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파친코에 미치다
남편은 한동안 집에 일찍 오고 나름 건전한 생활을 하였다. 이제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행복한 가정으로 오는 가 싶더니 또 다른 일이 터졌다.
남편은 파친코에 미치기 시작하였다. 퇴근 후 남편은 친구와 만나 파친코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몇 번 돈을 잃더니 어느 날은 파친코 사장과 싸우고 왔다. 처음에는 종업원하고 싸웠으나 나중에는 사장을 불렀다. 남편은 확률적으로 돈을 몇 번을 잃으면 한 번은 딸 수 있어야 하는데 계속 잃으니까 기계를 당연히 조작했다고 생각했다. 사장을 불러오라고 해도 종업원이 가만히 있자 기계를 몇 번 쳐서 작살냈다고 하였다. 그러자 어디선가 사장이 나왔고 한바탕 싸웠다고 하였다.
사장이 남편을 달래면서 내일 조용히 만나자고 하였다. 사장은 돈을 잃었다고 그렇게 종업원과 싸우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내일 오후 7시쯤 와서 5번 기계 앞에서 하라고 했단다. 그러면 5번 기계의 조작된 것을 풀어준다고 하였다. 과연 6시쯤 가서 시작하다가 7시가 넘자 5번 기계에서 코인이 쏟아져 내렸다고 하였다. 그동안 잃은 돈을 조금이라도 만회하여 기분은 좋았다고 하였다. 잃은 돈을 따왔다고 하며 남대문 근방의 금은방에서 비싼 스위스시계를 사 왔다. 모든 도박꾼들이 돈을 얼마 땄다고 하는 것은 딴 만큼의 몇십 배 또는 몇 백 배쯤 돈을 잃었다고 보면 된다. 놀음해서 돈을 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그런 사람들은 다 허풍쟁이일 뿐이다.
파친코는 특별히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이 그저 반복적으로 레버만 당기면 되는, 특별히 시간의 소중함도 인생의 목적도 없는 사람이 한 번쯤 들러 지나가는 노름이다. 그 후에도 남편은 매번 돈을 잃었다. 단순한 기계와 싸워 이길 자가 누구랴. 기계를 조작하여 얼마쯤 잃고 우연히 한 번 따면 그 환상에 빠져 기대를 하고 파친코 문을 두드린다. 계속 돈을 잃자 남편도 화가 나서 또 기계를 때려 부수었다고 하였다. 그러자 종업원이 조용히 이야기를 하자면서 어떤 타짜를 소개해 주었다고 하였다. 그 타짜는 파친코에서 돈을 따는 공식을 알려주었다. 남편을 그것을 습득해야 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저녁을 먹은 후 남편은 오늘은 공부할 것이 많다고 하며 서재실로 들어갔다.
“엄마, 아빠가 화투 같은 곳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어. 나도 그림책 읽어줘.”
“그림이 어떻게 생겼는데?”
“수박 같은 그림이 세 개가 있는 화투야.”
“두께는?”
“화투보다 얇아, 그림을 보고 뭐라고 주문을 외우는 것 같았어.”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여보, 투 잡을 뛰어야겠어.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파친코에서 일하고.”
남편회사는 남대문 근처에 있었고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파친코가 있었다.
“파친코라고? 당신 이제 미쳤구나. 그것은 노름이고 사기지. 당신은 도박꾼이고. 도박이 어디 직업이 되냐고?”
“타짜가 알려준 공식대로 하면 돈을 딸 수 있다고 하네, 돈 벌어서 다 줄게.”
“미쳤네, 이제는 돈에 환장했네. 돈 아무리 따도 나한테는 소용없어. 파친코 더 이상 하면 당신하고 이혼할 거야.”
“정말? 그럼 이혼하자.”
“다른 것은 좀 용서가 되어도 노름은 절대 용서 못 해. 기계의 공식을 외워 돈을 딴다고 하는 것도 소용없어. 노름으로 돈을 딸 수도 없고 혹여 딴 돈으로 세상을 사는 것은 더 용납할 수 없어. 땀 흘리며 일하고 먹고사는 게 세상 순리이고 최고야. 노름은 파멸이고 죽음이지. 공짜는 행복할 수가 없다고, 이 새끼야.”
“내가 머리를 식히려고 취미로 좀 미쳤는데, 이해가 안 되냐?”
“파친코, 놀음이라는 것이 취미라면 더 큰 일이지. 좀 상식적인 일에 미쳐봐라. 운동을 하던지. 탁구를 치던지. 영어회화 학원에 다니던지. 건전하게 살아보라고.”
나는 막말을 하였다. 이판사판으로 싸우다 보니 나중에는 쌍코피까지 터졌다. 쌍코피로 빨갛게 윗옷이 물들었지만 나는 죽도록 싸웠다. 지금 아니면 그 버릇을 고치기 어려울 거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옥신각신 싸우던 중에 남편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뭐 해, 바빠? 바다낚시에 갈 건데 시간되면 같이 가지.”
“따분하던 차에 잘 되었네. 전화 잘했어.”
남편은 얼씨구 좋다 하며 따라나선 것이었다. 한쪽에 보관되었던 낚시도구를 다시 손보고 챙긴 후 친구들이랑 어울려 바다낚시에 갔다.
바람도 피우고 놀음하는 남편, 텅 빈 가슴에 헤어진 애인을 만나고 싶었으나 전화번화가 없었다. 전화번호를 괜히 버렸네, 아쉽다는 생각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