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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May 13. 2023

주말에도 일하는 사람에겐 월요병이 없다

매일 기록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잠을 설쳤다. 머리만 대면 잠들고 아침이면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이 내 체력의 비결이었는데 한 열흘, 늦게 자고 찌뿌둥하게 일어났다. 어제도 그랬다. 일찌감치 밤이 되기 전 잠이 들었던 바람에 이른 새벽에 깨버렸다. 더 자야할 시간이라 그냥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차라리 일어나서 책이라도 읽을 걸, 요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다는 걸 의식해서 그냥 계속 어설프게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7시가 조금 안 된 시간, 잠이 완전히 깨버려서 일어났다.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씻고 옷을 챙겨 입고 그냥 바로 출근을 했다.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언제나 할 일은 있으니까. 


오늘 잊지 말고 꼭 해야할 일은 학교 책 배송과 서점 오픈 뿐. 9시에 맞춰 학교에 갔다. 교무실 문을 노크하고 문을 열면서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듣는 사람이 있든 없든 큰 소리로. 책상 위에 책을 올려두고 다시 인사를 한다. “안녕히계세요.” 역시 듣는 사람이 있든 없든. 학교랑 가까운 우체국에 들러 택배를 보내고. 다시 서점으로 들어가기 전, 문구점에 들러야 하는 게 생각났다. 펜을 사야 했다. 최애 펜을 다썼다. 리필심을 넉넉히 샀다. 새 펜을 사고 났더니 뭔가 적고 싶었다. 오랜만에 수첩을 열어 투두리스트를 적었다. 투두리스트 만드는 건 좋아하지만 그걸 지우는 거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 왜 만드냐고...) 그냥 주도면밀한 '계획형'으로 행동하는 그 순간이 즐거운거다. 꼭 해야 하는 일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나머지는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타입. 오늘 못한 걸 내일로 넘기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타입. 그러니 늘 리스트엔 지우지 못한 할 일들이 그득하다. 


날짜를 적느라 달력을 봤는데, 월요일이었다. '어머 월요일이라니' 주말에도 일하는 사람에겐 월요병이 없다.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 없이,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새벽부터 나와 책상에 앉았으니,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해야 할 일이 자잘하게 많은 날이었지만 새 펜 덕분에 하나씩 지워나갈 수 있었다. 

지금보다도 더 덜렁대고 실수가 잦았던 사회 초년생 때, 회사에서 동료가 해줬던 시간 관리 팁은 10년째 잊지 않고 지키고 있다. 해야 할 일들 중에 5분이 채 안 걸리는 일들은 투두리스트에 따로 적지 말고 그냥 바로 하라는 조언. 그건 왜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을까. 답장을 보내야 하는 메일들과 입금, 책 결제 같은 일들부터 해치우고 서점을 청소했다. 1시, 늦지 않게 서점을 잘 열었으니 꼭 해야 할 일들은 다 한 셈이다. 카운터에 앉아 하루 종일 느슨하게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들의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갔다. 기록하기 전에도 매일매일 성실히 해낸 것들이 많았을텐데 내가 들여다 봐주지 않고 적으려 하지도 않았을 뿐이라는 걸 이젠 안다. ‘일기록’이라고 이름 붙인 뒤 내가 하고 있는 사소한 일들이 모두 내게 성취감을 준다. 이름을 붙인다는 게, 기록을 한다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기록하면서 기록을 예찬하는 일은, 참 수년째 질리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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