현재 높이 34미터, 둘레 7미터의 크기를 자랑한다. 오랜 세월 동안 사찰을 지키며 살아온 은행나무 앞에는 은행나무를 심었던 비구니와 같이 가족과의 소중한 행복과 건강의 소원을 비는 소원지들이 달려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감악산 가는 길이라면 아스타 국화 철이 아니더라도 연수사에 들려 약수도 받아오고 가족들 건강과 행복을 발원하면 좋을 것 같다.
주차비와 입장료는 없으며, 물도 공짜다. 그리고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도 공짜다. 완연해진 가을이 내려앉은 풍광 속에서 자연과 대웅전 처마 끝의 풍경이 들려주는 부처님 말씀까지 들을 수 있으면 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