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날마다 새날처럼 살라!
선희는 내 고등학교 친구였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여 선망의 대상이었다. 고·2 때 우리는 짝꿍이 되었다. 청소 안 하고 살짝 빠지는 일, 교사 속이는 일, 수업 빼먹는 일, 등을 우리는 가끔 저질렀다. 그는 내 유혹의 단맛을 살짝 즐겼으나 빠지지는 않았다.
지금의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는 교육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다. 좋은 선생이 되었고 결혼하여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었다. 몇 달 전, 남편이 암으로 하늘로 간 후부터는 자주 만났다. 어느 날 그가 편지 한 장을 들고 나타났다.
엄마!
엄마가 카드회사의 독촉장을 받을 때쯤, 아마 나는 알래스카에 있을 거야.
엄마는 몰랐겠지만 진즉 나는 병에 걸렸어.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대. 이 몹쓸 병은 엄마가 주었어.
사랑의 차별이지. 배고픔만큼 차별도 고통스럽고 아파, 엄마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오빠를 진심으로 사랑했어. 나에게는 가식적이었지. 내가 불평을 하면 “나도 몰랐는데, 그랬네. 미안해.”하며 빠져나갔지.
칠 년 전, 아버지와 알래스카로 가족여행을 갔었지. 나는 회사의 면접시험 때문에 갈 수 없었어. 어려운 1차 시험을 합격한 후여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엄마는 여행보다는 취업이 더 중요하니까 섭섭해하지 말라고 했어. 다음에 엄마가 꼭 보내준다고 약속까지 하였지만 엄마는 약속을 잊었어. 왜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엄마만 기억이 날까? 사랑도 함께 주었는데.
엄마는 나와 놀아주는 기억보다 훈계하는 모습만 남았어.
엄마가 혼낼 때마다 나는 속으로 고함쳤어.
“엄마,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가정이야. 나는 학생이 아니라 딸이라고, 딸!”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어.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도 조금은 있는 지를.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왜 섭섭한 생각만 남는 것인지.
추운 곳에서 냉철하고 상식적이며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었어.
엄마, 나도 엄마를 이해하고 차별받았던 일을 잊고 싶어 떠나는 거야.
이제 나도 엄마가 되었는데, 엄마답게 살아야지 원망만 할 수는 없잖아.
이 카드는 옛날 엄마가 만들어 준 거였는데 살아있었어. 이제 찢어버릴 거야.
엄마, 카드빚은 엄마가 조용히 해결해 줘, 누구한테 알리지 말고.
엄마, 옛날 약속한 여행을 지금 갚는다고 생각하면 덜 억울할 거야.
엄마, 건강하세요. 저는 태평양에 쓸데없는 생각 다 버리고 올게요.
선희는 나에게 편지를 내밀며 울상이 되었다.
우리는 딸의 신뢰를 되찾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니 인내와 꾸준한 사랑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일로 선희는 교만했던 자신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려운 사람은 왜 있는지, 신은 있는 것인지, 있다면 자신을 용서해 주고 새로운 구원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지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지, 그동안 자신은 보여주기 식으로만 살아왔다고 하였다.
선희는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잘못 살아왔던 이야기들을 모범생답게 공책에 쭉 적어왔다. 그의 공책에는 내가 후회했던 내용들도 적혀 있었다. 우리는 자신을 용서하고 세상을 더 따뜻하게 보게 되었다.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