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하던 친구가 재취업에 성공했다. 가까운 친구와 꽤 긴 시간 함께 백수일 수 있었던 건 나름의 행운이었다. 좀 더 치열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자꾸 멍 때리게 되는 시간들을 흘려보내면서, 같은 처지(?)라는 데서 오는 실체 없는 편안함이 있었다. 최근 둘 다 재취업 모드로 본격적인 전환이 되면서 더 많은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그래봐야 구인 사이트에 이력서를 내는 정도가 되겠지만. 취업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도 친구와 함께 있었다. 통화 하는 친구 입에서 흘러나오는 몇 마디 말만 들어도 무슨 전화인지 알 수 있었다. 마주 앉은 나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전화를 끊은 친구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조금 얼떨떨했다.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본다는 건 정말로 다시 일을 하게 된다는 거구나. 당연한 얘길. 내가 얼마나 현실감이 없는 사람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력서를 넣는 행위가 정말 취업이랑 연결된다는 걸 경험하니 마음이 얼떨떨하다. 얼레벌레, 근 두 달 동안 넣기 시작한 이력서가 거의 70군데쯤이다. 놀랍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고작) 4군데의 면접을 봤다. 세 곳에서는 떨어졌고, 지난주에 본 한 곳에는 1차 면접에 통과했다고 연락이 왔다. 이번 주에 다시 한번 임원 면접을 본단다. 임원 면접에, 아마도 갈 것 같다. 그리고 그 면접에 통과하면 나도 재취업인거겠지.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기다릴 거고. 그런데 왜 이렇게 남의 일 같을까, 실감이 나지 않을까. 너무 많이 쉬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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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취업으로 인해, 나에게도 갑자기 '취업 임박'이라는 글자들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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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너무 잘 쉬고 있다. 사실 딱히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바닥을 치던 조급함의 문제도 흐지부지 해결이 되고 보니 '돈 문제만 아니라면' 마음에 딱 맞는 곳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취업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작은따옴표로 묶어 놓은, 예상했었던 문제는 이미 진행중이고, 놀라운 건 돈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 '마음에 딱 맞는 곳'이라니, 그게 너무 어렵다. 스스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건,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깜냥이 안되는구나, 포기 아닌 포기를 하고 난 뒤 정해다양한 곳에 이력서를 넣고 몇 곳에서 면접을 봤다. 그러면서 구체화 되는건 되레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기 싫은 일 쪽이다. 결국 같은 얘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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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면접을 보고 나서는, '아버지 뭐 하시노', '여자가 너무 기가 센 건 아닌가'라는 말을 하는 상사를 둔 회사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면접을 보고 나서는 '연락이 안 온다고 너무 아무 곳에 나 이력서를 넣지는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아무나 와서 아무렇게나 면접을 본 곳이었...다. 세 번째 면접을 보고 나서는 '내가 못하는 일을, 굳이 열심히 해보겠다고 욕심내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영어로 된 해외 몰의 뷰티 상품 MD라니, 다시 생각해보면 내게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인지. 영어에 뷰티에. 나랑 너무 멀리 있는 것들이잖아. 네 번째 면접을 보고 나서는 '다시 너무 많은 책임을 가지고 일을 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맡게 되면 열심히 하게 될 것도 같다. 아마도 이건 지금의 재취업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지인 것 같다. 예전 같은 일을 할 것인가? 하는. 일단은 임원 면접에서 또 깨닫게 되는 게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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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서 어떤 생산적이고, 지금보다는 한 계단 넘어서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민만 하다가 제풀에 지쳤다. 그리고 나니 사실은 예전처럼 사소한 것도 다 써재끼고 싶다는 마음에, 약간의 두려움이 끼어들었다. 매일을 기록한다는 것이 쉽지 않구나. 새삼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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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돈을 버는 사람으로의 전환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최근 강릉 여행을 통해 강릉 관련 웹진에 글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한 발을 뗐다. 뭐 거의 뒤꿈치만 5cm쯤 들어 올렸다. 그리고 또 한 곳, 블로그 에디터(?)에 지원을 해서 1차에 통과했다. 모르겠다 2차의 결과는. 만약 통과한다면 돈을 받고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출판 기획서를 며칠째 들여다보고 있다. 대학 후배들에게 함께 뭔가 써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고, 선뜻 함께 마음을 모아줬다. 이쪽도 멈춘 건 아니라 다행이다. 조금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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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취업 임박'이 내게도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죽도 밥도 안될 일을 하느니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고스란히 기도제목이다. 이전만큼 인정받고 돈도 벌면서, 조금 더 본격적인 글을 쓸 수 있는 일을 하게 해주세요. 욕심인가. 아니 열심인가.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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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앞으로 어떤 회사에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글쓰기에 있어서는 콩알만큼 마음이 정리 된 것 같다. 혼자는 진도가 도통 안 나가는 사람인 걸 알아버렸다. 혼자는 어려우니 누군가에게 붙거나, 누군가를 붙이거나 하기로 했다. 이미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붙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함께 할래 물었을 때, 같이 할 사람이 붙어서 다행이다. 내 아무리 의지박약이라도 그들에게 미약한 힘이 돼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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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임박, 그렇다는 건 지금 이 변화의 과정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 다행히도 기록하는 삶으로의 열심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