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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니 Oct 03. 2024

나는 종종 내 서점이 부끄러웠다

출근해서 오픈 준비를 해놓고 서점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1층 편의점에 쓰레기봉투를 사러 다녀왔는데 그 사이 손님이 와계셨다. "아,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당황해서 이미 서점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 어서오시라고 인사해버렸다. 쾌활하게 인사를 받아 준 손님과 몇 마디를 이야기 나누다가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아, 저 또치 친구예요. 상주 간다고 하니까 또치가 좋아하는서점 한 번 들러보라고 말해줘서 왔어요.",

"오오오, 안녕하세요!"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또치가 추천해서 좋아하는서점을 알게 되었다는 N번째 인물을 만나는 것이. 그 상황을 만나면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또치는 왜.'     


상주에 귀촌한 지 5년, 서점을 오픈한지 4년이 되어간다. 귀촌해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나라도 이 두 줄의 자기 소개를 들으면 ‘저 영혼 뭔가 여유가 느껴진다’ 생각했을거 같다. 자유로움이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또 묻는다. 자유로운가? 여유로운가? 끙.      


얼마 전 상주 도서관에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님이 다녀가셨다. 북토크를 듣다가 혼자 끄적여 놓은 말이 있다. [ 여 왔으면 여 온 사람 답게 좀 ] 작가님이 하도 사투리 묘사를 구수하게 하셔서 나도 모르게 저렇게 출처 모를 사투리로 적어뒀더라. 여기까지 왔으면 여기에 있는 사람 답게 살자는 말이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나만 알 듯하다. 상주에 올 때, 솔직히 뭐 그리 대단한 포부는 없었지만 지향하는 바는 좀 있었다. 구체적으로 살고 싶었다. 붕 떠 있는 것 같은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싶었다. 여기 온 초기에 자주 했던 표현도 '좀 살아보고 싶다' 같은 거. 이 표현조차도 무지 관념적이지만. 농촌은 서울에 비해 자기 몸으로 자기 삶을 꾸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귀촌 초기, 귀촌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몇 번 저 대답을 하다가 너무 멋부린 표현 같아 어느 순간부터 떠올리지 않고 살았는데, 아주 오랜만에 작가님의 말을 듣다 떠오른 것이다. 용기 낸 첫마음 잊지 말고, 그때의 지향하는 바로 계속 살아보자고, 5년 만에 다시금 다짐했다.     


작가님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기보단, 구례에서 살게 된 이야기와 그로 인해 생긴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다. 구례에 왔기 때문에 초대박 히트작 (작가님의 표현은 아니고 내 표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쓸 수 있었다고 운을 떼니 귀촌인의 마음이 오랜만에 일렁였다.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서울에서 교수를 하면서 소설을 쓰다가 어머니 돌봄을 위해 구례로 온 다음 가장 먼저 깨진 것인 우열의 개념이었다고 했다. 정답은 아니겠지만 자기가 지켜보니 시골에서 제일 불행한 할매는 일단 딸 없는 할매고(거의 모든 딸은 아들보다는 살갑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불행한 할매는 성공한 아들만 둔 할매. 왜냐면 성공한 아들은 바빠서 자주 어머니를 만나러 올 수 없는데, 늙으면 외로운 게 가장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좀 불행할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자식이 너무 잘나면 부모가 대하기가 어려워진다. 자식이라도 조심스러워지는거다. 그럼 제일 활기찬 할매 누구냐. 이런 저런 이유로 아들이 구례를 못 떠나고 여기서 맨 농사 짓는 아들 둔 할매. 평생 옆에 끼고 살았으니 있는 말 없는 말 맘대로 다 할수 있고, 밥 같이 먹을 자녀가 있다는 것이 일단 그 할매를 활기차게 하더라는거다. (며느리에 대한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그러면서 작가님이 덧붙였다. 잘난 아들을 굳이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사람은 모두 쓰임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뭐든 위, 아래의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지금 외롭게 만드는 똑똑한 아들은 젋은 시절에는 내내 할매의 자랑이었을거다. 떠올리기만 해도 신이 나니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을거다. 근데 그렇게 잘 키워놨더니 혹 외로워 질 수도 있는 거다. 농사짓고 사는 아들은 어떤가. 젊었을 때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어서 속이 탔을거다. 넘들은 상도 받아오고 서울로 대학도 가고 이름난 데 취업도 하고 며느리도 잘 얻었는 걸 볼 때마다 속이 까맣게 탔을거다. 입 떼기도 어려웠을거다. 그래도 그 아들이 곁을 지키니 노후에는 할매를 활기차게 할 수 있는거더라고.      


본인은 서울에서 엄청나게 관념적인 사람이었다고 했다. 엄마 건강 때문에 구례에는 왔는데,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절대 관념어, 추상어를 입에 담지 않더란다. 처음에는 이것도 괴로웠다. 살림 살이, 농사 얘기만 말하고, 듣고. 이래서 내가 무슨 소설을 쓸 수 있나 싶어서, 서울서 친구들이 오면 붙들고 "신자유주의 논쟁의 핵심 이슈 3개만 이야기 해봐", "프랑스 페미니즘이 미국 페미니즘이랑 어떻게 다른거야", 이런 걸 묻고, 밤새 주어 듣다가 동이 트면 그제야 '나도 비로소 세상에 흐름에 한발 담근것 같다' 뿌듯했다고 했다. 구례서 만나는 시골 할매들이 팔십 평생을 살면서 내 삶의 가치가 어디에 있나 이런 말을 하겠는가. 맨 "내가 니 안낳았으면 어쩔뻔 봤냐" 같은 구체어만 있었다. 할매들이 기후 위기 걱정된다 말 하겠냐. 하지만 삶 속에 기후위기에 고민의 언어가 구체적으로 들어있더란다. "자네 이번에는 고추 몇 줄이나 심을랑가", "이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고추농사를 지을랑가 모르겠네", "작년 겨울만큼 비 많은 겨울은 내 평생 처음이네" 이런 구체적 언어를 생생하게 듣다보니, 살아온 삶이 베어 있는 말들을 익숙하게 듣다보니 그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안으로 흘러 들어와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 구체적인 언어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고 했다. 우열이 아니라고. 관념보다 삶이라고. 작가님의 말을 들으며 공감이 가서 킬킬 웃다가 눈물이 나서 뿌엥 울었다.  왜 몰라. 그 허겁지겁한 마음을. 뒤쳐질까 봐 조급한 마음을. 나도 여전히 때때로 그런 마음을. 그리고는 뼈아프게 한 줄을 적어 넣은거다. [ 여 왔으면 여 온 사람 답게 좀] 시선을 지금 여기로 잡아오자고. 지향하는 바는 구체성이라면서 바라보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예전 그대로, 그저 이미지인 나를 깨달았다.     


나는 내 서점을 종종 부끄러워 했다. 세상에는 근사한 서점이 많으니까. 근사하고 세련되고, 뾰족하고 탁월해 보이는 것들을 들여다보면서 번번이 열패감을 느꼈다. 나는 허접하고 후지다고. 누가 가져다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찾아보고 좌절한다. 내가 지금 이정도 밖에 못하는 것이, 어디도 쫒아가고 있지 못하는 것이, 탁월하지 못한 것이 노력 부족 같아서 뭘 더 해보려고 혈안이 된 적도 있다. 어느 때는 모든 이유가 내가 서울에 있지 않아서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 것 같다. 서울에 있을 때는 뭔가를 주도하고, 뭔가 대단히 탁월한 사람이었던 마냥. 아니다. 나는 애초에도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다보면 정말 들어야 할 말이 안 들릴 때가 있다. 정말 받아야 할 마음이 안 다가올 때가 있다. 또치가 우리 서점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줘도, 서점 안에서 하는 모임들에서 빠짐 없이 함께 읽고 쓰고 애정을 보내주는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잘하고 있다고 격려 받는데도, 속으로는 주춤주춤 되묻는 것이다. 아니 저 분은 왜. 저 사람은 나를 왜. 아니 또치는 대체 왜.     


일단 그중에서 의중이 가장 궁금한 건 연쇄추천마 또치다. 또치는 우리 서점에서 북토크를 하면서 알게 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쓴 작가님이다. 한 번의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 우리 서점의 매일 쓰기 모임에 몇 번이나 신청해서 함께 쓰고 있다. 혼자만 쓰는 것도 아니다. 자기 친구들을 잔뜩 데려오고, 추천하고, 상주를 스치는 사람만 있어도 좋아하는서점을 소개하는거다. 솔직히 좀 이해가 안 갔다. 또치는 좋은 서점이 넘치게 많은 서울에 살고 있고,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다. 주변에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은 내 기준 활동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느 정도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또치는 자기 색이 무지무지 뚜렷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왜 자꾸 무색무취 같은 내 서점과 내 글쓰기 모임을 신청할까. 왜 서점이 좋다고 추천할까? 왜? 도대체 왜...? 자꾸 왜가 붙은 질문을 던졌다.       


직접 묻지 않아 여전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얼마전에 읽을 책에서 스스로 이유를 찾았다.      

일이라는 것은 보통 비용이 들더라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었으면 하는 일들로 이루어지잖아요. 그런 일 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68p, <일이어도 일이 아니어도>     


내 서점의 장점을 줄줄 얘기해준들 내 귀에 들렸을까. 그보다 이런 게 훨씬 와닿는다. 나는 꽤 성실히 마감이 되어주는 글친구, 꽤 꾸준히 함께 읽어주는 책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서점을 하면서 알게 된 건 내가 꽤 성실하고 꾸준하다는 것. 내 강점은 끈기더라는 것. 어떤 이에게는 이런 점이 대신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더라. 꾸준하게 함께 써주고, 꾸준하고 함께 읽어주고, 꾸준하게 문을 열어 자리를 지켜주는 게. 세상에 근사한 서점은 많고, 탁월하고, 특별한 서점도 많지만. 앞으로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테지만, 애시당초 각각의 서점은 우열의 개념으로 따질 필요가 없는거다.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이라고 쓰다가 새로 오픈하는 서점 피드를 봤다. 우와 가장 세련된 지역에 오픈을 하는구나. 역시 인테리어가 장난 아니다. 오픈 하는 날 DJ를 불러 파티를 한다니? 끙. 아니 근데 뭘 우와 하고 있냐. 약속도 나가기 싫어 고민하다 취소하는 사람이 파티라니? 진짜 부러운 것만 좀 부러워 해라 인간아) 조금 늦고, 조금 빼먹을 수 있지만 오늘도 내 역할은 마감 지키미. 읽고 쓰는 공간의 문지기. 매일 써보자고 매일 읽자고, 내 글을 올리는 것으로 끈기있게 격려한다. 자주 잊지만, 상주로 귀촌하면서까지 늘 선명히 깨닫고 싶었던 단 하나의 지향점은 이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열은 없다. 역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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