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부부 성장기
주부라는 자리, 마음속으로 여러 번 사표를 쓰고 혼자 살고 싶었지만, 좀 더 참아보자 하며 며칠 파업하기로 하였다. 누가 빨래는 세탁기가 혼자 한다고 엉뚱한 이야기를 했는가, 절대 아니다. 빨래를 구분하고 옷의 성분과 색깔을 나누어 통에 넣어야 하며, 햇볕에 널어 손질하고 잘 개어 각자의 방 위치에 넣는 것도 바쁠 때는 시간이 꽤 걸린다. 그러나 육체노동으로 파업하지는 않는다. 정신적인 것이 더 힘든 것이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자 시누이가 말했다.
“오빠, 새언니는 날마다 놀고먹어. 우리 엄마는 시골에서 하루 종일 농사일이랑 밭일이랑 정신없이 일하는데, 새언니는 아침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더라고. 아이하고 놀고, 청소하고, 시장 가고 밥하고 하는 일이 그것뿐이야.”
“그거면 됐다. 엄마는 원래 농사를 지신 분이고, 새언니는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니까 좀 이해를 해주자.”
“오빠는 언니 편이야, 엄마 편이야?”
“내편, 네 편이 어디 있어? 사는 동안 각자 자기 할 일하고 지킬 것은 지키고 살면 되는 것이지.”
“내가 뭐, 무엇을 안 지켰는데?”
“잘 지켰다면 됐어. 그만하자.”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오빠는 새언니 편만 든다고.”
“제발 말 좀 들어. 오빠 말 안 들으면 혼낼 수도 있어.”
“그래, 한번 때려보라고.”
시누이는 눈을 흘기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도를 넘는 시누이의 행동에 남편도 화가 난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한 시누이가 고소했지만, 내일 남편이 출근하고 난 후, 시누이와 같이 있을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며 궁리를 했다. 모든 것은 결혼한 내 잘못이었다. 새벽에 나는 짐을 쌓다. 아래층에 세 들어 사는 할머니에게 지혜를 구했다. 할머니는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주일 정도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쉬고 싶었다.
할머니가 조용한 곳이라 하며 안내한 곳은 서대문구 불광동 깊은 산속에 있는 기도원이었다. 자연히 하루 한 번 예배시간이 있었다. 나머지는 자유 시간이었다.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해주는 밥을 먹고 자연과 함께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다. 처음에는 불평만 나왔다. 하루 종일 불평과 원망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다음날, 어제 불평했던 일이 미안했다. 내 잘못도 있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금식이라는 것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밥을 굶기며 불평하는 에너지를 잠재우려 하는 의도인 것이다. 나쁜 힘을 빼고 좋은 에너지를 채우는 일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일주일 금식을 작정했다. 금식을 선언한 것이 후회되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밥과 국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기도도 안 되고 먹고 싶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먹고 싶은 욕망을 버려야 산다. 음식을 못한다면 결혼을 안 했어야 했다. 아니면 시집식구 없이 살든지. 몸이 지치니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분명한 것은 내 잘못이었다. 전쟁에 나간 군인이 총을 못 쓰는 격이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열심히 일하고 사는 일상이 소중한 줄을 깨달았다. 또 시원한 콩나물국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잘 먹고 일 잘하고 자녀에게 남편에게 시누이에게 성실한 것이 밥 굶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먹는 욕망을 참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잘 먹고 건강만 하다면 무슨 일이든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와! 일주일, 금식 끝 날이 닦아온다. 금식도 내일이면 끝난다. 오후쯤 할머니가 중앙일보 광고지를 가지고 찾아왔다.
‘여보, 어서 와. 모든 일은 다 잘되었어. 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니 빨리 집으로 와다오.’
나를 찾는 광고였다. 내일이면 금식이 끝난다. 집에 가면 죽을 먹고 아이들을 돌보며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겠다. 잘 먹고 열심히 일하고 모두를 사랑해야겠다. 시누이가 시비를 걸던 무엇이 문제이랴. 나는 나의 식솔들에게 최선을 다하리라. 이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다시 그리워지는 때가 올 것이다. 이제야 깨달은 나는 철부지 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