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했더랬다. 아침 7시 50분에 상영하는 조조 영화를 보겠노라고. 일어나면 가고 못 일어나면 할 수 없는 거지 정도의 얕은 결심이라 그런지, 당연히 못 일어났다. 침대도 너무 꿀맛이었고. 침대 탓.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안 하우스 침대는 꿀맛. 강릉 여행 코스로 '낮잠'을 추천합니다. 푹 자고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본 흐릿한 장면이 너무 예뻐서. 주섬주섬 안경을 찾아 쓰고, 또 주섬주섬 핸드폰을 찾아서 사진을 찍었다.
그냥. 아침 빛이 들어오는 창은 행복입니다. 강릉 여행하시는 분들 모안으로 오세요. 두 번 오세요. 또 오세요.
푹 자서 개운해진 기분으로 어제 받은 명함을 다시 한번 봤다. 강원도에 사무실 주소가 있는 명함에 내 이름을 새기다니. 내가 에디터라니. 재밌는 세상이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내 일상에 일어나는 게 즐겁다. 물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일 때만 그렇겠지만.
햇빛이 커튼을 통과하면서, 침대 위에 커튼의 무늬를 새기는 걸 구경했다. 이 순간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 사진만 봐도 알겠다. 이런 소소한 것들을 마음에 담으며 사는 매일매일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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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안 하우스의 아침 조식,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커피와 함께 엄청 맛나게 먹고 퇴실하기 위해 방을 정리했다.
안녕, 너무 짧았어. 강릉에서 딱 하루라니. 말도 안 돼. 엉엉엉.
벗어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던 침대야 안녕.
모안 하우스, 안녕 안녕 안녕. 뒤 배경 합성 아니랍니다. 저렇게 울창한 나무숲이라니.
짐 다 챙겨서 작별 인사하고 나온 것 같이 썼지만 효지 씨께 부탁해서 짐은 저녁에 찾아가기로 하고, 교회 가는 길.
혼자 여행 가면 찍는 거울 샷, 뒤로 교문이 보이네. 숙소는 포남초등학교 근처.
교회 가는 길에 초록이 우거진 구 모안 하우스를 지났다. 겨울에 왔을 땐, 대문 위가 휑했는데, 그새 저렇게 담쟁이가 자랐다. 아우 예뻐라.
예배를 드리고 뭘 할까 하다가 명주동으로 왔다. 어쩐지 인연이 안 닿아 아직까지 못 와봤던 동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길 건너에 저렇게 다정한 담벼락이 있었다.
뭔데 예뻐. 지방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지붕 색, 담 너머로 길쭉한 옥수수 머리도 보이고. 좋다 이런 풍경.
정말 좁은 골목 사잇길이 또 왜 이리 정취가 있는지 홀린 듯 들어가다가 맞은편에서 사람이 나와서 후다닥 뒤돌아 나왔다.
이런 것도 찍어놨네. 홍제로 20번 길, 이 골목 엄청 운치 있어요.
올려다 봐야 하는 높이에 저렇게 핑크 핑크한 사랑스런 꽃 나무. 놓치지 않겠다!
이 담벼락 겁나 특이하지 않음? 이런 모양 담벼락 처음 본 것 같다. 조르륵 화분도 귀엽고. 그냥 딱 봐도 '할머니 집' 같이 생겼다. 누가 사는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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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날을 이리 잘 잡았을꼬. 이 날 강릉은 바람이 꽤 불었다. 만약 오늘이 어제처럼 더웠다면 어딜 나갈 엄두조차 못 냈겠지만 오늘은 그야말로, 걸을 만했다. 럭키.
<MORE THAN MABEL> 2층에 있는 명주동 카페. 여길 찾아 명주동까지 왔다.
카페 입구의 풍경. 디테일이 살아있는 곳이군요.
카페의 화장실 앞 공간.
아몬드 라테를 시키고 앉았는데,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공간이 너무 예뻐서.
명주동을 걷다가, 모퉁이 작은 건물 2층으로 올라오면.
이런 공간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소듕한 공간들.
너무 환상적으로 예뻐.
에어컨 바람에 모빌이 팔랑팔랑 돌아간다. 창으로 난 풍경이 뭐 그리 엄청나게 절경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좋았을까?
창밖에 보이는 나무들이 은행 나무라는 걸 알고 나니 가을의 명주동이 너무 기대된다. 노란 단풍이 들 때도 여기 앉아서 밖을 내다볼 거다.
창밖으로 나즈막한 한옥 지붕이 보이고, 그 뒤로 초록 나무들이 풍성하다. 카페가 2층이니 또 이런 매력이 있고 좋으네.
특이했던 거울, 그리고 보라색 벽. 예뻐라.
카페의 한 쪽에는 가죽 공방이 있는데, 그래서 가죽 소품이 많고 판매도 하고, 또 가죽 가방도 진열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우드톤에 식물 인테리어, 그리고 조각조각 괴애앵장히 다양한 컬러가 구석구석에 예쁘게 박혀 있어서 구경할 맛이 난다. 예쁜 가방이 있어서 (살 건 아니지만 혹시나) 판매하는 건지 여쭤봤더니, 가방은 판매 안 하신단다. 테이블 위에 갑 티슈 커버도 가죽이다.
너무나 매력적인 보라색 벽에 알림판도 매력적. 자석 너무 예쁜데 어떡하지. 크으. 말린 유칼립투스.
구석,
구석구석을 눈에 새긴다. 사랑에 빠졌을 때의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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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앉았다가 빛이 너무 강해서 자리를 옮겼다.
젠틀해 보이는(?) 사장님께서 얼음물 한 잔을 더 가져다주셨다. 센스.
빛이 창에 있는 글자들을 바닥에 새기는 걸 구경했다. 햇빛이 직접 몸에 닿아 올 때는 뜨거워서 피했는데, 멀리서 보니 참 예쁘다.
가을에 꼭 다시 와야지. 안 봐도 뻔해. 엄청 예쁠 거다.
가져왔던 책을 좀 읽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빵과 장미》재밌다. 암만, 우리에겐 장미도 필요하지.
잘 쉬다 갑니다. 문이 이렇게 닫혀 있더라도 당황치 말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계단, 그레이 그린도 좋은데 거기에 난간의 검은색까지 포인트가 되니 컬러 조합이 꽤 사랑스럽다.
1층 우편함 사이에서 발견한 <모어 댄 마벨 >, 계단 몇 개만 올라가면 있어요.
가을 냄새나는 장면. 가을에 꼭 다시 올 거야.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까지 구석구석을 훑는다는 건 사랑에 빠진 게다.
MORE THAN MABEL
mon - fri 11:00 - 21:00, sat - sun 12:00 - 21:00 (tue off)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늘, 바깥을 걸을만한 날씨라는 게.
살만하니 이런 것도 눈에 들어오잖아. 명주동 참 신기한 동네다.
그냥, 골목을 걷는 것뿐인데 다정함이 느껴지는 건 뭐 때문일까.
명주동에 유명한 카페, 봉봉 방앗간.
커피를 한 잔 더 마실 수도 있었지만, 사진 찍는 사람들도 몇 명 있고 내부를 슬쩍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아서 지나쳐서 걷기로 했다.
칼국수 좋지, 주원 칼국수로 들어갔는데 문이 닫혀 있다. 간판은 예쁘네.
명주동 좋아, 골목에 있는 집집마다 다정한 초록색이 많다.
시나미 명주, '천천히'라는 의미의 강원도 사투리.
잘 지은 이름이다. 명주동을 걸으려거든 부디 천천히, 사랑스러움을 만끽하시길.
자주 생각한다. 아름다움에 대해, 또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대해.
사랑하는 능소화.
큰 길로 나오면, 꽤 큰 규모의 전통 한옥 건물이 보인다. 칠사당.
문이 닫혀 있길래, 고 사이로 안을 열심히 들여다봤다. 크. 누군가가 거닐고 있을 것 같은 마당.
그런데 있지, 문제는. 한 시간을 걸었는데 문을 연 식당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
번번이 이런 상황. 카페는 정말 많았는데, 밥을 먹을 곳은 마땅히 없었다. 오늘따라 그런 건지, 일요일은 원래 그런 건지, 내가 돌아다닌 시간이 애매했던 건지. 정확히 뭐가 문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거짓말처럼 식당들이 문이 닫혀 있었다. 대단한 맛 집을 찾은 것도 아니었는데. 결국 너무 배가 고프고 마음이 급해지고,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왔던 길을 걸어 버스를 타러 가려는 찰나. 어둑어둑한 실내에서 누군가 몸을 움직이고 있는 가게를 발견했다. 외관은 또 카페 같았지만, 밖에서 얼른 둘러보니 테이블 위에 젓가락 통이 있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빼꼼히 문을 열고 물었다. "혹시 여기 음식점인가요?"
무려 아직 간판을 달기도 전인, 가오픈 상태의 태국 음식점이었다. 밥을 먹을 수만 있어도 감사한데, 무려 태국 음식이라니. "메뉴는 팟타이랑 쌀구..ㄱ"까지 말씀하셨을 때, "팟타이요!" 말을 끊고 냅다 주문을 했다. 방금 전, 용기 내어 문을 열고 들어온 나 칭찬해. 팟타이라니. 꺄.
가오픈 상태라 아직 살풍경하다. 뭐가 딱히 없다.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 팟타이가 만들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땀을 식혔다.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사랑스러운 팟타이가 나왔다. 팟타이가 맛없을 수 있나요? 그럼에도 역시 맛있었다. 싹싹 다 긁어먹고 배를 통통 두들기며 나왔다. 분명 흥할 거임.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셔서 맛있다고 말했다. 제가 배가 많이 고팠어요. 평소에 팟타이를 드셔보셨냐고 물어보셔서 약간 당황했다. 팟타이는 꽤 유명한 음식 아닌가, 생각했다가. 태국 여행 가기 전엔, 먹어는 봤어도 딱히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름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허세 가득하게 태국에서도 몇 번 먹어봤다고 말해버렸다. 사장님 너무 친절하셨음. 나오기 전, 가게 이름이 뭔지 여쭤봤는데 '실롬'이라고 하셨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태국 도시 이름이라고. 처음 들어봤다, 헤헤. 유명한 동넨 가보다. 원래 물고기 카페가 있던 곳인데 아직 제대로 간판을 달지 않아서 물고기가 그대로 있었다. 그대로여도 멋진데 :)
나중에 효지 씨한테 말하니, 강릉에 태국 음식점이 많지 않다며 먹으러 가보고 싶다고. 추천, 팟타이 밖엔 못 먹어봤지만. 강릉서 아시아 음식이 땡기신다면. 명주동 실롬으로.
배가 부르니 또 세상이 아름답다. 바람도 살살 불겠다, 배도 부르겠다 행복하게 걷습니다.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서 버스를 타고 모안 하우스로 돌아왔다. 효디씨가 미숫가루를 타줘서 또 한잔 마시고, 암튼 주는 건 거절하는 법도 없고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다. 강릉 여행은 모안 하우스로 통한다.
오늘 새벽에 끊은 KTX를 타고, 무사히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또 한숨 자야지 생각했건만 내내 하늘이 너무 기가 막히게 예뻐서 뜬눈으로 지새웠다.
터널을 들어갔다 나오면 조금씩 조금씩 색이 변해 있는 하늘, 해가 질 시간에 기차를 타고 달리는 건 처음 해본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이렇게 예쁜 풍경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옆자리 외국인이 핸드폰만 봐서 속상할 지경, 지금 시계 쇼핑할 때야? 한국의 하늘이 이렇게 이쁘다규!
상봉역에 내렸는데 이런 배경이 깔려 있으니, 아파트 가득한 도시 풍경까지도 영화 속 장면처럼 숨 막히게 예뻤다.
하루 만에 돌아온 서울, 여전히 숨 막히는 더위였다. 상봉역을 빠져나오자마자 겁을 먹고 택시를 잡아탔다. 집까지 오는 길, 깜깜해지는 하늘을 계속 올려다봤다. 여름의 여행은 좀처럼 내키지 않는데 날씨가 도왔다. 슬슬 걷고 살살 다니며 움직임을 최소화하니 꽤 즐거운 여행이었다. 미리 겁먹지 말자. 아빠가 말한 대로, 어떤 멋진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시간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