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터닝포인트
그 당시 의욕이 나지 않는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나는 할말이 없었다. 일단 자취방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노력하기 싫었다. 그냥 우울했다. 수험공부를 하려해도 늘 제자리였다. 도서관에 한번 나가고 다시 자취방으로 왔다. 그저 유튜브, 게임방송, 핸드폰게임이나 하고 있었다. 무기력하고 또 무기력했다. 아마 계속 혼자 지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의 연락에는 그저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끊는다. 잠시 동기부여 영상이나 공부계획을 세우지만 이내 다시 되돌아온다.
그럴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게 싫어졌다. 다 잘되고 나만 이대로 남을 거 같았다. 질투나 열등감과 비슷하면서 다른 감정이었다. 뭔가 내 마음이 이상했던 것 같다. 시험을 그렇게 또 망쳤다. 아니 공부도 안했는데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불합격에 너무나도 익숙해지던 때 나는 서울에서 본가인 평택으로 내려갔다. 시험공부는 그때부터 했다. 오래간만에 온 집은 그나마 나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생활에 비해서 뭐라도 쌓이는게 있었으니까 독서실과 집을 왔다갔다하면서 코로나가 왔고 시험을 쳐야할 때가 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3년 정도 후에 나는 겨우 합격을 할 수 있었다. 지금와서 보면 내가 혼자 계속해서 공부를 하겠다 했으면 끔찍하다. 그 분위기에서 도망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억지로 그날을 기억해본다. 오전에 시험을 치고 나는 부모님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굉장히 우울하게 지하철을 타고 시험장에 도착해서 예견된 실패를 하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고 엄마나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내려오라고 한 건 아빠였다. 나는 그래야 겠다고 말했다. 울었던 것 같다고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울고 싶었던 기분인건 확실하다. 부모님 차를 타고 내려가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안좋은 기억은 빨리 지워버려서 그런걸까. 날씨는 좋았었다. 차도 막히지 않았었고 그때 나는 뒷좌석에 탔다. 엄마는 나보고 잘 생각했다고 말했던 것 같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 나는 할말이 없었다. 이젠 다를 거라고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은 다 제대로 돌아가는 데 문제가 있는 건 나뿐이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나를 믿을 수 없는데 나를 믿을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서 못하겠으면 내려와라.'
내려오고 나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다행히 실력이 늘었다. 꿈도 꾸지 못하던 1차까진 합격할 수 있었다. 성적이 오르고 안정될 수록 마음도 안정되었다. 이제 합격이 하고 싶었다. 국가직 시험을 잘 쳤던 날 나는 뿌링클 치킨이 먹고 싶다고 말하고 사와서 먹었다. 가채점 결과 충분히 합격이 가능한 점수였다. 그렇게 나는 합격을 했고 나를 잡아 끌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오늘 오래간만에 다시 불합격의 늪에 빠져 들었다. 내 인생에 익숙했던 3글자 불합격
작년 공직문학상에 도전할 때는 제출한 것만으로도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했다. 올림픽 정신으로 참가를 했었고 2만자의 분량의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이룬 것 같았다. 올해 출품작은 약간 자신이 있었다. 작년의 그 글찌꺼기보다는 줄거리도 있고 단편소설로서 형태를 갖춘 것 같았기 때문이다. 1차 심사결과가 나오는 날 몇번이나 연금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하며 1차는 통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쉬웠다. 나는 스스로 내가 물었다. '왜 아쉬워 하는거야?' 그건 작년에 첫출품 했던 찌꺼기들보다 이번에 제출했던 게 약간은 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아쉬움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운다고 했다.
이제서야 나는 5년전 내 상태를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패배에 너무 익숙해졌던거다. 패배에도 분해하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패배는 잘못이 아니다. 세상 모두가 성공을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패배에 익숙해지는 건 잘못된 거다.
그걸 알게 된 시험을 망친 그날 덕분에 나는 합격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기억하기도 싫은 우울한 기억이지만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패배에 익숙해지기 전에 뭐라도 해야한다. 발악도 좋고 정면승부도 좋고 도망도 좋다. 아무튼 뭐든 해야한다. 패배에 익숙해지기 전에 뭐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