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 수치심

주제:내안의불안

by 드래곤실버

"다른 사람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는 것처럼 저에겐 근거 없는 수치심이 있어요."


나는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는 연애프로그램 '모솔이지만 연애하고 싶어.' (이하 모연애)를 애청중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은 직장 동료들에게서 해당 프로그램을 몇번 이나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분은 '모연애 보니 주사님 생각이 났어요.' 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직접 시청을 하고 나니 그분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것 같았다. 연애프로그램이라고는 하나 연애 보다는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나왔다. 출연진 중에서 특히 노재윤이라는 분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말하며 본인에게는 근거없는 수치심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모연애에서 남자 출연자인 재윤은 계속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출연진은 고사하고 남성 출연진에게도 말을 걸기 어려워하고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런 행동이 상대방에게 오해를 산다. 상대의 반응이 부정적이면 재윤은 상대방의 반응에 주늑이 들고 눈치를 본다. 정작 눈치를 보면서도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해명을 하거나 상황을 해결하진 못한다. 본인이 해야 할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까봐 걱정한 탓이다. 그럼 상대방은 행동이 없는 재윤을 보고 다시 불만을 말한다. 그제서야 재윤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다시 깨닫고 자신의 탓을 한다. 자책하는 재윤씨를 보며 패널이 두둔해준다.


'저런 타입이 남을 많이 신경 쓰거든요. 남에게 피해를 안끼쳐고 남에게 상처를 안주려고 노력하는 그러다보니까. 혼자서 어떻게할지 몰라 하다가 아니라는 표현을 자신의 방식으로 했는데 결과가 상대방이 화가 이건 또 내가 뭔가 잘못했구나. 생각하는 거에요.'


나 또한 재윤씨처럼 장고끝에 악수를 두는 타입이다. 상대방에대해서 배려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반응 하나에 갈대처럼 흔들리고 다시 주저 앉고 혼자 고민하다가 시기를 놓치고 잘못되면 다시 혼자 부끄러워하고 힘들어하고. 작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 하는 그의 모습에서 내가 오버랩되었다.


아마 그는 속으로 '내가 또 실수했구나.' 라고 되뇌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더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한 경험들을 계속 학습을 하게 된 결과가 '근거없는 수치심' 인 것이다. 나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연애는 안보고 왜 이런걸 공감하면서 보고 있는 걸까.


그건 그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소개팅도 저랬던 것 같고 내 학창시절이 저랬던 것 같고 회사에서도 사람들과 친해지기 전 내 모습이 저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감이 부족해 보인다는 말을 늘 들었다. 자신감 부족해 보이는게 아니라 실제로 부족했었다.


그래도 현재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많이 극복했다. 취직을 해서 좋은 동기를 만나고 좋은 동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함께 놀러도 가고 잡담도 나누고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독서 모임에도 자발적으로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내 불안의 모든 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싫은 사람을 만나거나 혼자 있고 싶은데 자꾸 귀찮게 군다던가 하는 등 그래도 나쁜 사람과 싫은 사람과의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역시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게 아닌가 한다. 참 역설적인 상황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끼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오니까.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툭툭 튀어 나오는 수치심에 부끄러운 생애를 보내며 괴로워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은 만큼 나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사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건 결국 사람으로 하는 건가 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근거없는 수치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끝을 낸다.

이전 01화패배에 익숙해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