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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평화 Apr 16. 2024

아름다운 황혼

10. 남편은 시댁 편

 “첫째는 나에게 반항기질이 있었어요하라는 대로 안 하고 자유분방했지요누가 뭐라고 하면 왜 그 말을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 안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더러운 꼼수 같은 것이 보이면 즉각 반박했으니까요엄마 아빠도 내 말에는 두 손을 다 들었어요그때만 해도 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패기 넘치는 학생이었어요특별히 엄마가 거짓말을 많이 했는데 그냥 넘어가지를 안고 따지기를 시작했지요그 대가는 혹독하여 제 인생을 망쳤지만요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연약해서 거짓말을 해야만 되는 입장이 있었던 것이죠내가 미숙했어요.”

 아우는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 입에서 질서 정연하게 술술 나왔다.

 둘째는 오빠가 지나치게 모범생이었어요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순종하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모두 좋아했어요나는 중간에서 샌드위치였고요여동생 여우는 공부도 잘하고 영리하여 자신의 이득을 잘 챙겼지요반사이익을 많이 얻었지만 엄마는 엄마 편을 잘 들어준 동생을 사랑했어요자식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는커녕 동생한테 너는 약아빠지고 꾀보라서 잘 살 거야라고 했지요그러니 동생은 계속 약삭빠르게 살아갔어요동생은 엄마의 끄나풀 노릇도 했어요그 사이에서 나는 분노만 쌓이고 갈 길을 잃었어요.”

 아우님이 설 자리가 없었겠네.”

 딸의 주민등록을 언니에게 부탁한 때가 제 생의 최악이었어요딸이 학교에 못 갈 거라고 생각하니 부모가 더 미워졌어요하루에도 여러 번 자살할 생각도 했고요엄마아빠 다 교육자이신데 내 자녀는 초등학교도 못 보낸다고 생각하니미칠 것만 같았어요.” 

 그래힘든 일 잘 이겨냈어나도 그 일 이후에 시집살이에서 조금은 벗어났어불의에 도전하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지시누이들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어.”

 새언니가 대단하지참 괜찮은 사람이긴 해.”

 그래우리도 시누이라고 함부로 하거나 비겁하게 보이면 안 되겠어.” 

 시집살이가 한계를 넘어 부당하게 느껴질 때한바탕 하려고 작정한 거 같았어.”

 새언니 얼굴에 그렇게 써졌지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

 시댁 식구들도 처음에는 동생의 집에 가서 머리채를 잡고 살림도 때려 부수자고 하였어내가 어느 시대의 신파조 이야기냐며 적극적으로 동생을 해명하고 이해시키고 말렸지나중에는 아무 말도 못 했어. 그 일로 나는 일은 못해도 사람은 정의롭다고 평을 받게 됐고.”

 시누이들이 언니한테 함부로 하지는 않지요?”

 나는 처음에 항상 기가 죽어 살았어. 8대 1로 덤비니까 나는 짹소리 못하고 쥐구멍만 찾게 되었지.”

 , 8대 1인가요그럼 남편은 누구 편이었나요?”

 자연 시댁 편이었어내 편은 아무도 없었어. 8이라는 숫자는 내가 시집오기 전에 원식구가 8명이라는 뜻이야시부모님하고 자녀 6명이니까, 8명이지시댁은 꼭 그렇게 식구들 숫자를 셌어나중에 슬쩍 나를 넣었고.”

 이상한 호구조사네요.”

 그런 것쯤 넘어갔지나는 어려워도 옳은 일을 할 때살맛이 나는 사람인데그동안은 그렇게 살지 못했어. 이 일은 확실히 내 뜻대로 밀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

 내가 미웠을 텐데왜요?”

 왜냐면 어린아이의 앞날과 연관된 일이었기 때문에반드시 도와주어야 된다는 확신이 섰던 것이지.”

 처음 언니가 주민등록을 해 준다고 했을 때그때 처음으로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졌고 아직은 살만한 세상인 거 같았어요아버지한테 가서 따질 구실이 생겼지만 막상 아버지를 보자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어요그냥 언니 이야기만 했어요아버지가 나를 안아주면서 미안하다고 울먹였어요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하며 동사무소에 가서 제 딸을 아버지의 딸로 직접 등록해 주었지요호적상으로는 내 딸이 나의 동생이 되는 셈이었어요나머지 이야기는 들어서 잘 아시지요?”

 남편한테 들었어아버지하고 화해도 했다고.”

 엄마도 저한테 미안하다고 여러 번 말했어요세월이 엄마를 변화시켰어요아니언니가 아주 어려운 친절을 베푸니까 나도 변하고 가족도 변하기 시작했지요.” 

 가족이 변해서 참 다행이야.”

 요즘도 어떤 교사들은 자기 반 학생들에게 전체에서 1등 하는 반이 되라고 공부를 지나치게 시키나 봐요.”

 “1교사의 승진과 대리만족이지교사는 먼저 자신의 인성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해학생들도 인성이 첫째이고 그다음이 공부지.” 

 맞아요남을 돕고 인정받고 기분이 좋으면 공부는 저절로 하고 싶어 지지요. 그런 아이들은 학원을 훨씬 적게 다닌다고 해요.”  

 내 친구 딸은 이름 있는 대학 체육과를 다녔는데자기가 존경하는 은사가 정부와 검은 손을 잡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어뉴스에 나오는 고개 숙인 교수를 보자 교육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대.”

 몇몇 교사 교수들의 인성이 문제지요그러나 돈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 젊은 교사도 있어요.”

 친구 딸은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 해 체육과를 졸업하고다시 수능을 공부하고 시험 봐서 교육대학에 들어갔어물론 때로는 교장이 간섭하더라도 그 한 시간은 자기의 몫이니까 혼탁한 세상에서 올바르게 가르쳐보고 싶었대지금 교육대학 2학년쯤 됐을까그런데 요즘 코로나로 인해 건강 체육이 뜨고출생률은 낮아 학생들은 점차로 줄고 있어출생률이 낮아지니까 속상한 내 친구가 딸에게 비꼬면서 한마디 했어.”

 너는 세상을 거꾸로 사는구나출생률도 적어지는데 교대에 참 잘 들어갔다.”

 엄마나는 세상과 비교받고 싶지 않아내 소신껏 살고 싶어나는 엄마하고 도저히 같이 못 살겠어.”

 딸은 바로 짐을 싸고 나가더래.”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잘못했다고 딸한테 가서 싹싹 빌고 집으로 간신히 데려왔지.”

 맞아요가족은 서로 싸우고 도우며 같이 사는 거지요우리가 생태계를 좋아하는 이유도 공생의 원리가 있어서요상부상조서로 잘못해도 함께 사는 것이죠.” 

 동생은 조근조근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언니참 궁금한 것 있는데 물어도 되는지요?”

 세게 물지 말고 살짝 물어봐.”

 그때 언니는 남편이 밉지 않았어요?”

 당연히 미웠지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모든 남자는 다 불륜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바람 폈다고 거짓말 안 하고 솔직히 말했으니까 넘어간 것이지그래도 조금 앙금이 남아 있다고 할까잊을 수는 없지.” 

 그럼 저를 용서해 줄 수 없어요?”

 사실용서하기 전에 동생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였어동생은 살기 위해 직업을 선택했어윤리적으로는 어긋났지만남편은 가정 있는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중한 가족을 버렸어본능을 왜 이렇게 허비할까고민을 많이 했지.”

 본능을 허비하지 않는 방법도 있나요?”

 당연히 있지본능을 건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지본능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야그것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해.”

 그래서요?” 

 나는 동생을 이해하기 전에 딸을 먼저 생각했어그 후 동생을 이해하게 되니까 용서하게 되더라고남편은 훨씬 후에 용서하게 되었어.”

 나보다 남편이 더 미웠군요.”

 그런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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