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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재덕후 공PD Aug 27. 2021

[특별편]한국과 일본의 아프간 철수작전

왜 한국은 성공하고 일본은 실패했을까?

투사력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을 도와 일했던 ‘특별공로자’와 가족들의 한국 수송작전은 한 편의 영화 같습니다. 

머나먼 해외 그것도 적대세력으로 가득 찬 곳에서 수백 명의 인원을 안전하게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수송하는 작전능력을, 우리 정부와 군과 정보기관이 대체 언제부터 가능하게 된 것일까요?      


일개 국가의 군사능력을 평가할 때, ‘투사력’이란 개념을 동원합니다. 한마디로 그 나라의 군사작전 능력이 자국을 벗어나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온전하게 투사되는가에 대한 지표입니다. 자국 영토를 벗어나도 자국 내와 같은 수준의 군사력, 정치력, 행정력을 그대로 투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죠.      


하지만, 세계 제국이던 미국조차 포기한 아프가니스탄. 그곳에서 우리 군과 정부를 도와 일했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수백 명을 결이 다른 탈레반 군소조직이 가득한(한마디로 중앙통제가 불가능한 적대세력) 카불 한복판에서 안전하게 국내로 수송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돕니다.      


군사작전에서 철수는 매우 중요하고 위험한 개념입니다. 전투에서 패했으니, 병력과 장비를 안전하게 다음 전투를 위해 철수하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위험합니다. 적군은 패전한 아군의 꼬리를 물겠다며 성급하게 덤비는 가운데, 철수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하 부대에 모두 골고루 전파해야 합니다. 평시라면 이런 행정명령이 손쉽게 단위부대까지 도달하겠지만, 전시 상황 특히 철수 상황이라면 나 먼저 살겠다는 인간의 본성이 군 조직에서도 쉽게 등장하죠.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패전 상황은 모두 철수작전의 실패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습니다. 격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가 실패한 철수작전 또는 지리멸렬한 패퇴에서 나오죠. 

2차 대전 초기, 프랑스 덩케르크에 발이 묶였던 영국군 30여만 명의 질서 정연한 영국 본토 철수가 지금까지도 각광받는 것은, 질서 있는 퇴각이 화끈한 승전보다 훨씬 더 지난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려운 철수를 한국 정부와 군과 정보기관이 해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우리 군과 유사한 규모의 철수작전을 입안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죠. 대체 왜 그런 걸까요?   


        

한국군의 진심 


군사작전의 최종 승인권자는 당연히 최고 지휘관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대통령이죠. 그 후,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의 행정명령을 받아 작전을 입안하고, 시시각각 바뀌는 현장 상황에서의 결정은 단위부대의 지휘관과 현장 지휘자가 하게 됩니다. 간단한 구조 같나요? 

아닙니다. 우선 최고 지휘관과 지휘부의 명령이 간결해야 합니다.      


“이런이런 작전을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는데.. “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이번 아프간 철수로 예를 들어보죠.      


"아프간에서 한국군과 정부를 도와 일했던 아프간 민간인을 최대한 그들의 직계 가족까지 찾아내 본국으로 호송하되,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말고, 주변국에게 위협적이 될 신호는 보내지 말고, 그러면서도 유혈사태는 가능한 피하고, 특히 우리 군과 국민이 다치거나 피랍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 피해야 한다. 작전에 소요되는 예산은 국민의 혈세니까, 가능한 경비를 아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만일 청와대와 국방부가 이런 지침까지 단위부대에게 내렸다면, 그 작전은 그걸로 망한 겁니다. 대신 이렇게 간결해야죠.      


"군이 보유한 최고의 병력과 자원을 아낌없이 동원해, 특별공로자 구출에 전념할 것"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하며, 모든 책임은 최고 지휘부가 질 것"


딱 이거면 되는 거죠.      

청와대와 국방부가 어떤 훈령을 내렸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모든 자원을 동원’과 ‘모든 책임은 정부’라는 메시지를 군에 전달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강력한 증거가 있죠. 아프간 철수 작전 보도 중, 눈을 의심케 하는 사진 하나를 봤습니다.   (아래사진은 아프간 현지가 아닌 국내 훈련모습입니다)   

공군 공정통제사 행군 모습(국내)

K-1A 기관단총을 파지한 국군이 ‘KOREA’라고 적힌 손팻말과 확성기를 들고, 아프간 특별공로자를 찾아 나서는 모습이요. 어깨에 부착된 부대마크가 독특합니다. CCT(Combat Control Team) 통칭, 공정통제단. 

정확한 명칭은 공군특수임무대, 보통 공군 공정통제반이라 부릅니다. 공군에서도 매우 희소한 특수부대인 제259 특수임무대대에 소속된 작은 단위부대죠. 



특수부대의 특수부대


흔히 UDT와 707 특임대를 최고의 특수부대라 하죠. 그 말도 맞습니다만. UDT와 707이 전투에 특화된 특수부대라면, 공정통제사는 전선의 판도를 뒤바꿀 대형 작전을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전시에 고공낙하, 수상 및 육상 침투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적지에 침투합니다. 우리 군을 위한 보급물자가 투하될 낙하지점, 임시 활주로로 아군기를 유도하는 종합관제, 폭격 정밀 유도 등이 주 업무죠. 그런데도 민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워낙 소수만 선발하고 훈련과정도 매우 길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국군의 고위 지휘관이라면, 마지막까지 아끼고 또 아끼고 싶은 특수부대죠. 

청와대나 국방부가 특수부대 병종까지 결정했을 리는 없습니다. 작전 최고 입안자나 실무 고위 장교는 끝까지 고민했겠죠. 인질 구출과 돌파에 최적화된 부대는 말할 것도 없이 UDT. 도심 대테러 임무라면 707 특임대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전투부대죠. 무장 탈레반이 가득한 카불 시내에서의 철수작전 중 교전이 벌어지면 큰일입니다. 우리 국민과 아프간 특별공로자의 목숨은 물론, 아직 아프간에서 철수하지 못한 다른 우방 국민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고위 지휘관은 마지막까지 아끼고 또 아끼고 싶은 공정 통제단을 선택한 겁니다. 누군가는 반대했을 겁니다. 


'전시 상황이 벌어지면, 가장 필요한 특수부대 중 특수부대인데.. 아프간에서 혹시라도 모를 손실을 입게 된다면, 우리 군의 전력이 그만큼 약해진다!'라면서요. 그만큼 공군 공정통제단은 소중하고 소중한 자산이니까요. 

          

이들이 아프간에 도착해 무슨 일을 했을까요? 

당연히 아군 수송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위한 정찰 및 유도였을 겁니다. 

우리 재외공관원과 시민과 아프간 특별공로자를 가득 태운 버스가 카불 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하도록 유도하고 보호했을 겁니다. 혹시라도 지대공 미사일에 피격당할 위험을 낮추기 위한 정보획득과 위력 정찰까지도 수행했을 겁니다. 

아프간 특별공로자를 가득 태운 수송기가 카불 상공을 완전히 벗어난 후에야, 그들도 그림자처럼 그곳을 벗어났겠죠.      


     

일본의 실패 

 

일본도 아프간 미군 철수 발표 즈음, 발 빠르게 아프군 재류 중인 자국 국민을 후송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시작했습니다. 대형 수송기도 카불 공항으로 벌써 보냈죠. 그런데, 성과가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례 없는 외국에서의 대규모 항공수송 작전. 전례가 없으니 현장 상황도 다변 급변합니다. 그때그때 현장 지휘관과 지휘자가 임기응변을 발휘해 대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정부처럼 최소한의 지침을 주고, 현장지휘관에게 전권을 넘겨야죠. 

일본은 체질상 이게 힘듭니다.      


전례 없는 일, 다시 말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과거의 일본은 매뉴얼을 찾았습니다. 

매뉴얼에 정한 대로 책임과 역할을 나누고 실행했죠.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습니다. 처음 겪는 일에 매뉴얼이 있을 리가 없죠. 이럴 때 필요한 건, 최소한의 지침과 최종 결과에 대한 책임을 최고 지휘부가 진다는 보장입니다. 그래야 현장에서 책임소재로 번질만한 일도 과감하게 시도하게 되니까요.      


일본 자위대는, 일본 정부와 합동 막료회의로부터 아주 세세하고 자잘한 지침을 받았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중대한 책임은 단위부대의 결정권자가 진다는 암묵적 룰은 그대로였겠죠.      

창의성은 모험과 도전정신에서 시작하고, 그것은 결과에 대한 혹독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일본이 가지지 못한 자산이죠. 


(다음 편에는 오키나와 시리즈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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