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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면접을 통과하고, 임원 면접이라는 걸 앞두고 나니 슬슬 불안함이 몰려왔다. 두 가지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너무 능력 밖의 일을 맡겠다고 해버린 건 아닐까. 또 뭐 못할 건 뭐야, 뭐가 되었건 매일매일 해야 일을 조금씩 해나가면 되는 거지. 사정없이 왔다 갔다 하는 감정을 미처 한쪽에 메어 두지 못했는데, 또 전화가 한통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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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지만 꽤 기분 좋은 통화였다. 면접 날짜와 시간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한번 사이트에 들어가 통화한 회사의 공고와 회사 소개를 꼼꼼하게 읽었다.
"직원에 대한 보상 및 동기부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영업자가 아닌 내부 관리자에게도 연봉 외 인센티브 적용, 회사와 구성원의 동반 성작을 목표로 합니다. (...) 또한 직원 개개인의 내적 성장이 중요하다는 기업철학을 기반으로 각종 교육비, 도서비, 문화생활비 등을 지원합니다. 작지만 내실 있는 회사와 함께하실 젊고 열정적인 분들을 모십니다."
지금은 작지만 앞으로 나아질 모습을 더 기대하게 하는 문구들로 성실히 채워놓은 회사 소개를 몇 번 읽고 좀 전의 통화를 떠올렸다. 괜찮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내가 보낸 이력서를 다시 한번 읽어보는데, 여러 군데 넣는다는 이유로 제대로 수정하지 못한 부분이 보였다. 아, 실수했다. 너무 성의 없이 보였겠다. 기회가 된다면 면접 자리에서 사과해야겠다고,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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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곳, 면접 볼 곳이 정해지니 갑자기 임원 면접에 대해 마음이 편안해졌다. '솔직히 된다고 해도 거긴 잘 모르겠네' 하, 갑자기 허세가 맘속에 가득 찼다. 임원 면접 시간 공지가 올 때가 되었는데 늦어져 내가 먼저 문자를 남겼다. 조금 있으니 전화가 왔다. 정말 죄송하지만 임원 면접은 취소되었다고. 아니 그걸 이제야 내가 물어보니까 말하는 건 뭐야. 왜 그러시냐 이유를 물으니, 내가 맡기에는 조금 부담되는 일일 것 같다고 한다. 뜨끔. 경력이 더 많은 분을 뽑아야 할 것 같다고. 좀 더 자리 잡고, 직원 채용할 때 제일 먼저 연락드리고 싶은 분이라는, 필요도 없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래도, 적어도 나에 대한 배려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좋게 전화를 끊었다.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뭔가 마음이 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원한 기분. 곧 꽤 괜찮은 느낌의 회사에서 면접이 남아 있으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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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까지 면접을 보러 갔다. 사무실 건물에 도착하면 전화를 하라셔서 전화를 걸었다. 내려갈게요. 한마디에 전화를 끊고 기다리는데 좀 떨렸다. 잘하고 싶었다. 연남동에 내려서 서교동까지 걸으면서 본 골목들은 정감이 가고 마음에 들었다. 회사 근처 환경은 이만하면 좋다 싶었다.
내려온다고 한지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이상하다... 혹시 외부에 계신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나. 알 수 없는 경우의 수를 세어가며 계속 기다렸다. 15분이 지났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슬그머니, 약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20분을 넘기기 전, 건물에서 사람이 나왔다. 나온 사람은 나를 아래 위로 빠르게 훑었다. 그런 건 아무리 빠르게 해도 다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굳이 조심스럽게 훑었던 것도 아니었다. 상황 설명 없이 대뜸 카페로 가자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내 표정이 여전히 조금 굳어 있었던걸 봤는지 한 없이 가벼운 말투로 묻는다. “긴장했어요? 낯가리나?” 아, 말투가 왜 저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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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오면서 봤던 예쁜 카페의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대뜸 묻는다. “그냥 지원했죠? 별생각 없이?” 내가 썼던 이력서가 떠올라, 제대로 수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음을 사과했다. 내 말을 제대로 들은 건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혼잣말 같은 말을 한다. “통화할 때랑 되게 느낌이 다르네.” 저기, 저랑 몇 마디... 해보셨다고 그런 말을 하세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쪽도 통화할 때랑 느낌 되게 다르거든요, 이 말도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다.
대화는 이어졌다. 말투도 표정도 태도도 모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지만 그런 건 한번 봐서는 모른다고 애써 애써 차분히 대답을 이어갔다. 나에게 간단히, 회사가 하는 일을 소개했다. 그리고 전에 근무했던 회사에 대해 꼬치꼬치 묻고 쉽게, 함부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입이 점점 꾸욱- 다물어졌다. 회사에 대해 조금도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눈치도 없이 계속 물었다. “입사하면 거기 광고 따오면 되겠네” 내가 어색하게 하하, 웃었더니 이어 말한다. “왜요 못하겠어요? 우리가 그런 일하는 거예요. 그러라고 뽑는 거예요.” 하. 네네 해야 되면 해야죠. 내가 뻣뻣하게 대답했더니 다른 걸 묻는다. “거기 분위기 좋아요?” 뭐지 저 무례함은. 네 좋아요. 빠르게 단답형으로 대답했더니 픽픽 웃는다. “근데 왜 나왔어요?”
거의 대부분의 회사에서 퇴사 이유를 묻는다. 그런데 저렇게 거지같이 묻지는 않는다. 분위기 좋아? 좋은데 왜 나왔어? 이 흐름 뭐지. 할 말이 없어서 내가 대꾸를 안 하고 있는 걸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내 입을 막은 게 신이라도 나는 건지, 도대체 뭔지, 뭐가 웃겨서 계속 피식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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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의 개소리를 다 옮길 수는 없지만 좀 적어봐야겠다.
자기한테 질문할 거 없느냔다. 입사하게 되면 정확히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물었더니 정말 갑자기 얼굴을 싸늘하게 굳힌다. “아까 얘기했잖아요. 이해 못 하셨어요?” 난 회사가 하는 일이 아니라, 당장 내가 들어가서 해야 할 일들을 좀 자세히 듣고 싶었던 거지만 입을 닫았다. 어차피 안 올 거니까. 그냥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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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 성격을 까기 시작했다. “성격이 어때요?”로 시작한 질문을 하더니 “사교성 없죠? 주위에 인맥 많이 없죠?”로 이어져서, 급기야 단점을 말해보란다. 몇 가지 단점을 얘기했더니 그런 거 말고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말해보란다. 사람들 참 그렇다면서 자기 약한 걸 숨기려고만 한다고. 방어기제라는 단어를 써가며. 열변을 토한다. 면접 와서 누가 자기 속 얘길 늘어놓고 가겠냐고 톡 쏘아붙였더니 그것도 그렇네 하는 식이다. 물어보는 질문이 ‘네 성격 별로다. 사람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뉘앙스의 질문이었다. 자기네 일은 마케팅 일이라 고객들이랑 의사소통도 잘 되어야 하고 성격이 밝고 대면했을 때 편안해야 하는데, 어떻느냔다. 내가 사람 관계 잘 하는 편이고, 사회생활할 때 외향적인 편이라고 대답했더니 예의 그 '피식피식'이 다시 나왔다. “아~ 전화로만? 전화로는 잘 하시더라고요. 근데 대면해서는...” 하고 다시 피식피식.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다음은 능력을 까기 시작했다. 뭐도 못해 뭐도 못해? 전에 직장에서 그런 걸 왜 안 했어? 묻길래 사용한 적 없다고 했더니 “다른 데 실장들은 그런 거 다 잘하던데(비교하신 건가요)”에 이어 “여자라 그런가”라고 했다. 정말 저렇게 말했다. 컴퓨터 활용 능력도 없고, 주로 맡았던 업무도 딱히 뭐가 뭔지 모르겠고, 헐 심지어 운전도 못해? 잔뜩 내 부족함을 열거하더니 “참 애매한 포지션이시네요, 특별히 잘하는 게 없으시네요.”로 나의 능력을 정리했다. 중간중간 ‘적은 나이도 아니신데’, ‘이제 나이도 있으신데’가 이어졌다.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마지막으로 다녀온 여행지가 어디냐를 묻지 않나 주말에는 뭘 하면서 쉬냐고 묻지 않나 부모님과 같이 사는지 왜 안정적인 교사 생활 안 하고 이런저런 일했는지, 정신없이 왔다 갔다 물어대더니 또 기어코 성격 얘기를 한다. 신입이나 다름 없는 것 같으니 신입 연봉으로 드려야 할 것 같다, 기에 어이구 그러시냐 했다. 새로운 일 괜찮겠냐길래 저 새로운 일 배우고 적응하는 것 잘한다, 새로운 일 도전하는거 좋아한다고 했더니 표정을 또 굳힌다. “좋아하고 그런거 말고” 뭘 착각하고 있네 의 뉘앙스로. 도전 이딴거 말고 구를 각오가 되어 있냐는 말이란다. 하하하하. 현실 웃음이 터졌다.
이제 헛소리도 끊겨갈 때쯤 일어나자고 하더니 한마디를 덧붙이며 나를 다시 한번 위아래로 훑었다.
"강북 살아서 그런가?" 몸이 굳었다. 저게 무슨 말이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픽픽거리더니 개소리 오브 더 개소리를 덧붙인다. "거기 산이 있나? 그쪽에 산이 있나요?" 하... 사는 곳과 미묘하지만 외모를 깠다. 하고 싶으신 얘기를 하시라고 말했다. 되게 유니크하단다. 4차원이라는 소리 들어봤냔다. 정색을 했다. 들어 본 적 없다고. 실제로 들어본 적 없으니까. 또 묻는다. “아 그럼 본인은 굉장히 평범한 편이다?” 네, 상식적인 편이죠. 대답을 하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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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을 하고 싶은데 욕이 나오질 않았다.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서 이 얘기를 하며 펑펑 울었다. 조카가 바꿔 받아, 이모 근데 나 내일 소풍 가, 얘기를 하는데도 눈물이 계속 났다. 이모 언제 놀러 올 거야, 이모 사랑해 하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계속 계속 연남동 골목을 걸으며 질질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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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개가 짖냐'가 이게 잘 안됐다. 너무 괴로운 마음인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또 이걸 말하고 털어버리고 싶었는데, 그럴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나는 인맥도 사교성도 없는, 대인관계 원만하지 않은, 친구 하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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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남긴 카톡, 마침 외부에 나와 있었던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 대신 욕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울다 웃다 했다. 사람이 없는 골목에서 오열을 하며 통화를 했다. 친구가 너무 분해하는 통에 내 마음이 조금 개운해졌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계속 엉엉 울었다. 친구가 말해줬다. 너 주위에 얼마나 좋은 사람이 많은 줄 아냐고. 맞다. 감사한 사람이 정말 많다. 또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아냐고 했다. 오글거렸지만, 이런 말 안 하는 친구가 해준 말이라 꺽꺽대며 고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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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고 카페에 들어와 생전 가야 돈 주고 사 먹을 일 없는 아이스 초코를 주문하고 받아온 명함을 8조각으로 찢어서 화장실에 버렸다. 속으로 미친놈. 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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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오지 그랬냐고 묻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면접을 어떻게 내가 먼저 끝내느냐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래도 혹시나,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앉아 있었던것 같다. 내가 선택해서 가지 않았을지언정, 나는 어딘가에 입사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겐 필요한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다. 면접을 몇 번 보지도 않았지만 한 곳에서도 합격하지 못했다. 그게, 내심 많이 힘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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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자고 일어나면 들었던 말 다 잊어버리라고 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말이 너무 많다. 그 말이 나의 어떠함과 전혀 관계없다는 걸 알면서도 좀 쪼그라든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거지 같다 정말. 이곳에 포스팅을 끝으로 생각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