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치 경험과 후회

by 노니


8월 6일 화요일


지역에 살게 된 지 이틀째.



아침이 좋아라. 하늘은 맨날 예뻐. 키가 이렇게 큰 나무를 매일 본다.


오늘의 첫 일정은 인터뷰. 내가 일하게 된 곳은 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고, 소속된 직원들 또한 두세 가지 직책을 겸하여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속한 공동체에서 발행하는 매거진에 실릴 인터뷰를, 우리 회사 직원 몇몇이 맡아서 진행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인터뷰 참관 가능. 신난다. 신난다.


_


프로젝트 진행 전 사전 교육 중 인터뷰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그 시간이 너무 신이 나서 인터뷰이에게 어찌나 몰입했던지 맞은편에 앉았던 팀원이 인터뷰를 끊고, 좀 떨어져 앉으라고 했더랬다. 그러고 나서 보니 내가 거의 팔짱을 낄 기세로 바짝 다가가 앉아 있었던 바람에 민망해서 혼났던 기억. 여튼 그마만큼 인터뷰를 사랑한다. 읽는 것도 좋고, 하는 것도 좋고, 당하는 것도 좋...겠지?


_


오늘의 인터뷰이는 시내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귀촌 청년 사장님들. 지역에 내려가기 전 인스타에서 지역 카페를 검색해봤을 때 제일 눈에 띄던 곳이었다. 인테리어가 예쁜 것도 그렇지만 원 데이 클래스나 전시 같은 것들도 같이 진행하고 있었고, 뭔가 조금 특별한 공간같이 느껴졌었다. 마침 지켜봤던 카페의 사장님들을 인터뷰한다니, 내가 신나 안 신나. 약속 시간이 되고, 앳된 얼굴의 사장님들이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비타 오백을 내민다. 인터뷰하는 우리가 내미는 것도 아니고 인터뷰이가 음료수를 내민다. 재밌다. 뭔가 이런 지점에서 '여기가 지역이구나'가 느껴진다.

차분하게 인터뷰가 이어졌다. 더 많은 이야기가 듣고 싶었지만, 내가 인터뷰어가 아니니 듣고만 있었다. 아 매력적이야. 몇 번이나 인터뷰이에게 뿅, 하고 반하는 지점이 생긴다. 인터뷰를 직접 해본 적은 거의 없지만 생각해보면 번번이 그랬던 것 같다. 매력에 퐁당. 내가 지역에 내려오게 된 쓸모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한 이들이었다. 도시에서는 '내가 필요한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나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있었고, 그런 고민들을 안고 지역에 내려왔을 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고개를 연신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에게도 지역으로 내려오라 권하고 싶다는 두 사장님의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간단히 옮겨보자면. "기회는 농촌에 있으니 도시에서 아등바등하지 말아라. 여기서는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각보다 지원을 많이 받고, 관심도 많이 받는다. 내가 도시에 있었다면 이런 인터뷰를 어떻게 했겠는가",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농촌에 온다면, 막상 와보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주옥같은 말들이었다. 흣.


인터뷰를 시작하며 녹음 버튼을 켰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들어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인터뷰 내내 매미가 징글 징글맞게 울어대고 있었다. 사람 소리, 새소리, 매미 소리가 뒤엉킨 녹음 파일을 음악처럼 들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누군가가 사무실에 들고날 때마다 인터뷰에 참견하며 말을 거드는 통에 정말이지 듣기 정겨운 인터뷰가 완성되었다.


누군가가 던진 말이 너무 가슴에 남아 이것도 적어본다.

"도전 안 하면 후회가 남는데, 도전하면 경험과 후회가 남는다. 그러니 도전해라." 크. 명언 아닌가.



오전 인터뷰 업무를 마치고 코다리 비빔냉면을 먹으러 왔다.



그리고 오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택배 기사님이었다. 이 지역 택배기사님과의 첫 통화. 두근두근(?), 이벤트 당첨으로 책 선물을 받았다. 꺅 예스24 사랑해요. 지역에서 받는 첫 택배였다. 기분 좋아라아아아. <월간 채널 예스>까지와서 너무 행복했다.



학교에는 고양이가 많은데 내가 나타나면 사방으로 숨어 버려서 늘 이렇게 아깽이들의 흔적만 본다. 여기에는 다리가 불편한 은총이(강아지)와 엄마 고양이, 아기 고양이들이 산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림없는 소리라는 걸 느끼고 있다. 아직 스스로도 돌보기 어려운 나에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은총이랑 아기 고양이들은 참 예쁘다.



오후엔 자료들을 읽고 검토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칼 퇴근. 매일 들고나면서 보는 풍경인데도 매번 찍게 된다. 그만큼 좋은 풍경.



사실 학교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여기다. 수돗가. 아침에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 나와 이 사이로 바깥의 푸르름을 볼 때 약간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곤 한다. 오늘도 좋은 하루구나,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같은 기분 말이다.



퇴근 후 시내의 이마트로 필요한 것들을 사러 갔다. 시내에 있는 프로젝트 동기들이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급만남. 며칠 만에 본 동기들이 반가워서 자꾸 마음이 들썩거렸다. 내가 정신없는 것만큼 그들도 새 직장에, 새 지역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만나자마자 와다다다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 사이 불편한 마음이 생겼던 동기가 헤어지기 직전 들릴 듯 말 듯 말을 건넨다. "얘기하고 나니까 좀 풀리네요"


동기잖아요. 동기 좋다는 게 뭡니까. 룸메와도 일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아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여기서는 많이 늦은 시간이 아니라도 사방이 워낙 깜깜하니 어둠에 압도되고 만다. 별 건 아니고, 그만 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자꾸 든다는 얘기다. 어둡고 적막한 밤에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이틀 치의 경험과 후회가 쌓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아직은 서른 여섯의 봄, 치앙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