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함을 견디는 시간

by 노니

익숙한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나의 근황과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또 와락 울어버렸다. 그럼 곁에 있던 이들은 생각할 것이다. '은정이가 지금 많이 힘들구나' 그럼 뭐라도 해결책을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도 안다 그 마음. 경험도 있고, 눈에 잘 보이는 길도 있으니 빙 둘러 돌아가고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바르다고, 빠르다고 생각하는 길을 알려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다.


문제는 나지. 아무 얘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뿐이면 괜찮게, 아무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온몸으로 상대들의 이야기를 밀어내고 있는 나를 느꼈던 걸까. 나보다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먼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이의 시간을 보냈던 오드리가 울음을 터트렸다. 나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공감하며 평소보다 조금 더 격앙된 목소리로 이런저런 말을 거들다가 그만 울컥했나 보다. 울고 있는 옆에서 함께 울었다. 내 감정도 너무 격해져 있어서 상대의 감정이 잘 전달되어 오지 않았지만 속으로 많이 놀랐다. 아마도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좀 전에 나눴던 이야기들을 복기하며 또 보글보글 마음을 끓였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에 다시 눈물이 나왔다.


마음을 받자. 내가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귀한 마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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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힘들어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럼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 아니면 이 불확실함을 나열하지 않고, 나의 불안을 고백하지 않으면 된다. 명확하지 않아 확신이 없고, 내 방식대로 지지부진 머뭇대고 있는 이 모습을 이해받으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된다. 이해받는다니...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 좀처럼 희망을 버리지 못하다니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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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있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아프게 고백해보자면, 나는 언제고 멈춰 있지 않았다. 마음이 움직이든 몸이 움직이든, 어느 쪽으로든 늘 움직이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보암직한 무언가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지난 모임에서 나는 나를 감싸 안아 주지 못했지만 다시 내가 나를 안아주려 한다. 나는 나를 아니까,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은 아니까.

아픔을 전시하고 싶은 걸까. 왜 공개적인 곳에 자꾸 기록하는 걸까.
이 시간들의 기록이야말로, 이 시간들의 눈물이야말로 어쩌면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 그러는가 보다. 자주 울고, 자주 기록한다. 자꾸 안에 있는 걸 내보낸다. 나 그렇게 괴롭지는 않다, 그럴 이유도 없고.


요조는 그랬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고군분투와 삽질에 대해 최대한 적극적으로 말하는 편인데, 이것이 타인에게 적잖은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난사람이다. 나는 이걸 몰랐다. 나의 고군분투와 삽질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런데 블로그에 사사로운 고백들을 시작하며 알게 되었다. 나 혼자 괴롭지 않다는 것. 나만 겪어본 혼란스러움이 아니라는 것. 어찌 보면 결국 우리는 비슷비슷한 삶을, 다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남의 어려움에 ‘누구나 다 그래, 다 똑같이 힘들지’하고 눙쳐 버리는 거나, 내 어려움에 ‘나만 힘들어,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네’ 하고 날 새우는 일이나 무심하기는 매한가지다. 남에게는 ‘너 힘들어서 어떡해, 왜 너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 공감해주고, 나 자신에게는 ‘어쩌면 모두 다 이런 건지 몰라, 누구나 다 쉽지 않을 거야’ 하고 조금만 더 가볍게 대하면 좋으련만.


어렵다. 쉽지가 않다.


당장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는 알 수 없으나 또 해야 할 것들을 나열해본다. 그럼 오늘도 또 살 수 있다. 옳은지 그른지는 따지지 말아 보자. 견딜 수 있을 때까지는 조금 더 그렇게 해보고 싶다.

나조차 정의 내리지 못하는 지금의 시간에 대해, 이 사이의 시간을 지나온 친구가 말한다.

'애써서 움직이고 있으면서, 혹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 막막함을 견디는 것 밖에 안된다 싶은 시간'

그녀의 시간이 지금 내 시간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런 것 같다.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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