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동안 아홉 번의 면접, 그리고
9월 마지막 날, 회사를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회사와 나를 분리시키기 어려워졌다. 이렇게 괴로워하다가는 모두를 저주하고 미워하게 돼버릴 것 같아서 완전히 끊어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그만두기로 결정했으면 그만이지, 그 결정을 또 한동안 괴로워했다. 기간도 다음 행선지도, 정해 놓은 게 없더라도 어느 순간이 되면 마음속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그만 일을 구해야지. 내겐 그 경계가 6개월이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고생했어. 너는 좀 더 쉬어도 돼"에서 "벌써 그렇게 쉬었어? 이제 슬슬 일 해야겠네"로 바뀌는 건, 6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데 시동을 거는 건 항상 다른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 뒤로는, 타인의 말이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할 수 있는지 경험하는 매일이었다. 스스로 타인의 말에 꽤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만 거스를 것 없이 살았을 뿐이었다. 그동안은 보통의 삶의 궤도를 벗어난 적 없이 살았던 것, 다른 사람 말 들을 일이 없었을 뿐이었다. 일은 그만뒀는데, 그다음 스텝을 잘 모르겠다. 뭘 알아야 어디론가 방향을 정해 움직일 텐데, 왜 이렇게 깜깜한 걸까. 나이가 서른 중반, 사회생활을 10년이나 했으면 뭔가 좀 더 명확해져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궁금했다. 남들도 이럴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특기는 적응이라고 할 만큼, 상황이 어떻든 적응을 잘 했다.
잘 포장해서 말한다면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야겠지. 주어진 곳에서 인정받기는 어렵지 않았는데, 뭔가가 주어져 있지 않으니 모든 것이 어려웠다. 이런 수동적인 인간 같으니라고. 어려서부터 목표라는 걸 딱히 세워본 적 없이 살아온 터라, 사회생활이라고 딱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동안은 흘러가는 대로 잘도 살았지. 고민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해 달려는 사람이 될 것인가. '오늘부터 시작' 해서 그게 될 일이었으면 진작 그랬겠지. 사람이 변하는 건,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30년 넘게 하나의 방식으로 살아왔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면, 그 방식도 아주 잘못된 건 아닐지 모른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언제나처럼 적응이다. 지금의 건너가는 시간에 적응하고,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이제 이력서를 써보자.
백수가 된 지 6개월이 되고 나서야 제대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하고 싶은 일은 있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는데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는 얘긴 어쩐지 남사스러워서 잘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차피 출발선, 써보자 싶었다. 이력서의 칸을 채우기 시작하자 드는 생각 '대체 뭐 하자는 인간이지' 맞다, 얼마 전에 읽은 책의 제목이 생각났다. 솔직하게 감정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범대 한문교육과를 나와 임용시험만 4번, 4년을 공부만 했지만, 단 한 번도 1차조차 합격해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내 탓인 줄 알았다. 서울에서 한문 교사를 한 명도 뽑지 않아 경기도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할 때도, 그냥 내가 열심히 하면 붙었을 텐데,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떨어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해인가 는 경기도에서도 사람을 뽑지 않아 인천에 가서 시험을 봤다. 그럼에도 내가 시험을 보는 해에 번번이 사람을 적게 뽑는 건 내가 운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인천에서도 한문 교사를 뽑지 않게 되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충청도에 가서 선생님을 할 수는 없어.'
고시생의 시간을 빠져나오기로 결정하니, 그다음은 자연스레 기간제와 강사의 시대가 열렸다.
친구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래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서울과 경기, 인천 교육청에 들어가 기간제와 시간 강사 자리를 검색했다. 몇 개의 이력서를 내고, 집 근처 학교에서 일주일에 8시간짜리 시간 강사 자리를 구했다. 일주일에 8시간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어마어마하다. 급여는 또 얼마나 짰을꼬. 이제 더 이상 고시생이 아니라는 것에, 선생님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는 것에 만족했다. 8시간짜리 시간강사 생활에 금세 적응을 했다. 학교에 가면, 나는 이제 선생님이니까. 한번 발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다음이 이어지긴 한다. 새 학기마다 쫄리는 마음이긴 했지만, 정말 단 한 군데서도 연락이 안 와서 가슴을 졸이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3월 전에는 이렇게 저렇게 일이 구해졌다.
4년 하고 6개월, 자연스럽게 선생님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4년을 공부하고, 4년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선생님이 되어 봤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결정은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한문 교과 교실 책상 위에서 <한문 선생 졸라 싫어>라는 낙서를 내 손으로 지우면서, <선생님은 왜 선생님이 되셨어요? 저 같으면 선생님 된 걸 후회할 것 같아요> 딴에는 아이들에게 휘둘리는 날 걱정한답시고, 그 반에서 가장 수업을 잘 듣던 여학생이 건넨 저런 말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제 그만해야겠다 생각했다. 영영 그만두겠어, 라거나 다른 해야 할 일을 결정했다거나 하는 비장한 마음이 아니었다.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정도의 마음이었다. 그즈음 집에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는 게 녹록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주 무력해졌다. 여름 방학 전, 다니고 있던 두 개의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 학교에서는 굳이 그만둔다는 강사를 아쉬워할 이유도 없었다. 강사를 지원하는 사범대생은 늘 넘치게 많았다. "시집이나 가고 그만두지, 그래도 학교에 있으면 선생이잖아." 맞은편 자리에 앉았던 동료 교사가 말했다. 그녀는 기간제 교사, 나는 시간 강사. 맞다, 학교 안에서 우리는 그냥 선생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