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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Nov 19. 2019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2019 후기

어서 와 외국 컨퍼런스는 처음이지?

정신없는 회의와 앞만 보고 달렸던 작업이 다 끝나고 남은 것은 출국뿐이었다. 사실 테크크런치 디스럽트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규모가 상당히 큰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후기성 정보를 얻지 못했던 것에 있었다. 매년 열리는 행사이고 과거에도 국내 몇몇 기업이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간단한 기사 몇 줄과 옛날 텔레비전 같은 슬픈 화질을 가진 사진 몇 개가 전부였다. 마음 같아선 우리 부스가 제일로 멋져 보였으면 좋겠어! 했지만 사실 부스 크기가 얼마나 되고 어떤 것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명확하지가 않아서 부스를 200프로 살린 준비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래도 있는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 회의까지 마친 후 난생처음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공항에 내렸다. 이전에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온 회사분들은 날씨가 그렇게 좋다며 극찬을 했는데, 내가 느낀 10월 말 11월 초의 샌프란시스코 바람은 생각보다 쌀쌀한 공기가 가득했다. 출발한 한국의 날씨보다 다소 차가운 느낌이었다.

 

어서 와 샌프란 공항은 처음이지?


행사 시작일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던 터라 행사 전 일과는 마지막으로 일정을 정리하고 하루 정도 쉬는 것 밖에 없었다.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해서 숨 돌릴 틈 없이 화상회의를 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10여분 내외로 짧게 끝났다. 그리고는 미국에 있는 게 하나도 안 믿기는 마음으로 산책을 하고, 밥을 먹고, 잠에 들었다.


행사는 총 2박 3일로 이루어져 있었다. 크게 다른 것은 없고 날짜마다 부스의 구성이 조금씩 바뀌는데 우리는 바뀌는 부스가 아니라 2박 3일 동안 그 부스를 지키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기술이나 회사를 소개하면 되었다. 본격적으로 기억을 되짚어 행사에 대한 회고를 해볼까 한다.


행사가 진행되었던 모스콘 센터


1. 부스의 크기는 생각보다 훨씬 작다.

물론 어떤 부스냐에 따라서 크기와 구성은 상당히 다르겠지만 코트라 쪽의 한국기업 부스는 작고 높은 원형 테이블과 약간의 공간이 전부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들었지만 본래 테크크런치 디스럽트의 행사 성격이 서서 가벼운 오픈마인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성향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의자는 없고, 공간은 클 필요가 없다.(이 말은 부스를 지키는 내내 서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암튼 다시 돌아와서, 작고 높은 원형 테이블에는 까만 천이 씌워져 있고 기업 이름이 인쇄된 A4 사이즈의 착상형 배너 같은 것이 있었다. 까만 천으로 길게 덮혀져 있기 때문에 테이블 안쪽으로 각종 짐을 넣어 보관하기에 용이했다.


2. 행사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나는 정신없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궁금해하지 못했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행사였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의 시내 중심부에서 열린 테크 관련 행사라고 생각하면 클 거라고 생각했을 만도 한데 예상을 전혀 못했다. 나는 판촉물을 나누어주거나 하느라 상세히 부스를 보진 못했지만, 관심 있는 부스에서 가볍게 이야기만 나누고 전부 둘러보는데 1시간은 쉽게 넘길 것 같았다. 그리고 꼭 테크크런치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어려운 기술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 기술을 설명하려 혈안이 되어있는 것도 아니라서, 둘러보며 새로운 기술이나 회사를 구경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


3. 이미지의 힘은 거대하다.

우리는 나누어줄 수 있는 물품으로 에코백, 볼펜, 리플릿 정도를 준비해서 갔고 긴 배너 하나를 준비해서 갔는데 배너에 적힌 '사슬'이란 철자를 보고 호기심에 어떤 회사냐고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에코백이 마음에 든다며 하나 줄 수 있겠냐 멈추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리플릿 디자인을 보고 발길을 멈춰서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멈췄다며 대화가 진행되기도 했다. 많은 기업과 프로덕트를 홍보하는 자리지만 그만큼 시선을 한번 잡아끄는 힘이 없다면 특별한 차별성을 가지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꼼꼼히 준비하고 퀄리티를 높여 준비해 간 것이 뿌듯한 순간들이었다.


4. 체력관리는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2박 3일간 이루어지는 행사였는데, 참석한 인원 모두가 서 있기에 좁은 공간이라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첫날 의욕에 들떠서 모두가 부스를 지키거나 열심히 에코백을 나누어주거나 했었다. 이게 다들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웠는지 다음날에 다리가 아프거나 몸살이 나거나 하는 등의 부작용이 속출했다.

그래서 둘째 날부터는 다들 알아서 쉬엄쉬엄 햇살도 쬐고 오고, 다른 부스 구경도 하고, 식사시간을 여유롭게 써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등 방식을 조금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스를 하루 종일 지키는 일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꽤 힘든 일이니 미리 마음의 준비나 체력을 길러두면 좋을 것 같다.


5.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나의 희망과 다르게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여분으로 챙겨갔던 법인카드는 기한이 만료된 이유로 결제가 되지 않았고, 결국 부대표님의 사비로 처리하고 귀국 후 따로 처리해 받아야 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숙소로 가야 하는 상황에 벌어진 일이라 퍽 난감한 상황이었고 시간도 꽤나 지체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뿐인가, 미리 논의되었던 것과 다른 상황들은 언제나 펼쳐지고 혼란 속에 놓이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 순간 '이 상황이 무조건 바로잡아야 할 정도의 일인가?'를 생각했을 때 '아니'라는 답과 해결할 수 있는 대안들이 있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방법을 찾고 처리했다. 준비는 꼼꼼히 하되 완벽하리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6. 본인의 짐은 본인이 지켜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대해서 이리저리 검색해봤을 때 무서운 말을 보았는데, 차 안에 귀중품을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잉? 하고 고갤 기울였는데 웬걸 차 안에 귀중품을 두면 창문을 깨고(!) 물건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신뢰 가득한 문화에서는 물음표가 백만 개쯤 드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내 짐은 내가 조심히 잘 챙기는 것이 맞으니 마냥 긴장을 늦추지 말자.

실제로 에코백 수량이 많이 남을 듯해서 부스 정리하면서 부스 테이블 위에 에코백을 꽤 많이 쌓아두고 갔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와보니 모두 사라져 있었다. 물론 가져가라고 둔 물건이긴 했지만 '공짜입니다'라고 써붙여놓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없는 사이 모두 팔린 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햇빛이 좋았던 모스콘 센터 뒤 잔디밭


나의 역할이 기술이나 회사를 막 설명하는 쪽보다는 가볍게 인사하고 판촉물을 나누어주었다 보니 그리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영어 실력은 좋을수록 좋은 것 같다.) 그러나 늘 막연히 꿈속에만 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그 과정 중에 겪은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2019 참석이 또 다음 해에 행사를 준비할 누군가에게 되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서 후기를 따로 작성했다. 막연한 불안감과 모호함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꼭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이런 외국 컨퍼런스도 있구나 하고 글을 통해 구경하기를, 그리고 나중에 잊어버릴 즈음에 이런 일도 있었지 하고 되짚어볼 나를 위해서.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2019 후기 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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