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바로 또 면접이 잡혔다. 그래도 몇 번의 면접을 봤다고 이제 떨리지는 않았다. 일반 회사의 마케팅 관련 직무 면접이었다.
- 성실하며, 긍정적인 마인드 보유자
- 기본적인 소양과 양심을 갖춘 자
- 약속 시간에 철저하며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는 자
- 따뜻한 마음을 가지며, 대인 관계 원만한 자
- 당사의 경영철학을 잘 이해하고, 기여할 수 있는 자
- 오랫동안 근무 가능한 자
- 해외 출장 결격 사유가 없는 자
자격 요건을 하나하나 읽으면 읽을수록 어쩜 나다 싶었는데, 면접을 보게 되었다. 다시 한번 사이트에 들어가서 경영철학을 열심히 읽었다.
따뜻한 기업과 사회에 베풀 줄 아는 기업을 표방하고 있는 회사였다. 현재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한다고 했다. 마침 북한 아이들을 돕는 기관에서 잠깐 활동도 했었고, 뭔가 느낌이 좋았다.
면접 일자가 잡히고 지원한 회사까지 어떻게 가는지 검색을 해보니, 오- 집 앞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시간을 가늠해서 나갔는데 생각보다도 훨씬 더 일찍 도착해버렸다. 집 앞에서 탄 버스가 바로 회사 길 건너편에다가 나를 내려줬다. 아 버스 한 번에 회사 바로 앞까지라니 너무 좋았다. 주위에 어디 들어가 있을 곳이 딱히 안 보이길래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벌컥 벌컥 마셨다. 30분쯤 앉아 있다가 일어났는데도 너무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직원 한 명이 나와 탕비실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면접 시간이 가까워지니 나 말고 다른 지원자분들이 한 명 두 명, 대기실로 더 들어왔다. 어려 보이는 얼굴들, 마지막으로 가장 앳된 포동포동한 얼굴의 지원자가 들어오며 혼잣말을 한다. "아, 떨려."
나를 포함, 비슷한 촌스러운 느낌의 블랙 앤 화이트 약식 정장을 입은 네 명의 지원자가 대기실 안, 작은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서로 바로 곁에 있지만 딱히 눈 마주칠 일도 말을 걸 일도 없이 각자 자기의 손끝이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10여 분쯤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예정된 면접 시간을 조금 넘기고 직원 한 명이 면접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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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팀 지원하신 분." 나를 제외한 나머지 지원자들이 모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다. 이름을 불러 한 명 한 명 대조한 뒤 직원은 앞장서 나가며 말했다. "5층으로 올라가시겠습니다." 아, 오늘 재경팀 면접도 있었구나. 나는 다른 팀에 지원했으니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뿐인데 이름을 불린 세 명의, 당황한 여섯 개의 눈동자가 순간 나에게 와서 닿는다. '어, 언니는 뭐예요?' 하는 눈빛. 처음으로 서로의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세 명을 향해 씨익- 크게 웃어버렸다.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공간에 앉아 있던, 그 짧은 시간에 생긴 연대감이 만들어 낸 파이팅이었다.
곧 단독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관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마르고 건조한 타입이었다. 마케팅 업무라고는 하지만 일반 사무 업무가 더 많을 거라고 했다. 아... 일반 사무 업무. 마케팅이라고 뭐 깊은 뜻을 가지고 지원했던 건 아니지만 일반 사무도 참 뜬금없다 싶었다. 그러나 면접을 보면 볼수록 점점 그냥 뭐가 되었건 마음껏,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그런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건 마치 유니콘같이, 현실 세계에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청 막연하고 막막한 말이지만 좋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면접을 봤다.
처음으로 다니기 싫은 회사가 아닌, 다니고 싶은 회사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면접이었다. 문제는 건조한 면접관이 나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는 거지만. 다른 어떤 곳보다도 짧게 면접이 끝나버렸다. 거의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걸까. 열심히 추측해보지만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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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게 회사 옆 골목에 들어가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식빵을 파는 가게가 있길래 빵을 사보았다. 회사 근처에 맛있는 커피집, 맛있는 빵집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얼른 집에 가서 빵과 함께 커피가 마시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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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뒤, 면접 본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가 떠서 받았는데 앞 전에 면접 본 그 회사의 이름을 댄다. 반가운 마음에 "네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는데 대뜸 면접을 보실 수 있느냐고 묻는다. 혹 2차 면접인가 싶어 확인하자, 상대가 당황한다. "저... 어제 면접을 보고 왔는데요" 대답하니, "아... 알겠습니다"하고 전화가 끊겼다. 이 상황 뭐지. 나에게 합격 연락이 온 것도 아닌데 다시 나에게 면접 볼 수 있는지 연락이 왔다. 회사의 속 사정이야 다 알 수 없지만 그리 긍정적 이어 보이진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