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멈출 수 없다

by 노니

타의에 의해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는 4일, 정확히는 72시간을 보냈다. 물론 노트북도 사용할 수 없었다. 내가 속한 세상과 완벽히 분리된 72시간이 지나고 다시 내 손에 휴대폰이 쥐어졌을 때 전원 버튼을 누르고 싶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은 곧, 현실로의 복귀를 의미하고, 내가 복귀해야 할 현실은 그다지 잘 정돈되어 있지 않기 때문.

72시간 동안 가끔, 막연히 내가 놓쳐서는 안 되는 무슨 일이 벌어져 있지는 않을까 상상했다. 예를 들면 면접 합격 소식이라거나, 아니면 면접에서 합격했고 다음 면접을 준비해 달라는 소식, 혹은 면접에 합격했으니 출근하라는 소식 같은 것들. 합격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 딱히 없는데도 괜히 그랬다.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켰으나 내 세계 안에는 어떤 일도 벌어져 있지 않았다. 실망할 것도 안도할 것도 없이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했다.

연락이 없으면 불합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조금 고민하다가 마지막으로 면접 본 회사에 문자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지난주 면접 본 박은정이라고 합니다 혹시 채용은 마감된 건가요?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건지, 미채용 된 건지 궁금해서 문자 드립니다.

바로 답장이 왔다.

네 채용 완료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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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고 있다, 나의 시간이. 결론만 놓고 보자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내 안에서는 무지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지고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시간을 누군가에게 꺼내 설명해야 할 때가 되면 바로 막히고 만다. 설명이 좀 어렵다. 다만 설명하기 어려울 뿐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는 타입이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순간이 될 때마다 번번이 스스로를 흔들어 버리고 마는 타입이다. 계속해서 채근하듯 물어댄다. '지금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내가 말하는 것만 듣고 있다면, '얼른 취업을 하고 싶어서 애를 쓰고 있구나' 싶은가 보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드는가 보다. '정말 취업을 하고 싶다면 왜 관련 있는 업무를 익히거나, 교육을 받거나, 더 나은 환경을 위해 해야 할 것을 알아보거나 하지 않고 저러고 있는 거지. 왜 더 적극적이지 않을까. 왜 움직이지 않을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왜냐면 지금의 내가 괜찮아 보이지 않으니까. 분명히 괴로워하고 있으니까. 면접에 가서 기분 좋지 않은 일을 당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자괴감에 빠지거나 흔들리고 울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런 괴로움을 겪지 않고 정말 제대로 일이 하고 싶다면 움직여야지. 그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지.',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왜 그렇게 움직여지지 않는가도 생각해봐야지.' 이렇게 반응하는 게 자연스럽다. 맞다. 내가 힘들어하니까.

그럼 나 자신에게 묻는다. '얼른 취업을 하고 싶은가'

아주 솔직히는 잘 모르겠다. 내게 직면한 내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대면 대면하게 굴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심지어 서글픈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 그렇다 해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있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마음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 조급해하질 말던가. 생각이 좀 더 구체화될 수 있도록 좀 더 편안히 있어보던가.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자주 막막하고 먹먹하다. 움직이고 싶은데 자꾸 발이 멈추고, 멈추고 싶은데 자꾸 몸이 움직인다. 하고 있는 거라고는 매일 구직 사이트에 접속해서 여기저기 왕창 이력서를 넣는 것으로 '취준'이라는 도리는 다하고 있다는 자위. 막막하고 먹먹한 것이 어떤 것인지 두 눈을 감은 채 아주 무딘 손끝으로 오돌토돌한 돌기들을 더듬어 가고 있는 것 밖에 없다. 점자를 거의 모르는 맹인이 점자를 읽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조금도 알지 못하는 기분이지만...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바로 다음 줄의 내용도 전혀 알지 못하겠다.

그런데도 그걸 멈출 수 없다. 아마도 불안함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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