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월요일
아주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겨 나왔다. 출발 전, 아빠가 기도를 했다. 열심히 사는 우리 가족, 늘 지켜주세요. 함께 기도를 하고 우리 셋은 각자의 일터로 갔다. 정말이다,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가족 늘 지켜주세요 언제나처럼. 건대입구역에서 엄마랑 헤어지며 손을 꽉 잡았다. 엄마 아빠 보고 싶을 거예요.
7시 50분 표를 예매했는데 40분쯤, 시간이 남아서 스타벅스에 왔다. 그러고 보니 당분간 스타벅스가 없는 곳에 가게 되었다. 물론 2주에 한 번씩 서울에 올테지만.
2시간 30분을 쌩쌩 달려 터미널에 도착했다. 길고 긴 출근 길이고나.
터미널에서 또 지역 안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시간이 너무 뜨면 택시를 탈 참이었는데, 20분만 기다리면 버스가 오길래 할머니들과 함께 버스를 기다렸다. 이 곳, 터미널에서는 하루에 10번 정도 숙소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는 듯하다.
세상에. 올라탄 버스 안, 사방에서 들려오는 사투리가 즐겁고나. 귀를 활짝 열어 버스 방송을 듣고, 제대로 잘 내렸다.
숙소와 일터가 폐교를 개조한 곳이라 운동장이 앞마당이 되었다. 축구를 해도 되는 앞마당을 갖게 되었다. 음하하.
어제 먼저 내려온 룸메와 인사를 하고, 내 짐을 간단히 풀었다. 12시가 넘어 빼꼼 회사에 출근을 했다. 감사히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첫 업무는 점심식사. 오예.
꼬소한 콩국수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첫 주간 회의에 참여했다. 2시간 반. 어디나 회의는 길구나. 그러고 나서 곧 있을 캠프 프로그램 장소 답사를 다녀왔다. 놀러 다녀온 거 아니고 답사.
6개월간 일하게 될 동료들의 뒷모습.
주민들을 통해 지역 자원을 찾는 과정을 거쳐 발견한, 보물 같은 계곡이란다.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좁은 시골 도로 한 쪽에 샛길을 따라, 한 15분쯤 정리 안된 길을 걸어 들어가니 갑자기 이런 계곡이 나왔다. 여길 누가 알아, 진짜 동네 주민 밖에 모르지. 약간 신비로운 느낌까지 드는 고요한 곳이었다.
풍경이 좋아서 사진 찍고 까불다가 이끼를 밟아서 물에 빠졌다. 너무 창피했다. 첫날부터 물에 빠져서 엉덩방아 찧은 모습을 보여드렸네. 핸드폰이 계곡물을 따라 졸졸 흘러가는 걸 건져냈다. 엉덩이가 아프고 놀라서 멍청해졌는데 룸메가 얼른 핸드폰을 꺼줬다. 핸드폰이 물에 빠지면 꺼둬야 한다고.
답사 후 저녁은, 폐교 안에 있는 근사한 공간에서 수제 피자와 샐러드를 먹었다. 유기농 재료를 듬뿍 넣은 우리 밀 발효 피자와 샐러드.정말 맛있었다. 정말 정말. 사실 모임의 타이틀은 매거진 편집 회의였는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 그저 열심히 먹었다.
수제 맥주도 끝내주고. 공간의 분위기도 좋고. 너무 근사한 저녁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우리를, 모두 편안히 맞아주셨다. 그러게 편안하지 않을게 뭐야. 나도 릴랙스하고 분위기를 즐겼다. 맞아,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즐거운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때때로 긴장했다. 아효, 얼마나 피곤할꼬. 근데 이게 내 성격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 속의 까칠이가 자꾸 등장해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믿을 만한 곳인가. 내가 편안해져도 괜찮은 곳일까. 생각보다 빠르게 경계가 풀렸다. 사람들은 즐거웠고, 대화는 재밌었고, 긴장해야 할 이유는 낯설다는 것 외에는 없어 보였다.
이야기도 길어지고 음식도 계속 나오는 바람에 퇴근이 늦어졌다. 애초에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하셨는데 그게 못내 신경이 쓰였다. 사실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뭔가 긴장한 마음의 끝에는 '나 호구되고 싶지 않아!' 하는 애처로운 마음이 있다. 토닥토닥. 내 마음을 다독여줘야지. 나는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바보니까. 잘 할꺼야 여기서도.
퇴근하고 집까지 20초. 열 걸음이면 도착한다.
첫 날 밤은 짐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씻고 바로 잠들었다. 꿀잠.
아침 여섯시쯤 부시시 일어났다. 아-
이곳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이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아침엔 산책을 하자고 생각했다. 아직은 더워서, 벌레가 많아서 자주 긴 시간은 무리지만.
수돗가 근처 누군가 베어다 놓은 밀. (밀 맞나요)
해가 떠오르는 아침, 운동장 만큼 넓은(?) 우리 집 앞마당.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다요. 근사하다.
운동장을 몇 바퀴 돌다가 도로로 나와봤다.
아무 방향으로나 막 걸었다. 아아아아아- 아침의 아름다움. 굿모닝이라는 인사가 저절로 나오는 풍경이었다.
룸메이트가 교육 시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평생 있을 사람처럼 굴지도, 떠날 사람처럼 굴지도 않고 싶다고.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지나치게 계산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적당히 포기하고 잘하려고 힘내지 않고 싶다. 늘 실패하는 지점이라 또 다짐하게 된다. 정말 그러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판단은 나중에>
서둘지 말자요, 판단은 나중에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