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족 코끼리 캠프가 보여준 가능성
나는 지금 치앙마이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생활비를 아끼며 글을 쓰기 위해 왔는데,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예전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집 근처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에 “이 많은 집 중 내 집 하나가 없네”라고 글을 올린게 생각난다. 그때는 그냥 생각나는대로 올려본건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줬던게 생각난다. 그만큼 집세/부동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라서 그럴것이다.
2018년에도 치앙마이에서 꽤 오래 머물며 지냈는데, 그 때 처음 접한 저렴한 월세와 물가 덕에 적은 생활비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치앙마이에서의 생활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당시 괴불노리개를 만들며 지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카렌족 사람들에게는 '비싼' 치앙마이의 집세 문제 때문이었다.
카렌족은 태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로, 주로 치앙마이 산악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나는 이들이 손으로 짜는 천을 이용해 한국의 공예품인 괴불노리개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판매하기 위해 치앙마이에서 장기 거주를 했다. 이 노리개를 만든 이유는 고향에서 살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도시로 떠나는 카렌족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에서 돈을 벌 수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마을에 머물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안에는 단순히 마을에 일자리가 없는것을 너머 더 복잡한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100여년 전 미얀마 쪽에서 건너와 이곳에 자리를 잡았어. 빈 땅에 정착한거라 우리는 땅 문서가 없어. 그리고 태국 정부는 이를 근거로 우리를 도시 근처로 이주시키고 싶어해 (*소수민족민들이 매년 화전을 해서 논을 만드는 것이 치앙마이 대기 오염의 주 원인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에서 살 수 없어. 도시에서는 돈이 필요하거든. 쌀, 과일, 고기, 모든걸 돈 주고 사야해. 그런데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 도시에서 일을 구한다고 해도 교육을 못받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저임금의 허드렛 일이고(당시 하루 최저 임금은 약 300밧, 현재 한화 약 15000원), 그 돈으로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대신 고향에서 살면 우리는 큰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버섯을 채취하거나 사냥을 할 수도 으니까. 돈은 아이들 교육비와 병원비, 도시로 나가 필요한 것들을 사올 정도의 돈만 있으면 돼. 우리가 고향에서 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야."
그리고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에 가는 대신 마을에서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내가 괴불노리개 만들기를 가르친 카렌족 마을은 코끼리 캠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도 이 코끼리 캠프에 처음 갔다가 이들을 알게되었다.
카렌족 마을 중에는 코끼리와 살아가는 곳이 많아 태국의 코끼리 캠프에서 일하는 조련사 중에는 카렌족 출신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캠프를 소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방콕의 부유층이나 외국인이다. 캠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교육을 받은이들이 나오면서 카렌족이 스스로 만든 캠프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 캠프를 만든 썬이라는 친구는 대학 학자금 대출을 받아 치앙라이 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했는데, 영어를 잘했기에 대기업에 취직해 남들보다 많은 월급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코끼리 캠프를 다니며 일을 배웠고, 카렌족 마을이 직접 운영하는 코끼리 캠프를 만든 뒤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들에게 카렌족의 천으로 괴불노리개를 만들어 기념품으로 판매해 보자고 했을 때 이들은 낮에는 농사일을 하면서 밤 시간을 이용해 노리개를 만들었고, 단순히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돈을 모아 재료비에 보태달라며 돈을 주기도 했다. 그들은 마을에서 살 방법을 위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며 도전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들이 처음 코끼리 캠프를 시작할 때에는 차량 대출비, 대학 학자금 대출 등을 갚느라 잘 시간도 없이 일하는 등 난항을 겪었지만, 현재는 카렌족이 직접 운영하는 코끼리 캠프로 유명해져 꽤 많은 수익을 내고 있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던 마을에 구멍가게가 생기는 등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을 보면서 단순히 더 나은 곳으로 떠나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도 치앙마이에서 글을 쓰며, 이런 경험들을 엮어 나만의 방법을 만들어 가고자 길을 모색해보고 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자원을 활용할 용기를 북돋아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