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_업적 #일본_언론자유도_추락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아베의 사임.
그날이 왔습니다.
아베는 지병을 이유로 임기 중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지병은 궤양성 대장염이죠. 궤양성 대장염은 물론, 무서운 병입니다. 잘 관리하지 않으면 대장암으로까지 진행될 수도 있죠. 재미있는 건, 아베 퇴임의 진짜 이유가 궤양성 대장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아베는 이미 청소년기부터 궤양성 대장염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베는 7월부터 두 달여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죠. 사상 유례없는 대폭우에 이재민이 십수만 씩 발생해도 코로나 재확산 시기에도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총리실에서는 아베의 중병설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심지어 7월 초에 아베가 집무실에서 “쓰러졌다” “피를 토했다.” 등의 원색적 표현이었죠. 일본 타블로이드가 아니라 총리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입니다.
게다가 8월 17일에는 게이오 대학 병원에서 아베를 위한 특별 의료팀이 구성되었고, 7시간이나 넘게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아베의 건강이 완벽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유난을 떨며 유명 연예인 가십을 보도하듯 하는 것도 이상하죠. 상당수의 일본 전문가들은 아베의 질병과 치료 그리고 사임이 건강상의 이유보다 정치적 정확히 처벌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베의 평가는 여전히 강고한 듯 보입니다.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60%의 일본인이 아베가 좋은 총리였다고 평가합니다. 이것만 보면 아베로 상징되는 극우세력이 일본인 과반수를 넘는 지지를 얻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러면, 단순히 “아베가 좋은 총리였습니까?” 대신에 아베의 정책 하나하나에 대한 설문을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서일본 신문에서 8월 28일 일본의 카카오톡인 라인을 이용해 전국 약 1만 3천여 명을 대상으로 평가한 내용입니다. 응답은 총 2040명이 했다고 합니다.
대체로 경제와 외교에서는, 특히 트럼프와의 친밀한 관계를 내세우는 대미 외교는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아베가 그토록 자랑하던 아베노믹스는 긍정보다 부정 평가가 1,5배 높습니다. 코로나 대응에서는 부정 평가가 긍정평가의 4배 정도이지만 여전히 아베 정부의 코로나 대응 평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모리토모 학원 부정, 벚꽃을 보는 모임 부정 후원 문제 등에 대해서는 대체로 평가가 박합니다. 알게 모르게 일본인에게도 아베의 각종 스캔들은 지긋지긋했던 모양입니다.
도쿄올림픽 취소와 한일관계 악화는 긍∙부정 의견이 치열하게 맞선다고 생각했었는데, 부정 평가가 긍정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
확실히 우리가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일본의 모습은 아닙니다.
세부항목으로 들어가면 부정 평가가 높은데, 왜 일본인은 아베에 대해서는 60% 정도가 긍정평가를 한 걸까요?
이게 사실일까요?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인은 안정 지향적이죠.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변화 자체를 싫어합니다. 덮어놓고 현 정부를 지지하는 마음이 큰 거죠. 아베가 잘했다고 응답한 60% 중 일부는 습관적으로 지지한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아베가 잘한 게 하나 있기는 합니다. 효율적인 언론 통제죠. 80년대까지 언론 자유도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던 일본을 우리와 비교도 하기 어려울 수준인 60위권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 아베입니다.
뉴욕타임스 아시아 본부는 홍콩에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7월 홍콩의 아시아 본보를 서울로 이전한다고 발겼습니다. 아시아 본부의 서울 이전에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죠.
1. 외국기업에 우호적인 나라
2. 언론 독립에 노력하는 나라
3. 아시아 뉴스의 중심인 나라
전 아시아 국가 중에 한국이 이 세 가지를 충족한다고 뉴욕타임스가 공표한 겁니다.
일본이 난리 났었죠. 그동안 세계 최대의 신문사 아시아 본부가 홍콩에 있는 것도 자존심 상했었는데, 한국으로 간다고 했으니까요.
먼저 일본의 언론환경에 관해 얘기해보죠.
일본인에겐 뿌리 깊은 믿음이 하나 있습니다.
“신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방송은 과장과 왜곡이 있지만, 특히 TV는 더더욱요. 신문기사와 신문기자는 사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립적 언론사든 극우 언론사든 활자화된 기사가 나오면 일단은 믿는 경향이 강하죠.
이건 근거가 있는 믿음입니다. 일본의 언론 자유도는 아베 집권 이전까지 세계 최상위권이었으니까요. 2010년대 이전의 일본의 언론 자유도는 무려 세계 10위권이었습니다. 심지어 미국이나 영국 등 주요 미디어 생산국보다 상위권에 있었죠. 이때 일본보다 높은 언론 자유도를 누리던 나라는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 벨기에, 뉴질랜드, 덴마크 등의 경제부국이자 리버럴한 중소규모의 국가 정도였으니까요.
아베는 집권 이후, 내각을 총동원해 언론을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간단했죠.
언론사의 보도국 생리라는 게, 검사집단과 약간 비슷합니다. 보직이 생명이죠. 검사들이 중앙지검, 대검에 발령받아야 출세코스인 것처럼. 기자는 출입처가 생명이거든요.
출입처의 꽃은 역시 청와대와 검찰입니다. 각 언론사의 출입 기자들끼리 일종의 이익단체 같은 것을 만들었죠. 이런 걸 풀단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카르텔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출입처는 보도자료도 풀단에 제일 먼저 주고, 또 풀단에 소속된 언론사와 그렇지 않은 언론사에 전달하는 정보의 양과 질이 다르기도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심층 보도자료를 받지 못한 언론사는 통신사 뉴스를 베끼어 쓴 단신밖에 못 만드는 거죠.
각 중앙부처가 아니라, 총리실이 이런 작업에 관여하는 겁니다.
언론사를 장악하는 방법은 의외로 쉽습니다. 말 잘 듣는 인물을 주요 요직에 꽂으면 그만인 거죠. 우리도 지난 정부에서 지겹도록 많이 봐왔습니다. 친정부 성향의 인물을 언론사의 사장에 임명하고, 사장은 또 자기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을 요직으로 끌어옵니다.
일본도 그랬습니다.
여전히 일본에서 신뢰도가 높은 언론사인 NHK를 고분고분하게 달래기로 결심했죠. 결과 NHK의 언론 신뢰도는 과거와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돕니다.
아베는 다른 민방도 차례차례 격파했죠.
특히, 아사히그룹, 아사히 신문과 테레비 아사히 그리고 마이니치와 TBS에 대해 노골적 압력을 행사했죠.
아베의 대 언론관은 딱 이거였습니다.
[아군 VS 적군]
아베는 주요 언론사 사장단과 자주 오찬을 했죠. 무언의 압박이죠.
아베 정권에 불리한 보도와 취재는 삼가는 것도 모자라, 총리와의 기자회견 때는 사전에 합의한 질문만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해외 언론에는 어땠을까요? 똑같았죠.
기본적으로 아베는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사전에 질문을 받고, 관저 직원들이 쌀로 밥 짓는듯한 느낌의 답변을 준비해주지 않으면 뭔 말을 못 합니다.
그런데 해외언론. 특히 NYT나 BBC 같은 언론이 말을 들을까요? 그럴 리 없잖아.
그러니까 말 안 듣는 NYT 같은 언론과 독대를 딱 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한국이나 일본 또는 미국, 프랑스 같은 민주주의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예상 문답이 있는 기자회견을 한다는 거. 상상이나 되십니까?
하다못해 트럼프조차도, “너는 가짜 언론!”이라고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해도 질문 자체를 막지는 않았잖아요. 그런데 아베는 막았죠.
이걸 일본 언론. 우리의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해당하는 수상 관저 출입기자단이 용인한 꼴이었죠. 옆에서 지켜보는 외신기자들은 기가 막히는 거죠.
아베는 일본 자국 언론은 철저히 홍보수단으로 전락시키더니만, 외신은 그냥 무시하는 거지.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넘어올 인간들이 아니니까요.
일본인이 외신에 접근 못 하게만 막았던 거죠. 어차피 영어로 기사를 검색할 일본인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외신은 특히 뉴욕타임스는 심층 분석 기사로 유명하잖아요. 이들에게 아베에 관해 심층 분석 기사를 쓸 기회 자체를 막는 거죠.
일본어로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エサを与えない(에사오 아타에나이:먹이를 주지 않는다)”
보통 야생동물이나 동물원의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표현이지만, 인터넷에서는 ‘떡밥을 던지지 않는다’라는 표현과 같이 쓰입니다.
아베 정부는 ‘에사오 아타에나이’를 비우호적 언론에게 시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사에 지적당할 만한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것으로요.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는 매년 세계 언론자유지수(Worldwide press freedom index)를 발표합니다.
미국의 NGO인 프리덤 하우스에서도 언론자유 보고서(Freedom of the Press)를 발표합니다만, 국경 없는 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가 더 유명하죠.
우리나라는 2002년 국민의 정부에서 39위에 진입한 이후, 2006년 참여정부에서 역대 최상위 32위까지 올랐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70위까지 추락했죠. 2020년 현 정부에서는 42위로 발표되었습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올랐지만, 더 멀리 가야 하겠죠.
우리 위의 국가로 코스타리카, 우루과이, 가나, 라트비아, 나미비아, 슬로바키아, 남아공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순위 42위는 놀랍게도 아시아 1위입니다. 아시아 전역에서 RSF의 ‘만족스러운 상황’에 해당하는 나라도 한국과 대만 뿐입니다.
2010년대 이전의 일본의 언론 자유도는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었죠.
일본 이상으로 언론자유도가 높거나 비슷한 나라로는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 벨기에, 덴마크 등의 북유럽의 리버럴한 선진국뿐입니다. 태평양 권역에서는 뉴질랜드 정도였죠.
RSF는 2020년 일본 언론자유지수를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무려 67위입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의 단계죠.
아시아에서는 부탄, 몽골,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이 이 등급에 해당하는데, 심지어 조지아와 아르메니아가 60위, 61위로 일본보다 높은 수준의 언론 자유도를 기록했죠.
뉴욕타임스의 서울 이전.
일본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요?
일단, 담담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죠. 사실을 알리면 알릴수록 스스로 창피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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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서울 이전 조건 세 개를 다시 보죠.
1. 외국기업에 우호적인 나라
2. 언론 독립에 노력하는 나라
3. 아시아 뉴스의 중심인 나라
이 중 일본인에게는 우선 3항이 빈정 상합니다. 아시아 뉴스의 중심이 일본이 아니라면 중국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겨우 한국이라뇨!
그런데 2항은 빈정 상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일본 언론이 뉴욕타임스의 서울 이전의 조건인 2항을 밝히면 어떻게 될까요? 이걸 말하는 순간 일본의 언론 독립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일본의 과거 세계 언론자유지수가 12위에서 현재 60 위대로 추락한 이유에 대해서도 밝힐 수밖에 없잖아요.
과거의 최상위인 ‘좋은 상황’과 ‘만족스러운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문제’가 있는 단계로 추락한 이유를 말해야 하는 거잖아요. (참고로 2015~16년 한국도 눈에 보이는 뚜렷한 문제가 있는 단계였습니다)
아베는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언론에게,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먹이를 주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아무리 언론이 자신에게 우호적이더라도, 일본인 모두가 바보는 아닙니다.
아베 개인에게는 사임 후, 60%나 긍정평가를 해도 아베 정책 하나하나에 누적된 불만이 슬슬 표출되고 있는 거죠.
다음 총리가 누가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조기 내각 총해산을 하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아시아를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일본을 위해서도 아베 같은 정치인이 다시 나오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