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은 계속된다

by 노니

머리를 대강 말리고 나와 강남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많이 더운 건 아니었는데 에어컨이 도는 버스를 탔더니 금방 잠이 솔솔 와서 꿀맛같이 달게 잠이 들었다.

으리으리 높은 빌딩들 사이를 걷는 건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 기분이다. 사람이 참, 세련이 늘질 않는다. 회사 1층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쳤다. 노란 조명의 커다란 거울에서 보는 내 얼굴, 참 못났다. 아, 평소 쏙쏙 잘 만 들어가던 머리가, 오늘따라 사정 없이 바깥으로 뻗쳐있다. 이게 웬일이야. 참나. 피부는 건조해서 푸석하니 거칠고, 오늘따라 참 별로네, 괜히 쪼그라들었다.
13층, 회사에 도착해서 면접을 기다리는데 얼핏 봐도 직원들이 꽤 젊어 보인다. 아니 어려 보인다. 덩그러니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약속된 시간 정각에 면접실로 나를 안내했다. "힉" 면접실로 향하며 들여다본 사무실 안쪽 자리에는 빼곡하니 책상이 붙어 있다. 뭔가 정신없어 보이는 내부, 그 옆을 지나 면접실에 들어가 앉았다. 저 책상들 중 어디 한 곳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썩 자연스럽게 그려지질 않는다.
면접관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나도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을 했다.
"나이도 많은데" 내 입에서 이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면접관의 전혀 그렇지 않다는 대답에 순간 깜짝 놀란다. 상대에게 듣기 싫은 말이면서, 나는 참 나에게 잘도 말하고 있다. "나이도 많은데 제가 아직...", "나이도 많은데 제가 이제야..." 같은 말을 붙여가며. 겸양이라기엔 너무 후지다. 쓰지 말아야지 절대. 30분이 지나자 칼같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희 면접 시간이 30분이라서요."
면접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까 봤던 빽빽한 책상들 안으로 들어가기가, 조금 숨 막히게 느껴졌다. 터덜터덜 13층을 계단으로 내려왔다. 다시 으리으리한 빌딩 아래를 걸으며 생각했다. '강남에서 일하기 싫다.' 하고.

치맥이 하고 싶은 날이었다.

_
지원한 회사까지, 집 앞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오예. 시간을 계산해서 나갔는데 생각보다도 더 일찍 도착해버렸다. 바로 회사 길 건너편에다가 나를 내려줬다. 너무 일찍 왔네. 주위에 카페가 딱히 안 보이길래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 벌컥 마셨다. 30분쯤 앉아 있다가 길을 건너 회사로 들어갔다.

면접 시간이 가까워지니 나 말고 다른 지원자분들이 한 명 두 명 대기실로 들어왔다. 어려 보이는 얼굴들, 마지막으로 가장 앳된 포동포동한 얼굴의 지원자가 들어오며 혼잣말을 한다. "아, 떨려."
나를 포함, 비슷한 촌스러운 느낌의 블랙 앤 화이트 약식 정장을 입은 네 명의 지원자가 작은 대기실에 다닥다닥 앉았다. 서로 바로 곁에 있지만 딱히 눈 마주칠 일도 말을 걸 일도 없이, 각자의 손끝이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10여 분쯤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예정된 면접 시간을 조금 넘기고 직원 한 명이 면접실로 들어왔다.

"재경팀 지원하신 분." 나를 제외한 나머지 지원자들이 모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다. 이름을 불러 한 명 한 명 대조한 뒤 직원은 앞장서 나가며 말했다. "5층으로 올라가실께요." 아, 재경팀 면접도 있었구나. 나는 다른 팀에 지원했으니 그냥 앉아 있었던 것뿐인데 이름을 불린 세 명의, 당황한 여섯 개의 눈동자가 순간 나에게 와닿는다. '어, 그럼 언니는 뭐예요?' 하는 눈빛. 처음으로 서로의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세 명을 향해 씨익- 크게 웃어버렸다.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공간에 앉아 있던, 짧은 시간에 생긴 연대감이 만들어 낸 파이팅이었다. 물론 내적 응원이었지만, 오지랖을 펼치며.

마음껏,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그런 좋은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건 마치 유니콘같이, 현실 세계에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청 막연하고 막막한 말이지만 처음으로 다니기 싫은 회사가 아닌, 다니고 싶은 회사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산뜻한 면접이었다. 그러나 다른 어떤 곳보다도 짧게 면접이 끝나버렸다. 많은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걸까. 열심히 추측해보지만 알 수 없었다.

신중하게 회사 옆 골목에 들어가 카페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식빵 가게가 있길래 빵을 샀다. 얼른 집에 가서 빵과 함께 커피가 마시고 싶은 날이었다.


_
오늘 두 번째로 면접 본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길래 받았는데 그 회사 이름을 댄다. 반가운 마음에 "네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는데 대뜸 면접을 보실 수 있느냐고 묻는다. 혹 2차 면접인가 싶어 묻자, 상대가 당황한다. "저... 어제 면접을 보고 왔는데요" 대답하니, 아...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가 끊겼다. 뭐지. 확인해보니 이 회사의 채용 공고가 마감되었다. 뭘까. 공고가 마감되었는데 나에게 아직 연락이 없다는 건, 안된 거라고 봐야 할까. 열심히 추측해보지만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