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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재덕후 공PD Sep 08. 2021

차기 수상이 고노 다로?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2019년 가을, 아베는 지병을 이유로 총리에서 물러납니다. 

  당시 아베는 ‘아베노 마스크’ 또는 ‘아베의 코 가리개’라 조롱받던 형편없는 품질의 마스크로 지지율 최저치를 날마다 경신 중이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아베 주위는 비리의 종합 선물세트 같은 느낌이었죠. 절친이 오사카 국유지를 헐값에 살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했던 모리토모 스캔들. 그리고 아베 자신의 선거법 위반이 확실해 보이는, 지역민 초청 행사에 자민당의 자금을 유용한 사건 등등. 

  아베의 자진 사퇴는, 검찰 기소를 목전에 두고 벌인 정치적 술수라는 평가가 일본에서도 나왔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뒤를 이어, 아베 관저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스가 요시히데가 총리가 되었습니다. 자민당 다수 계파 중 하나인 기시다파와 아베파의 연합이 나름의 절충안을 낸 셈이었죠. 무색무취의 이인자 또는 삼인자 느낌의 스가를 잠시 전면에 내세우고, 2020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다시 복귀할 속셈이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우여곡절 끝에 2020 도쿄 올림픽이 1년 미뤄졌고, 스가의 임기도 1년 미뤄졌습니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일본은 종합순위 3위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선수들 목에 걸린 메달을 제외한 나머지는 참담합니다. 무엇보다 1년 연기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누적 적자. 

  무관중 경기 채택으로 티켓 판매 수익 약 1조 원이 사라진 건 약과일 정도죠.       


    

망국의 올림픽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일본은 종합순위 3위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선수들 목에 걸린 메달을 제외한 나머지는 참담합니다. 무엇보다 1년 연기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누적 적자. 

  무관중 경기 채택으로 사라진 티켓 판매 수익 약 1조 원은 작고 연약해 보일 정도입니다. 일본이 올림픽 유치와 개최를 위해 시설 신축 보수 그리고 운영을 위해 사용한 총액은 무려 3조 4천억 엔(약 31조 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합니다. 올림픽이라는 최대 최고 수준의 국제 이벤트를 위해 30조 원이 넘는 돈을 쓴다... 하기야 200년대 후반, 우리는 4대 강 정비를 위해 강바닥을 파헤치는데 20조 원을 투입했으니, 올림픽이라는 이벤트에 사용된 30조 원이 그리 커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올림픽이 그렇지만, 2016 리우 올림픽은 하루가 다르게 예산이 올라가는 어설픈 행정력의 절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리우 데 자네이루와 브라질 중앙정부는 리우의 올림픽 개최를 확정 지은 2009년, 올림픽 개최에 총 7조 원 이내의 예산을 상정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 직전, 리우 올림픽 예산은 11조 5천억 원까지 증가했죠.      


  2018 평창 올림픽 총예산은 14조 원이었습니다. 올림픽 개최와 운영에 들어간 예산은 약 3조 원이었고, 대부분은 고속철도와 경기장 신설 그리고 경기장 주변 정비 등의 지방균형발전 자금의 성격이 컸죠. 평창 올림픽 예산의 상당수는 KTX 노선 신설 등의 기반시설 비용이었습니다.      


  도쿄 역시 주 경기장을 신축하고 도시 정비사업에도 상당 예산을 썼다지만, 총예산이 평창의 두 배를 훌쩍 넘는 30조 원을 썼습니다. 일본의 임금 수준이 우리보다 높아서 벌어진 일일까요? 2018년과 2020년의 양국 물가와 평균임금 등을 비교하면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구매력지수는 2019년을 기준으로 우리가 일본을 앞섰습니다. 

  일본은 평창올림픽의 2배 넘는 예산을 쓰고서도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열린 오다이바 인근의 생활하수 오염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죠. 대체, 30조 원은 어디에 쓰인 것일까요? 

  일본 언론의 탐사보도에 의하면, 중간에 증발한 예산이 많다고 합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운용요원 하청을 주면 하청업체는 실제 일하는 운용요원 1명에게 하루치 임금 1만 5천엔(약 16만 원)을 지급했는데, 막상 도쿄올림픽 조직위에는 4만 엔(약 43만 원) 이상을 청구했다고 하죠. 이렇게 중간에 증발한 예산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이러니 도쿄 올림픽을 취소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았죠. 그런데 막상 올림픽 취소를 결정하면 1조 8천억 엔(약 20조 원)의 경제손실이 발생한다는 노무라 종합연구소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IOC의 배상 등 직접비용만이 아니라, 일본의 국제 신인도 하락과 국가 브랜드 하락에 따른 경제손실도 포함되었죠. 

  반면, 도쿄 올림픽을 무관중으로 할 경우는 티켓 수익 약 1조 원에 경기장에, 관중이 사라졌으니 스폰서십도 따라서 사라지는 부작용에 따른 약 5천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봤습니다. 결국 일본은 20조의 손실보다는, 정확히 세계 일류 국가 일본의 이미지 사수를 위해 1조 5천억 원의 손실을 과감하게 선택했던 거죠.     

 

 코로나 시국에 개최된 올림픽은 일본에 전 세계의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도 함께 몰고 왔습니다. 도쿄 올림픽 조직위는 올림픽 기간 내내, 선수촌을 중심으로 버블 방역을 외쳤지만 외국 선수단의 나리타 공항 입국과 동시에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선수단이 등장하며 이것도 사라져 버렸죠.       


  올림픽은 끝났지만 빚과 변이 바이러스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성공적 올림픽을 통해 재등장하려 했던 아베의 꿈도 스가의 임기 연장의 꿈도 사라졌습니다.           



삼파전에서 이파전       

  차기 일본 총리 유력 후보는 3명으로 압축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민당 내 명망 높은 중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정조회장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그리고 망언 제조기 고노 다로(河野太郎) 행정개혁상이자 백신 담당상. 

(왼쪽-이시바 시게루, 가운데-기시다 후미오, 오른쪽-고노 다로)

  이시바 시게루는 자민당 내 대표적 친한파로 알려진 인물입니다만, 이건 국내 언론의 희망 회로의 의한 분류로 생각됩니다. 물론 이시바는 아베 집권 당시 일본은행에서 무한정 돈을 찍어낼 뿐인 바보 같은 아베노믹스를 가장 통렬히 일선에서 비판했던 정치인입니다. 

  아베와 각을 세우는 모습에서 국내 언론은 이시바가 차기 총리가 되는 것을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시바는 아베에 비해서 지극히 상식적 정치인입니다. 우리로서도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 만한 인물이지만, 아쉽게도 고노 다로 지지선언을 하며 물러섰습니다.

      

  기시다 후미오는,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 등 자민당 내에서도 매운맛으로 분류되는 극우와는 분명 결을 달리하는 정치인이죠. 이시바처럼 아베노믹스를 통렬히 비판하진 않았지만, 자민당 내에서는 적극적 재정 재건파의 기수를 맡고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가 차기 총리가 된다면, 냉각을 넘어 명왕성 얼음처럼 얼어버린 한일관계에 분명 유의미한 진전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차기 일본 총리에는 세 번째 후보가 유력해 보입니다. 이시바 시게루가 일찌감치 고노의 손을 들어준 거죠. 

  고노 다로. 

  이 자는 아베 신조, 아소 다로와 더불어 자민당 극우 중 극우 인물입니다. 아베가 비교적 교활하고 점잖은 이미지를 어필한다면, 아소 다로는 망언 제조를 넘어 망언 폭탄공장 레벨입니다. 아소의 망언은 이런 식이죠. 고령화로 갈수록 노인의 사회복지비용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대체 (노인들은) 언제까지 살아 있을 셈이냐!”라 언론 앞에서 당당히 외치는 인간이죠. 이런 아소와 망언으로 당당히 맞설 수준의 대표 정치인이 바로 고노 다로입니다.      


  신기하게도 고노 다로는 일본인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특히 극우 세력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죠. 아소 다로의 망언은 일본 내에서도 비난받기 일쑤입니다. 반면 고노의 망언에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하네요. 이걸 예능 식으로 풀어말하면, 아소는 ‘선을 넘는 캐릭터’이고, 고노는 ‘선이 없는 캐릭터’인 겁니다. 

  금기도 성역도 없는 인간에게 느끼는 묘한 카타르시스는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중요한 건, 고노 또는 만에 하나 기시다가 차기 총리에 선출되어도 일본 정치의 근본적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겠죠. 일본 정치가 유의미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선, 아베와 아베 정부의 비리와 부패를 어떻게든 고발하고 법정에 세워야 할 겁니다. 

  아베의 절친 모리토모 학원의 스캔들-국유지를 국가 공무원을 동원해 시세보다 헐값에 아베의 절친인 모리토모에게 매각한 사건-은 법상식이 존재하는 모든 나라에서 당연히 구속수사가 기본인 사건입니다. 차기 총리가 누가 되든 피할 수 없는 스캔들이죠. 그런데 기시다는 9월 2일 모리토모 스캔들에 대해 “(모리토모 스캔들은) 조사가 충분한지 아닌지는 국민이 판단해야 한다. 국민은 이미 조사가 충분하다고 판단하다 말하고 있다”라 말했습니다. 자민당 내 최대 계파인 아베가 소속된 호소다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일종의 충성 서약인 셈이죠.            


    

고노 담화 그리고 무라야마 담화     


  호랑이 아버지 아래 개자식 없다는 속담이 있죠. 

  고노 다로는 이 속담을 무용으로 만든 대표 사례입니다. 


  일본 주요 정치인이 모두 그렇듯 고노 역시 정치 금수저 집안입니다. 

  아버지는 외무상과 부총리를 역임한 고노 요헤이, 할아버지 역신 주요 장관직을 수행했으며, 증조할아버지 역시 중의원과 참의원 경력이 있죠.      

  고노 다로의 아버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는 우리에게 ‘고노 담화’로 유명합니다.   

  고노 요헤이는 1993년 내각관방장관(우리의 청와대 비서실장에 해당) 재임 시절, ‘과거 일본제국 육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했다는 시실’을 인정한 담화, 고노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고노 담화의 위안부 관련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1. 구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매춘소의 설치에 연관되었다

2. 일본군의 요청을 받은 민간업자의 감언과 강제 등에 의해 그리고 때로는 지방관리나 주재 군인의 강제의 의해 위안부가 자신의 의사에 반해 모집되었다

3. 위안부는 위안소의 강압적 환경 아래 비참하게 살았다     

왼쪽 - 고노 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아버지), 오른쪽 - 고노 다로

  이미 30여 년 전에 일본의 관방장관, 즉 우리식의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런 담화를 발표한 겁니다.      


  고노 담화는 1995년의 무라야마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와 함께 90년대 이웃과의 평화를 생각하던 ‘따뜻한 일본’의 대표 사례입니다. 90년대 버블 절정기의 일본은 당시 아시아 전체 이웃 국가의 GDP를 합친 것보다도 더 큰 규모의 경제를 자랑했었죠. 경제도 문화도 군사력도 아시아 전체를 능가할 정도였으니, 90년대의 일본은 의외로 이웃들에게 ‘따뜻한 얼굴’을 자주 보였습니다. 2010년대 이후의 일본이 갈수록 ‘못난 얼굴’을 보여주는 건, 그들의 경제력과 문화, 군사 등이 사회 전반에 걸쳐 후퇴했기 때문입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에 발표되었죠. 

  1995년은 일본이 패전한 1945년으로부터 정확히 50년 후입니다. 통칭 무라야마 담화라고 말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戦後50周年の終戦記念日にあたって)’입니다.       

 

  8월 15일은 우리의 광복절 그리고 일본에는 패전일이죠. 

  대신 일본은 이를 ‘종전기념일’이라 부릅니다. 

  현대 일본의 주요 기념일이니 총리실은 매년 이런저런 담화를 발표합니다. 

  하지만, 역대 총리 중, ‘일본이 태평양전쟁과 전쟁 이전의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한 적은 처음이었죠. 간혹 일왕이 생일파티나 황실의 주요 행사 기자회견에서 유사한 이야기를 했어도, 일본의 최고 권력자가 내각회의를 거쳐 공식 발표했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1. 과거 일본제국이 벌인 전쟁은 침략전쟁이었고, 일본은 이를 깊이 반성하고 독선적 내셔널리즘을 물리쳐야 한다

2. 일본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라야마 담화는 2년 전의 고노 담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생각합니다.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을 인정한 1993년의 고노담화. 일본의 침략행위를 반성한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     

1993년 고노 담화 발표 후, 약 30년 뒤인 2021년. 

고노 요헤이의 아들 고노 다로가 일본의 총리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죄송해요.. 다음편에 진짜진짜 오키나와 시리즈 꼭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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