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드디어 만나다
이제 미스 노와 만날 장소에 거의 왔다. 멀리서 누군가 손짓한다.
“형님, 여기요.”
“오래 기다렸어요?”
“방금 왔어요, 형님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나도 아우님이 많이 보고 싶었어. 딸은 잘 있어요?”
“네, 시집가서 잘 살고 있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형님 딸은요?”
“아직 시집 못 갔어. 아우님의 얼굴은 여전히 매력적이네.”
“형님,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으세요?”
“2박 3일 코스로 강도 있고 산이 있는 좀 재미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박물관 식물원도 있고. 우리도 힐링할 수 있는 곳, 아니면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미스 노는 한참 휴대전화 검색을 하더니 찾았다고 좋아했다.
“여기 있어요. 고창 선운산이 적합하네요.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된 제일 많고 크고 유명한 고인돌이 있고, 선운사와 둘레길이 있고, 어촌의 겨울바다와 갯벌도 보고, 황토 한증막도 들어가 몸도 녹이고, 2박 3일은 부족할 거 같은데 그 기간에 맞추어 돌아보아요.”
“그래 좋을 거 같아. 마트에서 필요한 거 있으면 좀 살까?”
“형님, 먹을 것은 다 준비됐어요. 내비게이션에게 고창으로 명령할게요.”
“덕분에 여행도 하게 되고 고마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지난 이야기 하면 감정이 복받쳐 운전사고 날까 봐, 마음을 가라앉히려 우선 몇 가지 클래식 CD를 준비했어요.”
미스 노의 준비성은 대단했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머 슈베르트의 송어네, 이 곡 좋아해? 나도 좋아하는데.”
“네, 좋아해요. 같은 물고기인데 송어하고 숭어하고는 어떻게 다를까요?”
“송어는 민물고기이고, 숭어는 바닷고기지. 그러니까 송어가 맞아. 바다에 가는 것은 배라든지 전문가 장비가 필요하지. 슈베르트가 노는 것을 보았다면 민물고기 송어야. 송어 축제도 많이 열리지?”
“같은 물고기라도 노는 물이 다르네요. 그래서 이름이 다르군요. 다음에도 송어, 숭어가 헷갈리지 모르겠네요.”
“슈베르트의 송어는 송사리 떼를 생각하면 어떨까? 같은 송 씨이니까.”
“송 씨네요. 송어가 악기와 만나 물살이랑 잘 노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정말이네. 송어가 신나서 물살을 헤치고 장난치고 있는 거 같아.”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소리가 들리네요.”
“아우님이 음악을 많이 아네.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까지 친구가 5명이네. 그래서 ‘슈베르트 피아노 오중주 송어’라고 부르지.”
“그런데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 소리는 잘 알 들려요.”
“대부분 익숙한 소리만 들릴 수 있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바이올린보다 좀 낮고 첼로 보다 좀 높은 그 중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비올라의 음폭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사이지. 음악이 서로 주고받지?”
“송어가 물살과 악기와 잘 노는 것이 형님과 나 같아요. 송어가 물에 젖으면 안 되는 악기와 어떻게 만나겠어요? 형님과 나 사이도 결코 만날 수 없는 사이지요.”
“CD 케이스를 보니 피아노에 김지용, 비올라에 용재오닐이네.”
“피아노 소리가 젊고 경쾌하고 박력 있어요. 비올라 친구 얼굴에 살짝 주름도 있고 철학자처럼 보이네요.”
“피아니스트 김지용은 열 살 때 미국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하고 계속 콩쿠르에 나가면 1등을 했대. 당연히 콩쿠르에 나가면 1등 하는 것인 줄 알았으니 연습도 게을리했을 것이고,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1등이 안 되고, 계속 밀리더래. 그때부터 슬럼프가 오기 시작해서 한동안 피아노를 멀리하고 치지 안 했어.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했겠지. 그 후로 태도를 바꾸어 콩쿠르에는 나가지 않고 피아노를 즐기며 치기로 했대. 콩쿠르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겠지.”
“그래서 한 때 피아노를 멀리 했군요.”
“어느 날은 점심때를 이용하여 피아노 만드는 공장에 가서 노동자 앞에 여러분이 만든 피아노에서 이런 소리가 나온다고 하며 직접 피아노를 쳤어.”
“노동자들이 굉장히 좋아했겠네요?”
“물론이지. 환호하며 앙코르도 하고 아주 좋아하더래. 자기들이 만든 악기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줄은 몰랐나 봐. 지금도 마음을 비우고 이렇게 찾아다니면서 계속 즐거운 음악활동을 하고 있지.”
“감동이네요. 비올리스트는 고생을 많이 한 얼굴이네요.”
“용재오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올리스트며 특별히 다국적 음악가야. 몇 해 전에 우리나라에 와서 어려운 학생과 다문화 학생들에게 무료로 비올라를 가르쳤어. 미국에 입양한 한국계 어머니의 아들이야. 용재의 어머니 복순 씨는 6·25 전쟁고아로 오닐부부에 입양되었어.”
“좀 복잡하네요. 다시 말하면, 어머니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을 갔는데, 미국에서 용재를 낳아다고요?”
“그렇지, 용재는 미국에 입양한 한국계 어머니의 아들이야. 오닐부부가 6·25 전쟁고아인 어머니 복순 씨를 입양했어.”
“어머니가 전쟁고아였군요. 용재 이름의 뒤에 양부모님의 이름 오닐이 붙는군요.”
“그렇지, 용재오닐은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견디며 미국에서 자랐지. 그는 모든 차별을 견딜 수 있었지만 지적장애인 어머니에 대한 모욕만은 참지 못했어.”
“오닐부부가 지적장애인을 입양하셨다고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니죠. 그리고 용재오닐을 세계적 음악가로 키웠잖아요.”
“그래서 미국의 위대함이 존재하는 거지. 미국이 인종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안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장애인을 입양하는데 일등공신이지.” “오, 그래서 미국을 ‘세계의 지도자 나라’라고 불리는군요.”
“그 바탕에는 기독교 핵심 사상인 사랑이 깔려 있지.”
“기독교의 바탕사상이 무엇인데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지.”
“그렇지만 요즘 미국의 위대함은 사라지는 거 같아요.”
“그렇지. 누가 대통령이 되는 가에 달려 있어.”
“나는 비올라하는 용재오닐이 참 매력적인 음악가라 생각이 들어요. 음악가가 철학적이라면 소리도 깊이와 울림이 다를 거 같아요.”
“맞아, 고뇌 속에서 나오는 음악이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겠지. 현재는 미국 유명한 음악대학 교수야.”
“또 그의 엄마 복순이라는 이름에 정이 가네요. 복순, ‘복이 있고 심성도 순하다’라고 해석이 되네요.”
“해석이 짱이네. 복도 있고 순해서 일이 잘 풀려 지금의 용재오닐이 되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