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이에요?"
서울에서 내려온 캠프 참가자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서울에서 내려와 일하기 시작한 지 이제 3개월 됐다고 자기소개를 하니 대번에 이것을 물어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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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울에 터를 잡고 있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었다. (이렇게 한 마디로 정리를 해버리고 나니 두 사람이 너무 납작해져 버렸지만.) 둘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지역 캠프에 참여했다. 귀농 귀촌을 꿈꾸는 분들인지, 그냥 잠깐의 힐링이나 주말의 이벤트가 필요했는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두 가지 이유 모두 인지, 그분들의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저녁 뒤풀이 시간에 마지막까지 남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셨다. 한참이나, 늦은 시간까지 귀농한 지역 주민의 파란만장한 적응기를 듣고 나서는 정작 본인이 귀농할 수 없는 이유를 하나씩 들기 시작했다.
한 분은 벌레를 너무 싫어해서.
꼭 흙집에 살지 않아도 되고, 시내나 아파트에 살아도 된다고 말하니 심지어는 개미도 싫다고 하신다.
또 다른 분은 수박 하나도 못 들 정도로 팔 힘이 없어서.
그럼 뭐, 복숭아 농사를 지어도 되지 않냐고 말하니 복숭아는 벌레가 너무 많이 생겨서 농사짓기 정말 어려운 작물이라고 하신다.
맞다. 벌레를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 굳이 벌레 많은 시골에 와야 할 이유도 없고, 수박 하나도 못 들 만큼 팔 힘이 없는 사람이 귀농을 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지역의 여유 있어 보이는 삶과 자유롭게 자라는 듯한 아이들은 너무너무 부러워하신다. 그러다 보니 결국 대화는 같은 이야기를 빙빙 돌 수밖에 없었다.
"여기 너무 좋네요. 이렇게 살고 애들 키우고 싶어요."
"내려오시면 이렇게 하실 수 있어요."
"아우 그런데 저는 벌레를 너무 싫어해서."
"벌레 싫어하면 시내에 살면 되죠."
"그럼 또 이렇게 자연에서 사는 게 아니잖아요."
"..."
"여기 너무 좋네요. 식재료들도 너무 좋고, 애들도 참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어떻게 저렇게 키우셨어요."
"여기 좋은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내려오시면 생각하시는 것보다 교육의 기회도 많아요."
"아우 그런데 저는 수박 하나도 못 들 만큼 팔 힘이 없어요."
"그럼 뭐 농사 안 지어도 되고, 복숭아나 다른 작물 농사지으면 되죠."
"복숭아는 벌레가 너무 많이 생겨서 키우기 정말 힘들잖아요."
"... 맞아요."
마주 앉아 몇 시간이나 대화를 했던 지역 주민이 허허 웃으며 뼈 있는 말을 내뱉었다.
"아는 게 너무 많으면 더 못 내려오죠."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어서 내가 괜히 한 마디를 거들었다.
"저도 서울에서 여기 내려온 지 3개월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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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왜 내려오셨어요?"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 찰나에 지금까지의 내 상황과 사정을 모두 말할 수는 없어서 웃으며 대꾸했다.
"서울에서 사시면서 고민 없으세요? 저도 그런 고민들 때문에 왔어요."
곧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싱글이세요?"
고개를 끄덕이자, 둘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내려왔지."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혼자 내려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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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뭔지 모르지만, 그 순간 내 안에서 복잡하게 꼬였던 생각들이 살짝 풀리는 느낌이 들어 웃음이 났다.
사실은 벌레를 싫어해서 지역에 내려오기 어려운 것도, 농사짓기에는 힘이 약해서 지역에 내려오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은 내려올 수 없는 상황인 거고, 그들이라서 내려오지 않는 편을 선택한 거다.
사실은 싱글이라서 지역에 쉽게 내려올 수 있는 것도, 싱글이라서 지역에 내려오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나라서 내려온 거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과 사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서 내려온 거다. 그런 내가 싱글인 거고.
어떤 이유가 어떤 행동의 결정적인 인과관계에 영향을 준다고, 나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믿고 살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면 그게 나에게도 적용될 거라고, 사실은 그렇게 믿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지역에 내려와 살기를 꽤 오랜 시간 꿈꿨으면서도 쉽게 시도하지 못했다.
'나는 싱글이라서 지역에 내려오는 게 어렵지. 여자 혼자 어떻게... 나도 파트너가 있었더라면 훨씬 더 용기 내기 쉬웠을 텐데.'
지지부진, 맨날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스스로를 납득하기 위해 자주 했던 생각이다.
이 생각은 사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군가는 크게 공감하기 어려운 말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일 테지만, 꼭 나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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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은 할 줄 알아요?"
생각에 잠긴 사이 세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나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했던 문제라서 머쓱하니 웃으며 못한다고 하니 금방 또 몇 마디가 따라붙는다.
"시골 살면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운전이에요."
"이런데 살면서 어떻게 운전을 못해."
"아니 운전면허부터 따야겠네."
그러게 말이야, 겁도 없이 운전도 못 하면서 여길 내려왔네.
늘, 자주 듣던 말이라 금방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버렸다.
그런데 잠깐,
나는 시골에 살면서 운전을 못하는 사람을 몇 알고 있다. 알게 되었다.
어렵고 불편하고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지만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시골에 살 수도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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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문제라는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니다.
참 쉽게 상대의 말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 참 쉽게 상대의 말에 공감을 해버리는 사람이라...
나는 한 번씩 더 자주 멈춰서 생각해야 한다.
저 말이 나에게도 맞는 말이야? 저 말을 기준으로 나를 판단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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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싱글이다. 나는 운전을 못한다, 심지어 면허도 없다. 그리고 나는 삼 개월째 무사히 지역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