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포르투갈
오후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 새벽 친구는 파리로 떠나는 일정,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어제랑 비슷한 위치에서 만나기로 했다. 혼자였으면 가지 않았을 볼량 시장이 첫 번째 코스. 사람 많고 복잡한 곳은 일행이 있을 때 해치우자(?)는 마음이었다.
시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짧고,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사진은 이 두 장이 전부.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구경도 하지 못하고 빠져나왔다. 해외에서 나는 때때로 지나치게 소심해져서 시장 상인들과 말을 섞거나 흥정을 해야 하거나, 암튼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한 곳에서 그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때도 많은데 포르투의 볼량 시장은 굉장히 붐비는데 비해 상인 분들께서 꽤 친절하게 응대해주셨다.
여행 전, 이곳저곳 블로그에서 볼량 시장 사진을 많이 보고 갔는데 그 사진에서 보이는 게 전부다. 추천해주는 쇼핑 리스트도 많았는데, 고민할 것 없이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게 다다. 예쁜 거 있으면 잔뜩 사야지 하고 갔는데, 막상 찻 잔과 티포트 세트 하나만 구매고 나왔다. 파란 아쥴레쥬가 그려진 약식 포트, 15유로를 부르셨다. 깎아볼까, 하다가 이미 15유로에서 '생각보다 싼데?'하는 마음이었으므로 군말 없이 값을 치렀다. 따로 제대로 된 박스가 없는지 크기가 맞지 않는 박스를 구해와 포장해주셨다. "모어 에어캡"이라는 말을 알아들으시고 한 번씩 에어캡을 더 둘러주셨다. 꼼꼼하게 포장해주셔서, 서울까지 무사히 가져올 수 있었다.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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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를 타러 내려갔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포르투 메트로 넘 맘에 든다. 깨끗하고 빠르다(?).
볼량 역에서 메트로를 타고 바다로 갔다. 메트로를 타고 바다로. 바다에 썩 집착하는 편은 아니지만 메트로 30분만 타도 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다니 솔깃했다. 바다 근처는 꽤 부촌이라 근사한 식당도 있다고 하고, 게다가 해안을 따라 걸으면 그 길은 또 그렇게 예쁘다고 하고. 친구와 근사한 저녁을 먹고 예쁜 길을 함께 걷다 쉬다 하면 좋겠다 싶었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시장에서 나온 터라 생각보다 일찍 바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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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단테 카드가 있으니 1회 권을 충전하고 메트로를 탔다. 따로 개찰구 같은 곳이 없지만 지하로 내려가기 전에 기계에 표를 대 줘야 한다. 그냥 넘어갔다가는 본의 아니게 무임승차가 된다. 지상으로 달릴 때는 차와 함께 차도 옆에서 달리기 때문에 거의 트램이랑 비슷한 느낌. 주변 경관과 아주 가까이에서, 인도 곁에서,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딱 한번 표 검사하는 걸 봤는데, 제복을 입은 직원분들이 무작위로 표를 검사한다. 몇 병은 무임승차로 걸렸는지 뭔가를 작성했다.
Matosinhos Sul 역에 내렸다. 버스정류장같이 생긴 메트로 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쨘- 바다가 나온다.
아 맞다, 오늘 날씨 흐렸지. 하하하. 진짜 겁나 우중충한 날씨였다. 뭔가 보자마자 피곤해지는 색의 하늘고 바다였다. 쨍한 날은 얼마나 예쁜 바다색일지. 결국 바다는 멀찌감치 서만 보고 모래사장도 제대로 밟지 않고, 쭉 해변을 따라 걸었다.
신기한 구조물도 만나고. 주변에 분위기 좋은 맛집이 있었는지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친구랑 수다를 떨며 쭉 걸었다. 물에 들어가기엔 너무 추웠고, 바다나 풍경을 즐기기엔 좀 이른 시간이었고. 무튼 날씨가 너무 흐렸다. 조금 걷다가 탄 500번 버스는 누군가가 해가 질 무렵 타면, 죽여주는 일몰 드라이브 코스라고 했는데 우리는 환한 낮에 타버렸다. 2층으로 올라가 앉았다. 그 예쁘다던 해안 도로를 버스 안에서 즐겼다. 2층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듣던 대로 선선하게, 천천히 걸었어도 참 좋았을 법한 기리었다. 해 질 녘 버스를 타고 다시 한번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번 포르투에서는 실패, 누구든 포르투를 가시 거들랑 기억해두세요. 500번 버스를 타고 해안도로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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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오다가 히베리아 광장 근처에서 내렸다. 언제 봐도 좋은 풍경. 이제야 하늘이 환해진다. 날이 개자마자 갑자기 엄청난 더위가 찾아왔다. 사람이 북적북적 정신없이 많았다.
아마도 포르투 전역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곳 중 한 곳이겠지. 모든 가게의 노천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낮술을 즐기고 있었고, 도우루 강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이들도 계속 이어졌다. 광장을 걷다 젤라토 가게를 발견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들어갔다. 두 스쿱에 3.5유로. 신기했던 건 학생같이 보이던 점원이 영어를 전혀 못했다. 포르투갈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거의 손에 꼽히는데 그중에서도 거의 가장 못했던 듯. 택시기사 할아버지에 이어. 아주 간단한, 스트로베리 같은 과일 이름도 말하지 못해서 통역이 필요한 지경이었다. 뭐 어쨌든, 무사히 먹고 싶은 맛을 잘 골라서 하나씩 손에 들고 계속 광장을 거닐었다.
며칠 왔다 갔다 해보니 알겠다. 포르투에 오면 어떻게든 하루에 한 번 이상, 여기 도루 강변을 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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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을 벗어나 상점들을 구경했다. 듣긴 들었으나 놀라울 따름.
패키지가 너무 예쁘다. 아니 증말, 통조림 패키지가 저렇게 예쁠 일이냐고. 잡화점에 들어가 넋을 잃고 사진을 찍고 구경했다.
또 한 곳 인상적이었던, 울로 된 상품들을 파는 가게. 한여름인데도 겨울옷과 머플러, 모자, 장갑 등 울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상품들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신기해서 들어가 봤는데 엄청 쿨한 사장님께서는 영어, 포르투갈어, 불어를 할 수 있는데 뭘로 말해줄까 하셨다. 하. 셋 다 못하지만 그나마 영어로. 가게에 3팀의 손님이 있었는데 각각 영어, 불어, 포르투갈어로 따로따로 응대하고 계셨다. 멋져라. 생각보다 예쁜 아이템이 너무 많아 꽤 오래 고민을 했으나 한여름이라 선뜻 손이 가진 않았다. 만약 추운 겨울에 여길 들어갔더라면 과소비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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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로 잠도 설쳤고, 이래저래 생각해보니 은근히 많이 걷기도 했고. 친구 짐도 챙겨야 하니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각자 숙소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프란세지냐로 유명한 cafe Santiago로 향했다.
콜라랑 프란세지냐, 생선 고로케를 주문했다. 20유로 정도. 아 싸다 싸.
[프란세지냐는 포르투갈의 샌드위치이다. 식빵, 쇠고기, 피암브르, 링구이사, 모르타델라, 소시지, 치즈 등으로 만든 뒤 소스를 부어 낸다. 포르투의 대표 음식. 피암브르는 무어고, 링구이사는 또 뭐지. 모르타델라는...? 피암브르는 냉동 햄, 링구이사는 소시지의 일종, 모르타델라는 이탈리아식 순대라고 한다.]
역시 유명한 곳답게, 식사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이 계속 만석이었다. 주문하고 바로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프란세지냐는 미리 만들어 놓은 마냥 뜨겁지 않았다. 유명하다니까 먹어보긴 했는데, 원래 이런 맛인지 여기가 맛 집이 아닌 건지. 다소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맛이었다. 듣던 것만큼 많이 짜지는 않았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라고 했지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싹싹 다 비워 먹었다. 분명 뜨거우면 더 맛있을 것 같긴 하다. 관광객들이 계속 들어오는. 정신없이 바쁜 집 치고는 응대가 친절했다. 외국인들은 무조건 1인 1프란세지냐였는데, 친구와 나는 고로케에 프란세지냐 반반이 딱 좋았다. 혼자 하나를 다 먹으면 너무 느끼할 듯.
카페 산티아고 앞에서 친구와 이별을 했다. 이제 두 달이 넘는 유럽 여행의 막바지로 향하는 친구를 배웅했다. 이곳에서의 만남은 오늘이 마지막, 곧 여행에서 돌아오면 서울서 또 만나자고 아쉽지만 반가운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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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환한 저녁. 며칠 있었다고 숙소가 제일 좋구나.
방에 붙어 있는 작은 발코니에 앉아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흐린 날씨 덕에, 짧은 만남 뒤의 이별 덕에 기분이 조금 처져 있었나 보다. 여전히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시원한 맥주를 몇 모금 마시고, 소소한 음악을 틀어 놓고 빈둥대니 서서히 기분이 올라왔다. 충전이 되는, 꽤 근사한 저녁이었다. 벌써 포르투에서의 세 번째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