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 빠진 퇴사의 기록
퇴사를 결심한 5년 차 직장인의 얘기가 뭐 특별하겠는가마는 나에게는 가장 특별한 '내 이야기'라서 한번 기록해보기로 했다. 나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스쳐가는 수많은 생각들. 퇴사가 끝이 아니라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게 너무 거창하다면 솔직히 그냥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해야 할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회사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아니 회사에 불만이 없었다는 건 습관적인 착한 척이고, 이 상황을 만들어 버린 회사에 대한 불만도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참다 참다 욕구불만으로 내 안에 무언가가 부글거리며 끓기 시작한 뒤로 정신없이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잘 살아보려고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면 알 수 있는 게 있다던데, 넘들은 참 잘도 놀러 다니던데, 떠나면 좀 달라질 것 같은데, 같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시야가 넓어진 것도 같고, 자유로와진 것도 같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또 마음도 잡히는 것 같고.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참 성실히 매달 꼬박꼬박 여행을 계획하고 어디라도 떠났다.
떠날 수 있는 내가 좋았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여행을 다녀오고, 여행을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또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그러다 보면 또 떠날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일상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또 곧 떠날 테니까. 현실에 처리하지 못한 마음이 있어도 괜찮았다. 나는 곧 또 떠날 테니까. 떠난 곳에서 자유로워지고, 넓어지고, 또한 변할 테니까. 한껏, 나를 위한 여행을 하고 돌아와 부글거리며 살다가 또 여행을 갔다. 여행에서는 늘 넘치게 행복했고, 나는 언제나처럼 막연히 괜찮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8월의 여행지 포르투갈,
역시나 해소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포르투갈로 떠났다. 떠나기 직전의 내 상태는 끓는 물이 뚜껑을 들썩이게 할 만큼, 넘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이번 여행도 행복했다. 그런데 조금 달랐다. 때때로 무뎠고 꽤 집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한 첫날 아침, 해소하지 못하고 떠났던 꽤 묵혀두었던 마음을 터트려버렸다. 여행이 내 마음을 해소시켜주지 못했다는 것에 스스로 조금 놀랐다. 그대로구나. 달라지는 것이 없구나. 실망이나 체념이 아니었다. 거품 같은 것이 사르르 가라앉고 난 뒤 인정했다. 더 잘 살아보려고 떠났는데 이제 떠나는 것 만으로는 무리다. 미뤄두었던 마음을 꺼내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심했다.
퇴사하겠습니다.
퇴사 면담을 하는데 사장님이 말했다. 신나게 여행 다니고 하는 거 보면서 괜찮아지는 줄 알았죠. 이번 여행 가기 전에 진짜 상태 안 좋아 보였는데 여행 다녀와서도 계속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여행 다녀오면 좀 달라질 줄 알았더니...
그러게요, 저도 그럴 줄 알았죠. 이 말을 속으로 삼켰다.
여행에 가져간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읽으며 때때로 징징 울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달라지는 것이 없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울고 싶을 때마다 울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첫날, 비정상적일 정도의 분노를 표출하고 나서 생각했다. 떠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구나. 하지만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사실은 달라지는 것이 없지 않다는 것을. 떠나기 시작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즈음 해서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의 북 토크에 다녀왔다. 사회자가 작가님께 극한의 여행지만 선택한 이유를 묻자 작가님은 뜬금포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았다던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전에 기사를 쓰기 위해 최배달에 대해 조사하다 알게 되었는데, 사실 최배달은 겁이 무척 많았다고. 끊임없이 도장깨기를 하고 도전했던 것은 내부에 꽉 들어찬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외부의 극한으로 더욱더 자신을 몰아넣었던걸 지도 모른다고. 사회자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덧붙였다. 듣고 보니 본인은 현재 일상이 늘 극한이고 도전이라 여행에서는 어쩌면 더 편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떠나는 것이 현실 도피였다고 인정하기 정말 싫었다. 사람들이 나 지금 현실에 만족 못하는 노처녀라서 이렇게 계속 여행 다닌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하고 한 번씩 주변 시선을 의식할 때도 있었다. 현실 도피라는 말을 한 없이 부정적으로 느끼는 건 내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실이 버거울 때는 잠깐 벗어나 몸을 피하는 것이, 현실이 너무 무료하게 느껴질 때는 잠깐 벗어나서 도전하고 일탈해 보는 것이, 언젠가 다시 돌아갈 현실에 가장 강력한 내공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가장 현실과 적극적으로 맞서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두려움을 깨부수려 도전하다 보니 전설의 파이터가 되어 있는 것처럼(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당분간 주문처럼 하게 될 말을 덧붙여 본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뭐 별 수 없는 일이다.
떠난 다고 달라지는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 달라진다 하더라도. 현실과 적극적으로 맞서서 살든, 도피하며 살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든 사실은 뭐 별 수 없는 일이다. 각자가 선택한 현실에 대해 책임지며 성실히 살아갈 뿐인 거다.
이건 그 성실한 과정의 게으른 기록이 될 것이다. 첫 번째 글이니 조금은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해본다. 아마도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버린 현재의 속도로부터, 나의 속도를 찾는 것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