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아트갤러리 거리와 공원 산책
오후 일정을 위해 간단히 요기를 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외관이 멋진 가게. 핸드폰 배터리 방전. 나도 방전. 핸드폰을 충전하면서 나도 음식으로 충전을 좀 해주고.
포르투에도 트램이 있다. 타보지는 않았지만.
포르투에서는 거의 대부분을 걸어서 다녔다. 도시 자체가 워낙 작은 것도 사실이지만, 정확히 목적지를 정해놓고 다니기보다 이왕이면 구석구석 걸으려고 애썼다. 거리와 골목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고,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이 많지 않기도 했다. 분명 계획이라면 그 어느 여행보다 공격적으로 세워 왔는데, 계획은 계획으로서 완벽히 아름다운 법, 꼭 다 지켜내야 맛은 아니니까. 몇 번의 여행으로 그 정도의 융통성은 생겼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을 거리에서 흘려보냈다. 포르투는 매일이 어쩜 이렇게 날이 좋은지. 그래서 리스본도 그럴 줄 알았지.
든든해진 배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보물 같은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열려 있는 문이 심상치 않다.
아... 여기는 천국인가요. 빈티지 소품과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잡화점이었다. 인테리어가 너무 힙해서 깜짝 놀랐다(입구에 예수님 초상화 뭘까). 세상에 세상에. 모델같이 예쁜 사장 언니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봤더니 사랑스러운 미소로 "슈어" 대답하는데 뿅. 포르투에 고작 며칠 있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그다지 세련된 미녀를 많이 보지 못했다. 스팽글이 잔뜩 달린 반짝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내가 포르투에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세련된 미녀였다. 크-
사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이런 곳에서는 잠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아도 좋습니다'라고 사방에서 말하고 있는 숍에서 쇼핑을 하고 있자니 자꾸만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요리는커녕 생전 가야 부엌에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빈티지 에이프런을 고르고, 답답해서 모자는 잘 쓰지도 않으면서 엄청 힙한 스냅백을 고르고. 이것저것 잔뜩 골라서 계산대로 가져갔는데, 하... 카드가 안된단다. 완벽한 이곳에 딱 한 가지 없는 것, 카드 단말기. 너무 치명적이다. 현금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하니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골랐던 것들 중 얼토당토않은 것을 뺐다. 스냅백에 에이프런이 웬 말이냐 다 빼고, 엽서 빼고, 영어로 된 가이드북 빼고... 아쉽지만 가지고 있는 현금에 딱 맞춰서 쇼핑을 마쳤다.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디서 또 어떤 가게를 만날지 알 수 없으나, 일단 현재에 충실하자.
계산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남자 모델이 들어온다. 남자 모델이 망설임 없이 계산대까지 직행하더니 사장님을 와락 안았다. 남자 친구였다. 내가 바로 앞에 있지만 아랑곳 않고 5초도 넘게 꽈악 껴안고, 떨어질 줄 알았더니 볼을 비볐다. 하하.
정말 예뻤던 빈티지 상점. 이런 가게가 우리 동네에 있다면 가산 탕진하기 십상일 듯.
쇼핑백을 신나게 휘휘 휘두르며 거리 구경을 계속했다. 바버 숍에 붙은 포스터도 예뻐요.
거리엔 그림이.
크고 작은, 낙서 같은 작품들.
이렇게 큰 벽에 한가득 채워져 있기도 하고.
게스트 하우스 창문인데 뭐가 이렇게 예쁘지. 금색 폰트와 금색 커튼대, 야자나무까지.
에메랄드 색 타일에 브라운 창틀. 창문에 반쯤 내려온 블라인드와 그 안쪽에 쳐진 레이스 커튼이라니. 대체, 이 나라 사람들의 DNA에는 디자인 감각, 컬러 감각이라도 따로 있답니까. 하.
작은 갤러리가 보여서 냉큼 들어갔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머리가 하얀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 주셨다.
무슨 전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들어오길 잘 했다 싶을 만큼 재미가 있는 전시였다. 색감이 너무나 생생한.
재밌는 작품들.
재밌는 그림들.
과장된 색감과 표정이, 우리나라 탈과도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다.
전시된 작품 자체도 평범하지 않았지만, 디스플레이도 범상치 않다. 이렇게 바닥에 놓아둔 작품들도 있고, 흰 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온통 벽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세상에 귀여워.
독특하다 참.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의 사진이 실려 있는 매거진. 들고 오지는 않았다.
보는 재미가 있는 전시였다. 갤러리 안을 지키고 있던 직원분께서는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친절하게 따라다니며 작품 설명도 해주셨는데, 나에게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셨다. 흑. 프랑스 부부가 들어오자 신이 나서 불어로 도슨트 시작. 포르투갈이 프랑스 사람들이 여행하고 싶어 하는 나라 1순위라더니. 유럽 사람들도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으니, 내가 외모로 프랑스인들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불어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오늘 또 새로운 길을 잘 들어선 것 같다. 어제까지 걷던 거리와는, 뭔가 또 느낌이 다르다. 새롭다. 이 길 어디쯤에 내가 가려는 서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일까.
* 나중에 검색하다 보니 아니나 달라, 이 거리를 아트갤러리 거리라고 부르는가 보다. 꼭 들러보시길.
오고 싶었던 그림책 서점에 도착했다. 아...
이렇게 한쪽 벽면에 가득히 책이 채워져 있다. 이곳에서 나는, 행복해지지 않을 자신이 없다. 무슨 말이야 이게. 흐흐. 행복해질 수밖에 없는 공간이라는 말.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소파에 앉아 한 권씩 보고 싶은 책을 꺼내서 읽으면 된다. 손이 안 닿는 곳에 있는 책은 아래쪽에도 따로 디피가 되어 있으니 직원분께 물어보면 되고. 외국어를 잘 몰라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독서를 했다.
관심 분야가 아니라 잘 몰랐지만, 포르투갈은 그림책으로 꽤 유명한 나라란다. 누군가 쓴 그런 글을 읽었다. 직접 이 나라의 거리를 걷고, 이 나라의 햇빛을 맞아보니, 포르투갈 작가들의 그 독특하고 쨍한 색감이 이해가 가더라고. 이곳에 며칠 있어봤다고 그 글에 나 또한 공감한다.
그림책 표지만 봐도 색감만 봐도 힐링. 히일-링.
그림책만 판매하는 서점답게 소품들도 참 컬러풀하다.
한쪽 벽면을 보는데, 엇. 어어어어엇!!!!!!
익숙한 건 한눈에 들어오는 법. 한국말로 번역된 동화책이 있었다. 북극곰 출판사의 <아빠 아빠, 재밌는 이야기 해주세요> 반가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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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 어린이 도서관에 들러 유명한 포르투갈 작가들의 동화책을 몇 권이나 미리 읽어 둔 뒤였다. 소름 끼치는 여행 예습. 내가 이렇게 주도면밀한 면이 있을 줄이야. 좋아하는 걸 하면 다 이렇게 되나 보다. 덕분에 포르투갈 말로 쓰여있어도, 영어로 쓰여있어도 내용을 미리 알고 있는 책들도 있었다.
서점에서 커피도 판매하고 있다. 브라우니도 함께.
그냥 가기 아쉬우니 에스프레소 한 잔. 동화책 한 권과 포르투 그림 지도를 샀다. 사실은 이것저것 다 사버리고 싶었지만. 꾹 꾹 참고.
여행 가방 위에 그림책, 저 낡은 소파가 너무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PAPA-LIVROS]
papa는 만국 공통 아빠. livros는 책이라는 뜻. 아빠-책. 아빠가 읽어주는 책이라는 의미일까. 크 그림책 읽어주는 아빠,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참 좋다.
저는 지치지 않았습니다. 계속 걷습니다. 머리 위로는 쨍한 파란색의 하늘.
양쪽 벽에는 이렇게 예쁜, 도무지 예측할 수도 없는 다양한 그림들이 한가득. 그림책이 서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길 위도 온통 그림책이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몇 번이나 스카이스캐너에 들어가서 비행기 표를 확인했다. 정말로 당장 다시 떠나고 싶어서. 마음만 그랬다. 선뜻 지르질 못하겠다. 퇴사하면 여행은 실컷 다닐 수 있겠다 했는데, 그게 어째 그렇지가 않네.
어느새 퇴사한 지 벌써 10개월이 되어간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세어보고 또 흠칫 놀랐다. 버티고 버텼지만 오늘 드디어(?) 퇴직금을 깼다. 카드 결제일이 어제라 부랴부랴 아침부터 은행에 다녀왔다. 자주 쓰는 거래 통장에 퇴직금을 이체했다. 열심히 일했던 지난 몇 년의 성실함이 지금의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데 감사하다. 마음이 어려우려나 했는데, 되레 숨통이 조금 트인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조금 마음이 쫄려 있었나 보다.
이어지는 그림을 구경하며 계속 걸었다. 이런 길 위에서 땅 만 보고 걸을 수 있을까. 그림을 보고, 그림 끝에 걸려 있는 하늘을 보고, 그러다 보면 마음도 같이 둥둥 떠다녔다.
한가롭고 행복해지는 풍경.
그늘에 앉아서 쉬는 동네 사람들.
걷다 보니 근처가 크리스털 궁 정원(garden of the crystal palace)이었다.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입장하니 사진 속에서 봤던 독특한 건물이 저기 멀리에서 보인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이 풍경이지. 우리가 공원 하면 생각하는 그런 풍경이 여기저기 즐비하게 펼쳐져 있었다. 매일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이 날은 포르투에서도 손꼽히는 날씨인 듯, 공원 곳곳에 사람들이 많았다. 누워 있고, 걷고, 뛰고, 놀고, 웃고. 소풍 온 아이들도 있었고 노숙자도 있었다. 누구라도 오시오. 이런 게 공원이지.
햇빛이 나무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만들어 내는 그림자와 바람이 나무 사이사이로 불어 만들어 내는 흔들림이 만나니, 그림자가 반짝인다. 그림자가 반짝인다. 이런 습기 없는 바삭한 햇볕은 마음의 눅눅함까지 바싹 말려준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제 먹다 남은 크루아상과 스콘, 꿀맛 나는 복숭아도 싸왔다. 간식을 좀 먹고, 슬금슬금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왜 푸른 자연만 보면 발에도 숨을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까. 나무 밑동에 기대고 앉아 그늘의 서늘함을 즐기고 있자니 아주 자연스럽게 졸음이 솔솔 왔다. 깜빡깜빡 눈이 감겼다. 졸음이 솔솔 올 때의 그 황홀함을 즐기고 있는데 깜짝. 바로 눈앞에서 공작새가 지나간다. 헐. 이게 뭐야. 싶었는데 또 한 마리가 지나간다. 바로 눈앞에서. 그게 참 신기하고 예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크기가 너무 커서 무서움이 먼저였다. 앉아서 졸다가 깼는데 공작새랑 눈이 마주친 상황. 안 놀라겠냐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크. 사진 속에서 많이 봤던 그 포토 스팟이다. 사람들이 각종 포즈로 저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나는 혼자 가뿐히 셀카를 찍어주고.
앉아서 잠깐 쉬었더니 뭔가 몸이 풀어진 기분이었다. 아직 날도 좋고 밝지만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어졌다. 그럼, 집에 가고 싶으면 가야지 뭐.
돌아가는 길도 행복해라.
집 근처, 배는 별로 안 고프지만 이른 저녁을 먹었다.
오믈렛과 바게트 몇 조각. 계란 젤 좋아. 바게트도 별거 아닌데 너무 보들 보들하고 맛있다. 신선한 야채를 꾹꾹 씹어 먹고.
꽤 예쁜 카페였지만 뭐 특별하진 않았다. 가장 안쪽 공간에 천장이 뻥 뚫린 독특한 인테리어라는 게 조금 매력적. 행잉 플랜트가 다소 어설프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돌아왔다. 집이다 집.
내가 제일 좋아했던 풍경.
개운하게 씻고, 맨몸으로 침대에 쏙 들어갔다. 불을 끄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에 의지해서 책을 읽다 잠들다가 하는 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
해가 지는 걸 보려고 좁은 발코니로 나갔다. 몸에는 이불을 칭칭 감고, 몸에 닿는 이불의 촉감을 포기할 수 없어서.
포르투의 마지막 밤. 해가 저무는 쪽으로 앉아서 하늘이 핑크색에서 보라색으로, 또 주황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있었다. 갈매기들은 지치지도 않고 매일 울고, 하늘은 질리지도 않게 매일 이렇게 예쁘다.
오늘이 포르투의 마지막 밤이라고 써서 이 날의 이 하늘을 SNS에 올렸더니 댓글이 달렸다.
[으아 내가 다 아쉬워요] 그러게, 모두 아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