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재덕후 공PD Sep 06. 2021

[특별편]넷플릭스 D.P와 불편한 진실

#드라마_리뷰가_아닙니다

  지난번 [특별편] ‘한국과 일본의 아프간 철수작전’에 이어 또 하나의 [특별편]을 올립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D.P’ 전편을 홀린 듯이 보고 난 후... 불편하고 또 불편한 진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D.P에 대한 리뷰가 아닙니다.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끔찍한 사건의 추악하고 불편한 진실을 말하려 합니다.  물론 지금의 군대는 일과 후, 휴대폰 사용이 일상화되는 것 등 D.P의 군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군대에서 여전히 성폭력이 일어나고, 피해자가 오히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우리 군대의 불편한 진실이 관심 없으시다면, 부디 이 글을 읽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웰메이드 드라마 D.P가 건드린, 하지만 너무 아프게 건드린 나머지 불편한 진실을 아주 조금 왜곡하는 부분에 대한 소회입니다. D.P는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고 있어요. 특히 군필자 사이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군대 내무반(현재 생활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잘 묘사했다 

                                                     VS 

                              지나치고 악의적 과장이다 


  미술감독이 누군지는 몰라도... 잔인합니다. 실제 군 내무반을 그대로 옮겨놨어요. 

  주연인 정해인은 신병인 이등병. 같은 D.P 조장인 구교환은 상병입니다. 

  둘이 군복을 입고 있는 투샷을 보면, 상병인 구교환의 군복이 묘하게 빛이 바랬습니다. 자외선을 더 많이 받았고, 세탁을 더 많이 한 선임병의 군복색을 잘 표현한 거죠. 이 정도 소품을 준비하는 치밀함이니 내무반과 막사 등 부대 주변의 디테일한 묘사는 더 말하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단순히 이 사실만으로도 군 시절의 악몽과 악인이 연달아 떠오릅니다. 이제는 까맣게 잊었다고 생각했던 악인과 악몽이 차례차례 소환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드라마의 리뷰가 아닙니다. 제대한 지 20년도 훌쩍 넘은 어느 아재의 군 시절 트라우마. 그것은 결코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통렬한 자각에 대한 글입니다.           



대체군대는 왜 그럴까...     

 

 우리는 모두 드라마. D.P의 주인공이었거나 배경 인물 중 한 명일 겁니다. 우리는 모두 현역병으로 입대하거나 간부로 입대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들 중 한 명의 가족이나 친지였을 테니 말입니다.     

 

  저 역시 육군 현역으로 입대, 만기 전역한 반도의 흔하디 흔한 아재 중 한 명이죠. 드라마의 배경 시점인 2010년대 중반보다, 거의 20년 앞선 90년대 중반에 군 생활을 했었죠.      


  드라마의 헌병처럼 위장 군기가 빡세기로 유명한 병과는 아니었습니다. D.M.Z 철책 근무를 하면서도 무기는 물론 생활 시설과 지원은 열악하기 그지없던 최전방 부대도 아니었습니다. 육군의 수도권 상비사단의 하나. 이유 없는 구타와 얼차려는 비교적 없던 평범한 육군 부대였죠. 하지만 장비를 많이 다루는 수송 병과이다 보니, 구타나 얼차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드라마 D.P처럼 단순 생활관의 부조리를 넘어, 끔찍한 범죄 수준의 폭력이 절대 일상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부대에도 드라마 속 황장수 병장이나 류이강 상병처럼 폭력을 숨 쉬듯 휘두르던 고참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들의 폭력을 제지하기는커녕, 군의 기강 확립이란 명분 아래, 알고도 모른 척 묵인하던 간부들도 얼마든지 있었고요. 

  하지만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자는 병사에게 방독면을 씌우는 것도 모자라, 방독면 수통 결합구에 물을 쏟아붓는 가혹행위…. 선임 병사가 보는 앞에서 자위행위를 강요하는 행위... 이 정도의 극악한 수준의 범죄는 결코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드라마 D.P의 가혹을 넘어선 잔혹 행위. 생활관에서 자행되는 병사 간의 잔혹 행위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단순한 불의를 넘어 범죄행위를 목격하고도 묵인하거나 때로는 오히려 부추기는 듯한 간부들도 분명히 실제 목격했었고요.      


  어느 부대거나 가장 빈번한 괴롭힘은 단체 체벌과 얼차려일 겁니다. 

  취침시간에 이른바 "내 밑으로 집합!" 

  최선임 병사가 바로 아래 기수의 병사에게 "쫄따구들이 빠질대로 빠져서 헤롱헤롱 하는데 고참이 돼서 뭐 하는 거냐?" "군대 XX 잘 돌아간다"는 레퍼토리를 읊겠죠. 시대와 공간이 바뀌어도 어찌나 같은 레퍼토린지….

  기수별로 폭행과 얼차려가 이어집니다. 

  같은 계급 내에서도 기수를 따져 폭행과 얼차려가 이어지는 거죠. 

  이걸, 당일 부대의 일직사관 또는 일직사령이 모를 리 없습니다. 이동이 제한되는 취침시간에 수십 명의 병사가 생활관을 벗어나 움직이고 얼차려를 받고 또 매를 맞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오히려 당일 일직사령에게 ‘부대 기강’을 잡겠다는 사전보고를 하고 ‘집합’을 시키는 경우도 흔했죠. 아직도 당시 고참 병장에게 ‘취침시간 후 단체기합’ 보고를 받던 인사계(현재 행정보급관)의 알 듯 모를 듯한 묘한 미소를 기억합니다.

  더 끔찍한 건, 그 인사계가 결코 부정과 비리를 일삼던 간부가 아니었단 거죠. 나름대로 직업군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소 병사 간 폭력 발생 방지를 위해 노력을 많이 하던 사람이었죠. 그런 간부조차도 때때로 병사 간의 ‘보고’된 폭력에 대해서는 묵인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질 수밖에 없었죠.      


  당시는 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민주 정부라고 겨우 말할 수 있는 ‘문민정부’ 시절이었습니다. 

  그 후로 20년이 더 지난 2010년대 중반까지... 군대 내의 폭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체 이런 일이 왜 대물림되는 걸까요.           



실화 기반 드라마 D.P     

  

  넷플릭스 드라마 D.P. 

  2010년대 중반, 내무반 총기 난사 사고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입니다. 

  그 끔찍한 사건의 기억을 되살리기보다 차라리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기억을 지우는 편이 행복할 정도죠... 



  윤일병 사건


  2014년, 28사단 의무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냥 살인사건도 아닌, 수명의 선임 병사가 한 명의 후임 병사를 죽을 때까지 폭행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입니다.      


  2014년 4월 7일, 28사단 포병여단 977 포병대대 의무대. 

  윤일병이라는 청년, 조금은 어수룩하고 선임병사들이 괴롭혀도 별다른 반항 없이 오히려 스스로 자책하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악마도 분명 있었죠. 유독 윤일병을 괴롭히던 선임 병사 중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유명한 전국구 조폭’이고, 자신도 대를 이어 조직 생활을 하다 입대했다고 주장하는 악마가 있었습니다. (폭행을 주도한 병장이 25살인데 23살로 간부인 하사조차 이 악마 병장에게 사석에서는 ”형“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그 정도로 악의 카리스마가 강한 인물이었죠)     


  군대 밖이었다면 쉽게 통하지 않을 거짓말이었죠. 하지만 군 생활관 내에서는 조직폭력 아버지와 조직 생활 중 입대라는 거짓말이 의외로 그럴듯하게 먹혀듭니다. 군대가 폐쇄적 생태계이기 때문이죠. 

  자신보다 상급자, 그게 상관이건 선임병이건, 그들이 말하는 건 그럴듯하든 그렇지 않든 일단은 신뢰하는 척이라도 해야 군 생활이 괴롭지 않다는 건, 모든 병사들이 입소대 첫날부터 온몸으로 체득하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유독 윤일병을 괴롭혔습니다. 

  폐쇄적 집단에서 한 명이 누구를 유독 집요하게 괴롭히면, 주위에 악마에게 동조하는 작은 악마들이 생겨납니다. 

  드라마 D.P에서 황장수의 고백처럼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라는 마음이죠. 


  지루하고 괴롭기만 한 군생활 중 얻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작은 권력, ‘내가 저놈보다는 확실히 위에 있지’라는 마음은 의외로 큰 만족감을 주니까요. 군 생활관의 절대 권력인 병장이 타켓팅한 상대, 그 사람이 성격도 온순하다면 폭력에는 가속도가 붙기 마련입니다. 처음에 이렇게 폭언해도 괜찮을까...  이렇게 때려도 되나 싶었던 보통 사람들도 쉽게 악마가 되는 거죠.      


  윤일병은 지속적으로 괴롭힘과 구타를 당했습니다. 

  드라마 D.P에서 최준목 일병과 조석봉 일병이 당한 폭력과 유사했을 겁니다. 

  드라마의 폭행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선임 기수와 계급 이름을 외우지 못한다’며 당하는 무차별 폭력. 라이터 불로 성기 주위를 태우며 ”왁싱을 해준다 “는 폭력에 성폭력을 더한 잔인함. 기수별 집합을 건 후에 발생했을 내리 갈굼 등등.     


  윤일병도 비슷했을 겁니다. 

  악마 병장의 잦은 폭행으로 다리를 잘 못쓰자, 그걸 꾀병이라며 더 폭행. 

  소염제를 성기에 발라 수치심과 고통을 동시에 강요당했습니다. 치약을 먹이기도 했고요. 

  악마들은 폭행 사실이 밝혀질까 봐, 윤일병이 휴일에 교회도 못 가게 막았습니다. 가족 면회도 못 오게 막았을 정도였죠….     


  의무대 특성상 사단 예하 부대의 환자 장병들이 입실합니다. 윤일병은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도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악마 병장과 작은 악마들은 타부대 ‘아저씨’들에게 이렇게 협박했다고 하네요.      

  “아저씨들은 아무것도 못 본 거예요”     


  윤일병 사망 후, 군 수사로 밝혀진 것만 이 정도입니다... 

  대체 밝혀지지 않은 괴롭힘과 폭행은 얼마나 더했을까요. 잠을 안 재우고 얼차려를 주는 건 차라리 양반이었겠죠...     

  윤일병은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나날을 겪었습니다. 

  주위에 선임병들이 모두 나쁜 놈들만 있던 건 아니었겠죠. 누군가는 용기를 내 윤일병을 도와주고 몰래 뒤에서 윤일병을 응원했을 겁니다. 

  하지만 소수의 선한 선임병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고작, 윤일병을 PX로 불러내 먹을 것을 사주거나 어깨를 토닥이며 ”군대 참 X 같지... “가 다였을 겁니다. 소대장, 중대장 또는 사단 헌병대에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탄원을 하진 못했을 겁니다. 현역 출신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죠. 


  왜 나고요? 

  그랬다간 악마 병장과 그에 동조한 작은 악마들이 군 검찰에 기소되고 실형을 받는 정의로운 결말 대신, 악마 병장과 작은 악마들이 타부대로 전출되고, 피해자인 윤일병 또한 관심병사란 딱지를 붙인 채 타 부대로 전출되어, 그곳에서 이방인 또는 새로운 피해자로 군생활을 마칠 것이 틀림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결국, 악마 병장이 전역하고... 윤일병도 이유 없는 폭력을 당하지 않을 만큼 선임 병사가 되는 시간. 그놈의 국방부 시계만이 해법이었을 테니까요.      


  국방부 시계는, 윤일병에게 해피엔딩을 안겨주기 전에 죽음을 먼저 주었습니다. 

  윤일병이 사망한 그날. 그는 의무대 생활관에서 작은 호사, 냉동만두를 먹고 있었다 합니다. 그걸 아니꼽게 본 악마 병장과 작은 악마들이 여느 때처럼 윤일병을 구타하기 시작했죠. 

  윤일병은 어느 순간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악마 병장을 포함한 선임병 4명은 윤일병이 쓰러졌는데도 구타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윤일병이 연기를 한다고 비웃으며 계속 구타했죠... 

  윤일병은 결국 뇌사상태에 빠졌고, 후송되었지만 바로 다음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윤일병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드라마 D.P의 헌병대장처럼 자대 내에서, 범인을 스스로 체포해 은근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죠.  군 수사본부가 꾸려지고, 폭행 가담자가 차례차례 밝혀집니다. 

  그중에서도 윤일병을 직접 사망에 이르게 한 병사 4명은 각각 징역 35년, 12년을 선고받습니다. 

  나름대로의 정의가 실현되었다 생각하십니까?         


  

시스템이야말로 악마다     

 

  악마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윤일병의 직접 사인은 악마의 폭행입니다. 그 악마의 폭행을 막지 못한 건, 분명 우리 ‘군대’입니다. 정확히 군대의 시스템입니다. 


  폭행 직접 가담자 4명은 모두 중형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폭력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관리 감독해야 할 시스템과 지휘부는 어떤 징계를 받았을까요?      


  윤일병 사망 당시 의무대장은 직무유기로 형사 입건되었고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사실, 사망 당시 의무대장은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부대 내 병사 간의 부조리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볼 수도 있죠. 네, 의무대장 개인적으로는 억울한 지점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단위부대의 최고 지휘관입니다. 단위부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과 과의 최고 책임자라는 얘기죠.      


  실제 윤일병이 괴롭힘을 당하던 시절의 의무대장. 그의 책임이 더 큽니다. 

  폭력을 몰랐다면 무능했고, 알면서 방관했다면 그 자체로 범죄죠. 전임 대장 역시 직무유기로 기소되었고 예정된 진급이 취소되며 전역했습니다. 하지만, 폭력이 빈번하던 당시의 단위부대 최고 지휘관이 폭력을 인지했는지 묵인했는지에 대한 수사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의무대의 지휘 책임은 의무대장에게 있지만, 실제 병사들과 같이 호흡하는 간부는 소대장이나 부사관 같은 간부들입니다. 대대장급인 의무대장이 병사 개개인의 특성과 생활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 전체를 알기는 어렵죠. 소대장이나 부사관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병사들이 안전하고 씩씩하게 군 복무를 마치는 것이 아니죠. 휘하의 장병들이 탈영 같은 중차대한 사고 없이 무사히 전역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머지는 진급과 자신의 전역 후 미래가 더 큰 관심이죠. 

  오히려 일부 간부는 병사 간의 부조리를 은근히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게 군의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요.      


  진짜 문제는 이거죠. 대대장 이상의 장교, 특히 장성급의 고위 장교는 병사끼리의 내무생활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을 제복을 입은 동료 시민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나라가 알아서 채워주는 무료 자원으로 생각하죠. 병사들이 일정 기간 자유와 권리를 포기한 채,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죠.      


  더 큰 문제는 군대라는 시스템입니다. 폐쇄적이고 자기 완결적 조직의 문제죠. 

  군 내부에서의 부조리는 사상 최강의 군대 미군에도 존재합니다. 우리처럼 징집당하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특수 직업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직업 중 하나인 미군조차, 위계에 따른 부조리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글로벌 게시판 커뮤니티인 레딧에 올라온 수많은 D.P 리뷰 중, 미군 출신으로 보이는 이들의 댓글이 눈에 띕니다.      


  ”나는 미 해군에서 복무했어. 어느 나라나 군대 내의 부조리는 모두 비슷한 것 같아 “  

  ”우리 부대에서도 저런 일이 있었어. 하지만 절대 밖으로 알려지지 못하지 “          



임병장 사건어쩌면 윤일병의 미래     

  

  끔찍한 상상을 하나 더 해봅니다. 

  윤일병이 악마 선임들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아무도 쉽게 갈굴 수 없는 계급, 병장까지 진급했다면... 그는 과연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전역할 수 있었을까요?      


  2014년 6월 21일. 

  강원도에서 현역 병사에 의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합니다. 

  강원도 고성 22사단 55 연대 GOP(General outpost;일반 전초기지) 군탈 및 총기 난사 사건.    

  

  현역 병사의 무장 탈영도 끔찍한 사건인데, 무장 탈영 전에 이미 5명을 죽이고, 9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에, 무기를 들고 탈영해 이틀 동안이나 군병력과 대치한 사건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병사가 전역을 불과 3개월 남긴 말년 병장이었단 사실이죠.      


  임모 병장. 고교 시절부터 빵셔틀과 이지메가 일상이었던(라며 군검찰은 주장했습니다) 청년이었습니다. 임병장은 입대부터 A급 관심병사로 주목받았죠. 

  현역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관심'이라는 말에 'A급'을 더한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얼핏 말을 들으면, 부대 전체가 해당 병사를 보호를 목적으로 'A급'의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그에게 ‘A급 관심병사’라는 낙인을 이마에 찍어, 그 누구의 존경도 인정도 받지 못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임병장은 분명 심신이 강인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체력, 심약하다기보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게 일상인, 섬세한 성격이었을 겁니다. 예전 처럼 ‘병력자원’이 넘쳐나던 시대였다면, 분명 현역병 징집을 당하지 않았겠죠.  한국의 고령화는 군대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전이라면 절대 현역병으로 징집되지 않았을 청년들이 현역병 부족을 이유로 현역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보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무조건 약한 사람으로, 우리보다 약하니 조금 짓밟아도 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죠. 

  슬프게도 군대에선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한국군이라서가 아닙니다. 미군에도 흔한 일이죠. 군대라는 위계가 강한 조직이 폐쇄적이라면, 소수자는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쉽게 배척과 배제의 대상이 되기 쉽죠. 

     

  임병장은 분명, 후임 시절에 윤일병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어엿한 선임이 되고 나선, 반대로 후임에게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미 해병대에서 시작했지만, 우리 해병대에도 뿌리내린 이른바 ‘기수 열외’가 작용했을 겁니다. 고참이지만 고참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때로 투명인간 취급하는 군대 내 부조리. 

  병사들끼리의 잡담 같은 사소한 모임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선임 병사로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와 대우도 배제되었을 겁니다. 

  윤일병처럼 매질을 직접 당하지 않았을 뿐, 같은 수준의 잔혹 행위였겠죠. 

  괴로웠을 겁니다. 미치도록 외롭고 힘들었을 겁니다.      


  임병장은 사건 당일, GOP 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합니다. 그리고 곧장 내무반에서 동료 병사를 향해 K2 소총을 난사하고, 그것도 모자라 수류탄까지 투척했습니다.(드라마 D.P 6회의 마지막 장면은 이 참사를 재연한 것이겠죠) 

  그 자리에서 간부 분대장과 부분대장인 병사 4명이 즉사했습니다. 임병장은 총기와 실탄을 소지하고 부대를 이탈합니다. 군대 내 사건 사고 중 가장 끔찍한 무장 탈영이 시작된 겁니다. 

  드라마 D.P에서 잠시 묘사된 것처럼, 무장탈영 군인에게는 체포조가 출동하지 않습니다. 무장 추격조가 출동하죠. 투항에 불응하면 사살 명령을 내립니다. 이미 참극이 벌어졌는데 또 다른 참극이 벌어져야 막을 내리는 비극 중 비극이죠.      


  임병장 무장 탈영 후 하루가 지난, 22일이 되면 해당 부대인 22사단은 물론 인근 사단에서까지 9개 대대급 무장 병력이 임병장을 추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추격조끼리 오인사격으로 인명손실이 일어났죠. 

  결국 임병장 부모님까지 모셔와 투항을 종용했지만, 임병장은 이미 동료를 살해한 자신의 말로가 어떨지 직감했습니다. 임병장은 자신이 지닌 총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고, 다행히 현장에서 죽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막을 수 없는 사건이었나     

 

  목숨을 건진 임병장을 둘러싼 수사가 벌어졌습니다. 

  단언컨대 해당 부대와 상급부대의 고위 지휘관들은, 체포 작전 중 임병장이 목숨을 잃기를 바랐을 겁니다. 후임 병사도 아닌 전역 3개월 전의 선임 병사의 무장 탈영의 배경이 무엇이건, 그것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자신들의 지휘 감독 책임이 될 테니까요. 

  그들은 아마도 임병장이 그대로 죽고 나면, ”임병장은 입대 당시부터 A급 관심사병이었고, 병사 간의 생활이 원만하지 못했으며, 사회부터 문제가 많았다 “라며 사건을 종결했을 겁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임병장은 살아남았고, 수사 과정 중 끔찍하고 추악한 진실이 하나씩 밝혀졌죠.      


  사건 2개월여 전, 2014년 4월. 

  임병장이 소속된 GOP의 소초장은 문모 중위로, 당시 장비 분실 및 허위보고 모의 혐의로 보직해임 상태였습니다. 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휴대하는 전장 GOP의 관리감독이 부실했다는 직접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전방 GOP의 소초장을 공석으로 비워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후임 소초장은 중대의 부중대장인 강모 중위가 겸임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전역을 몇 개월 앞둔 말년이었고, 임병장 GOP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단 거죠. 

  GOP나 GP 같은 일선 소초는 항시 실탄을 휴대하는 부대입니다. 근무도 고되고 생활환경도 녹록치 않죠. PX라 불리는 복지시설도 한 달에 한두 번 순회할 뿐입니다. 큰 운동장도 없고 따뜻한 샤워도 힘들고, 먹을 것도 소대 또는 중대 단위로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요리 솜씨 좋은 병사가 있다면 모를까... 그러니 식재료는 풍부해도 맛있는 밥을 먹을 확률도 거의 없는 곳이죠. 

  게다가 당시 사단장은 진급을 위해, 예하 부대에 무리한 작전을 지시. 유독 자살자와 사고 사망 장병이 많았던 부대였습니다. 이런 부대였으니, 하급 장교와 간부들이 병사 개개인의 개성을 파악해 부대를 지휘하는 건 언감생심이었겠죠.      


  만일, 임병장이 병장이 아니라 일병 이하 계급이었다면, 군의 수사와 재판은 조금 더 달라졌을 겁니다. 

  일단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사건 사고의 원인을 끝까지 추적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게 수사와 재판의 정석이겠죠. 군 수사와 군 재판은 전혀 다릅니다. 악랄하게 말하자면, 고위 장교(지휘관)의 책임을 최대한 덜 묻는 수사와 재판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건 사고를 일으킨 직접 행동자의 일탈로 모는 게 가장 속 편하죠. 우리가 군대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의 배경을 거의 모두 ”OOO의 일탈 행위“라고 듣는 이유입니다.       


  군 검찰은 임병장의 계획적 범행으로 몰아갔습니다.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GOP의 문제, 사단장 등 고위 장교의 예하 부대 질책이 원인이 된 부대내 사고 등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죠. 임병장 개인에게만 죄를 몰아갔습니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임병장의 변호인은 깨달았습니다.


  애초에 임병장은 현역병으로 징집되어서는 곤란했다. 

  설사 현역병이더라도 실탄을 휴대하는 임무가 기본인 GOP 근무는 절대 아니었다. 


  임병장의 변호인은 국민참여재판을 원했지만, 군사재판인 이상 그게 진행될 리 없죠. 

  결국, 고등군사법원을 지나 대법까지 왔고, 2016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임병장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대법 전원합의체는 사형선고가 정당화될 특별한 사정을 선고문에 밝혔습니다.      


  “GOP 환경이 사건 발생의 한 요인이긴 하지만,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젊은 장병들을 GOP 등 최전방에 근무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동안의 군 수사와 군 재판의 전형입니다. 사건 사고의 발생원인을 냉정하게 추적해,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고치는 대신, 너무도 손쉬운 선택. 사고 유발자가 피해자든 가해자든 모두 개인의 일탈과 비행으로 마무리 짓는 결론.      


  만일, 윤일병이 끔찍한 가혹행위로부터 끝내 살아남았다 해도 그는 또 다른 임병장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끔찍한 상상이지만, 도무지 상상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비극입니다. 


  병사 간에 벌어진 잔혹 행위는 결코 병사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병사들의 건강한 내무생활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현재의 시스템과, 병사들이 최소한의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지 못하는 열악한 자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왜 내무생활 부조리 발생 이유가 병사끼리의 인성 문제입니까.      


  모든 사람에겐 선인과 악인이 숨어 있습니다. 

  좋은 시스템은 선인의 얼굴을 칭찬하고 악인이 발현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병사 간의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면, 병사의 악한 자질을 장려한 시스템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희소한 자원을 다수의 청년이 공유해야 하는 형태. 이게 진짜 문제죠. 

  컵라면 한 그릇, 초코파이 하나를 맘 편안히 먹을 수 있는 권리. 관물대 벽에 등을 기대고 편히 앉을 수 있는 권리. 내가 편한 시간에 세탁기와 탈수기를 충분히 돌릴 수 있는 권리. 이런 것조차 특권이 있어야 접근 가능한 환경.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병사를 때가 되면 나라가 알아서 채워주는 무료 자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일정기간 자유와 권리를 희생한’ ‘동료 시민’으로 대우하는 문화겠죠.      

  군인은 군대라는 폐쇄적 조직만을 위해 희생하는 군인이 아니라, ‘제복을 입은 동료 시민’입니다. 그중 징집된 병사들은 ‘일정 기간 제복을 입은 동료 시민’이고요.      


  이게 없는 한, 우리 군대는 아니 어느 나라 군대도 동료 시민에게 사랑받는 군대가 될 수 없을 겁니다.      



p.s / 2018년부터 우리 병사들도 일과시간 외에 자유롭게 휴대폰을 사용하는 등, 군 내무생활에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도 그 후, 또 다른 윤일병과 임병장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군에서는 성폭력이 발생하고, 어쩐 일인지 피해자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다음 편에는 오키나와 시리즈, 진짜 연재할게요) 

작가의 이전글 [특별편]한국과 일본의 아프간 철수작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