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천지에 'VIP'… 인구 절반이 '특별 시민'인 나라” 제목의 뉴스(https://buly.kr/74WB9We)가 눈길을 끈다. 주요 공연장의 VIP석의 비율 평균이 50%라는 이야기다. 또 전국의 특별시를 비롯한 특별자치도, 특례시 인구도 37%에 달하고, 심지어 여행사 상품의 VIP, 하이엔드 상품의 평균도 25%를 넘는다고 한다. 단순히 상술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씁쓸하다. 우리가 ‘특별’을 선호하는 문화를 역이용한 판매 전략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특별’한 것을 좋아하는 문화는 언제부터일까?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회사 이름이나 상점 이름에 ‘특수’라는 말이 많이 들어 있었다. 일반과는 다른 ‘특별’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차별화’가 있어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가공도 ‘특수’ 가공이 더 돋보이고, 재료도 ‘특수’ 재료가 더 비싸고 우월해 보였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런 생각의 근간에는 어떤 심리가 숨어 있을까?
직책 이름에도 ‘특별’이나 ‘특수’가 붙어 있으면 더 대단해 보인다. 수사본부장도 ‘특별’수사본부장을 지내야 나중에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리고 위원장도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야 일반위원회의 위원장보다 더 대우받는 줄 안다.
우리는 왜 일반이나 보통보다 ‘특수’를 훨씬 더 좋아할까. 특수를 좋아하는 것은 왕정 시대의 유물이 아닐까. 그리고 양반이나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의 잔재가 아닐까. 왕권의 시대의 왕족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했다. 귀족인 양반도 그러했다. 이른바 ‘생계 노동’을 했던 상민이나 천민보다 그들이 더 대우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이들을 선망하는 사람들도 생겼다.(이런 생각이 나중에 학력 인플레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일본에 이어 미국 문화가 들어오면서 신분상의 특별함은 사라진 것 같았지만 그 자리를 ‘돈(富)’과 새로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차지했다. 사실 문화적으로는 전혀 바뀐 것이 없었다. 단지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북유럽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북유럽 일반화의 규칙, 흔히 "얀테의 법칙(Janteloven)"이라고 불리는 이 개념은 스칸디나비아 문화에서 깊이 뿌리내린 사회적 규범이다. 이 법칙은 개인에게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게 여기지 말고,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얀테의 법칙의 내용을 들어 보자.
- 당신은 특별하지 않다.
-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니고, 더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지도 더 잘생기지 않았다.
-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의 성공을 질투하거나 실패를 기뻐하지 않는다.
- 당신은 다른 사람의 문제에 간섭하거나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10개 항목을 5개로 축소 정리)
우리 같으면 자식들에게 거의 들려주지 않을 것 같은 이 법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개인의 겸손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며, 사회적 평등과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적 배경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얀테의 법칙은 개인의 성취를 억제하는 경향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 신뢰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 중의 하나는 평등과 신뢰의 문화다. 민주주의는 그들 문화 위에서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기반은 대체로 누군가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른바 ‘특별’한 생각으로 무너진다. 특별한 생각은 ‘내가 옳다’를 넘어 ‘나만이 옳고 상대는 틀리다’는 생각을 만들어 내고 나아가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정의감’에 불타도록 만든다. 그 정의감은 ‘신뢰’의 큰 축인 ‘법치’의 근간까지 무시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자본주의를 전수한 국가, 미국조차도 문화적으로는 ‘특수’보다 ‘일반’이라는 뜻을 더 좋게 생각한다. 유명한 회사 이름에도 그러한 생각들이 나타난다.
에디슨이 만든 유명한 전기회사로 전자기기, 조명, 항공기 엔진, 의료 기기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의 이름은 스페셜 일렉트릭이 아니라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이다.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회사에도 스페셜 모터스는 없다. 그 자리는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GM)가 지키고 있다. 식품 회사로는 Cheerios, Häagen-Dazs 등의 브랜드를 통해 시리얼, 베이킹 믹스, 냉동식품 등으로 알려진 제너럴 밀즈(General Mills)가 있고 유명한 항공 및 군수 기업으로 우리가 잘 아는 F-16 전투기를 개발했던 회사도 제너널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다.
특수를 선호하는 우리 생각의 근간에는 ‘나와 남을 구별하는 마음’과 ‘나와 남을 비교하여 남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고 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또 이러한 생각은 ‘내가 남보다 더 우월하다’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상대에 대한 우리의 ‘수용력’과 ‘포용력’을 낮추고, 나아가 ‘남의 일에 간섭하고 충고하려는 마음’을 일어나게 한다. 결국 민주주의 근간의 하나인 ‘평등 의식’을 무너뜨리게 된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일성을 날렸다. 모두가 흔들리고 있을 뿐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워내고 있다. 그것은 꽃의 크기나 색깔, 향기와는 다른 문제다. 하나가 곧 우주다. 우리가 현재 그런 과정에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우리는 수백 년 유학의 사유물인 사농공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농공상의 반대인 상공농사의 프레임도 옳지 않다고 본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경주하여 향상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러니 그것을 구별하여 서열을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것들이 집착하게 되는 순간 그것도 하나의 프레임이다. 강요할 내용의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은 동등하게 옳다.
모든 사람이 상대방이 비록 “터무니없는 생각을 떠벌리더라도 ‘이단’이나 ‘변절’이라고 공격하는 격렬한 반응을 유발하지 않는 넉넉한 관용의 사회에서만 지성이 충만한 혁신이 일어나다”라는 조엘 모키르의 말을 오늘도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