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는 길이 맞아

by 노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다. “여보세요, OOO인데요. 이력서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내가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지원하지 않은 회사에서 내 이력서를 열람하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다소 낯선 회사 이름이라 그냥 되물었던 것뿐이었다. “아... 혹시 제가 지원한 회사인가요? 회사 이름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전화받는 상대의 말투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OO 일 2시 30분까지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대답을 하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잠깐만 13일? 수요일? 그날은 지방선거일 빨간 날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13일이요? 수요일 선거날이요?” 그래서 되물었던 것뿐이었다. 전혀 무례하거나 무시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럴 수 있을 리 없잖아, 나는 구직자인데.

내 질문이 끝나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하’ 하고 꽤 큰소리로 실소가 터트렸다. 그리고 굉장히 빈정대는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 수요일이요. 저희 그날 안 쉬거든요?”


회사에 사정에 따라 빨간 날 출근을 할 수도 있다. 나도 연차 없는 회사를 몇 년이나 불평 없이 다녔었다. 그 회사를 다닐 때는 물론 선거일에도 출근했었다. 빨간 날에 직원 모두가 쉬지만 내가 자처해서 출근을 한 적도 있다. 회사 형편이나 상황에 따라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그런 회사를 다니고 있을지언정 적어도, 새 직원 면접을 빨간 날에 잡는 짓은 하지 않았었다. 직원을 뽑는 게 많이 급한 건가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상대의 말투는 이미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 질문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


빨간 날 출근하는 회사인 것도 속상하지만, 그날에 굳이 면접을 잡는 회사인 것도 참 속상했다. 면접에 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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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갑자기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5분도 고민하지 않고 DM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뭘 굳이, 왜 굳이 아르바이트 면접까지.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간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그리 생각할 것만 같아서 주위 사람 누구에게도 면접 보러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체 남의 말, 남의 시선이 언제부터 내게 이렇게 중요했던 걸까. 타인의 시선에 꽤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삶 대부분이, 누구의 눈에도 별 거슬릴 것 없는 삶이었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나는 남의 시선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면접을 보기로 하고 면접 장소에 도착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막상 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지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이유가 뭐야.'로 시작된 생각이 갑자기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글을 정말 쓰고 싶다면 회사 다니면서는 못 쓰는 거였을까'?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순식간에 스치고 지났다. 그걸 왜 이 문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걸까. 이 고민은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넣기 전에 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지. 여기까지 와 놓고 이 앞에서 또 고민이라니. 나의 대책 없음에 한심해서 한숨이 나왔다. 머리가 정리되질 않았는데 자꾸 이력서를 찔러 넣고 있으니 안 해도 될 고민까지 하고 있다. 머리가 정리되지 않았는데 왜 자꾸 이력서를 넣는 건 불안해서 일게다. 뭐가 이렇게 불안한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 불안한가 보다. 내게 계속 아무것도 안 할까 봐, 계속 같은 상태를 유지하게 될까 봐 불안한가 보다.


게다가 면접 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도 있다. 시간이 남으니 문 앞에서 몇 분 동안이나 이런 고민에 잠길 수 있었다. 고민이 여기까지 오니,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던 상대의 말들이 사실은 내가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시간 있을 때 뭐라도 좀 해놓지. 너무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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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복잡한 머리 그대로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릴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별다를 것 없는 꽤 다정한 쪽의 면접이었지만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마도 복잡한 머리 덕분에 절로 뜨뜻미지근해진 마음 때문일 터. 면접을 마치고 나왔는데 집에 들어가기 싫은 기분이 들어 친구를 불러내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알바 면접 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20대 중반에 만나, 가장 찌질한 임용 수험생 시절에 알게 된 친구였다. 그 뒤로 우리 둘 다 나름대로 열심히, 재밌게, 잘 살았던 것 같은데 10년이나 지난 지금 와서 돌아보니 쌓인 게 없다며 웃픈 얼굴로 웃었다. 우린 왜 이렇게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냐고, 푸념 같은 말을 하면서도 같이 웃을 수 있는 친구라 다행이었다. '산 넘어 산'인 것만 같은 버거운 지금의 시간들을 나누고 웃고 떠들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겪지 않아도 좋을 일들을 이렇게 다 겪고 있느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다가, 그래도 나와 같은 시간을 겪는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금세 헤헤거리는 것이, 우리는 비슷하게 닮아 있었다. 꿈 얘기하기 좋아하는, 영 대책 없는 둘이서 마주 앉아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이야기를 해대며 수시로 웃었다. 불안에 취한 채로 그래도, '내가 더 힘들어' 불행 배틀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외롭지 않은 밤이라 감사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최근 내가 들었던 말 중에 제일 기뻤던 말을 카톡으로 보냈다. “친구야, 네가 가는 길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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