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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일어나라!

16. 천국과 지옥

by 한평화

회복실에서도 나는 계속 꿈을 꾸었다.

집 앞에 산책로가 보였다.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10층 여자가 산책을 한다. 몇 발자국 뒤로 11층 여자가 보였다. 나는 그들과 자주 산책을 한 터라 현관문을 열고 나가 그들 곁에 가서 아는 체를 했다. 우리 셋은 서로 말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러나 아무 대응이 없었다. 나는 이상해서 그들 손을 살포시 만졌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제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 나는 천국에 있었지. 나를 담당한 천사에게 지상에 내려가기 싫다고 말했어. 천사는 잠깐만 있다가 오라고 말하면서 대신 아무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있게 해 준다고 했지. 말소리가 다시 들렸다. 11층 여자가 말했다.

“생각해 보니 천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왜? 천국, 그 따위 거 필요 없다면서?” 10층 여자가 웃으며 대답을 한다.

“예를 들어 말할 게. 어떤 시각장애인이 있다고 생각해 봐. 그는 거짓말도 도둑질도 못해, 보이지 않으니까 착하게만 살았지. 나쁜 짓은 전혀 할 수 없어. 실컷 고생만 하고 살았는데 천국이 없다면 너무 억울하잖아. 그래서 천국은 있어야 해.”

“그럴 수도 있어. 공평해야 되니까 천국이 필요하다는 말이지.” 10층이 대꾸했다.

“너는 크리스천이고 나는 무신론자였잖아. 내가 변하는 거 같아.”

“왜 변하게 됐을까?” 10층이 물었다.

“만약 심판이 없으면 천국도 없을 거 아냐. 심판이 있어야 천국이 있는 거지.”

“그렇지, 심판이 있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이 있지.”

“세상이 험하잖아. 만일 여기 악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이 세상이 전부이고 심판도 없기 때문에 더 나쁜 짓을 할 수도 있어.”

“그렇지.”

“그래서 나는 천국과 지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나 지옥을 생각하면 무서워. 나는 나쁜 짓을 많이 했거든.”

“살려면 누구나 죄를 짓게 되어있어. 회개하면 그분이 용서해 준다고도 했어.”

“사람은 변할 수 있는 거 같아. 우선 내가 이렇게 조금씩 변하잖아.” 11층이 말했다.

“옛날 이스라엘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어.” 10층이 말했다.

“또 예수이야기야?” 11층이 물었다.

“그래, 너도 이야기는 좋아하잖아.” 10층과 11층은 서로 주고받았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였어. 그가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 말을 했지. ‘이렇게 표적을 행하신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예수는 그가 한 밤중에 찾아온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어.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궁금했던 말을 했어. 니고데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지가 궁금했나 봐.”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예수님이 말했지.

“그럼,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가야 되나요?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지요?” 니고데모가 물었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갈 수 있다.”라고 예수님이 대답했어. 니고데모는 그 말을 이해 못 하고 그냥 떠났어.

“나도 모르겠는데. 물과 성령으로 어떻게 거듭나는 것인데? 11층이 물었다.

“세례, 침례라는 말을 들어보았지? 물속에 들어갔다가 새로운 사람이 되어 나오는 거야. 과거 죄 속에 살던 모습을 다 씻어내고 새로 산다는 의미가 있어.”

“그 후, 니고데모는 어떻게 되었어?” 11층이 다시 물었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잡으려 하자 “사람의 말만 듣고 또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왜 예수를 심판하느냐?”라고 따져 물었어.

“니고데모의 용기가 대단하네. 예수님을 옹호하고 잘 중재했네.”

“그뿐만이 아니었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을 가져왔고 예수님의 시체를 향품과 함께 세마포를 쌌어. 그는 조용히 와서 제 할 일을 다 했어.”

“니고데모가 완전히 변했네. 사람은 좋은 쪽으로 충분히 변할 수 있네.”

“베드로의 마음이 변하는 이야기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거의 알지. 예수님을 세 번째 모른다고 부인할 때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고 닭이 세 번 울었지. 베드로는 마당에서 나와 통곡했어. 결코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수제자 베드로도 죽음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며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지. 그리고 죽을 때도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죽을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죽었으니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뒤따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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