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과 헤어질 결심

주제:나에게기쁨을주는것

by 드래곤실버

"헤어질 결심 진짜 재밌다. 올해 본 영화중에서는 최고다."


아빠가 나한테 말했다. 우리 아빠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정확히는 '영화관에서 집중한 상태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컴퓨터 화면이나 TV로는 집중하기 어렵다나. 그런 고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빠의 취미다. 그런데 아빠가 요즘 영화 하나에 크게 빠졌다. 그 영화는 '헤어질 결심' 이다. 아빠의 영화 취향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일단은 무협 영화 칼싸움을 하고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날라니면서 장풍을 쏘는 그런 영화를 아빠는 좋아한다. 예를 들자면 와호장룡같은 영화. 또 다른 종류로는 잘만든 세계관의 SF 영화를 좋아한다. 예를 들자면 듄같은 영화.


"아빠가 좋아하는 영화랑 많이 다른데. 그 영화 진짜 아빠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빠는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헤어질 결심 대사집과 화보집까지 살 정도였다. 보통 영화에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너희 아빠 외삼촌하고 사이 안좋은거 알지? 근데 삼촌이 헤어질 결심 봤다고 하니까 곧바로 돌아앉아서 헤어질 결심 봤냐고 얘기를 하더라.'


엄마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아빠는 헤어질 결심을 정말 좋아하는 거였다.(아빠가 외삼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감안을 한다면) 거의 내가 포켓몬을 좋아하는 것만큼 아빠는 헤어질 결심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포켓몬 신작게임이 발매하는 날이다. 그 해서 포켓몬 게임팩을 사러 뛰쳐 나왔다.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아침부터 마트에 오픈런을 할 작정이었다. 내 계획을 알게 된 아빠는 자기도 운동할 겸해서 같이 마트에 걸어가자고 했다. 집에서 마트까지는 걸어서 20분정도 걸린다. 걸어가면서 아빠는 내게 헤어질 결심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박해일의 연기력과 탕웨이의 미모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해당 작품 주인공 인 박해일역의 형사 캐릭터 모티브가 덴마크 소설에서 비롯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빠 그 영화에 모티브가 된 덴마크 형사 소설을 빌렸다고?"


"응. 도서관에 없어서 신청했다."


아빠가 가는 도서관은 조그만 동내 시립도서관이었다. 덴마크 형사가 주인공인 소설이면 우리 아빠가 빌리고 나면 그 책은 악성 제고로 남는게 아닐까. 아니면 우리 아빠만큼 헤어질 결심에 진심인 사람이 평택시 장당동에 또 있을까.


"박찬욱이가 영화는 잘 만들어."


"감독보다는 탕웨이가 이쁜게 더 큰 거 아니야?"


"그런 점도 크긴 하지."


"영화가 엥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요즘 나온 영화 중에서는 제일 재밌더라."


"그거 전투기 나오는 영화 인기있었는데 맞아 탑건."


"그건 시끄럽고 재미없더라. 나는 그게 왜 그렇게 평가가 좋은지 모르겠다."


나와 아빠는 잡담을 하며 집근처 홈플러스에는 1등으로 도착했다. 게임팩을 파는 전자제품 매장은 2층에 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침착하게 2층으로 향했다. 매장에는 종업원이 없었기에 카운터에 문의를 했다. 신작 포켓몬 게임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 상황에 나보다도 아빠가 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팜플렛에 오늘 발매라고 했는데 왜 안파는 거야."


"아빠 그럼 이마트로 가자."


나는 내심 기뻤다. 특전은 이마트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걸어가기 먼 거리였기 때문에 차를 타기 위해서 우린 다시 집으로 와야했다. 오면서는 내가 아빠에게 포켓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오늘 게임이 발매되면서 포켓몬이 1000마리가 넘었어. 세대 부분은 본가 게임에 발매되면서 구분이 되는데 오늘 본가 게임이 발매가 돼."


"이상해씨는 그럼 몇새댄거냐?"


"1세대.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포켓몬은 다 1세대 포켓몬이라고 생각하면돼. 피카츄, 리자몽, 고라파덕, 잠만보 이런애들은 다 1세대야."


"오늘 나오는 게임은 몇새댄데?"


"이제 9세대야."


"그럼 1세대에 100마리 좀 넘게 나오는 가 보네. 너는 그거 다 외우냐?"


"대강은 다 알지."


나와 아빠는 잡담을 나누며 집에서 도착해서 차를 타고 우린 이마트로 향했다. 평일 오전이고 출근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막히는 것 전혀 없이 이마트에 도착했다. 이마트는 2층 일레트로닉 매장에서 게임팩을 판다. 다행히도 이마트에는 게임팩도 첫날 특전인 뱃지도 있었다.


이걸 위해 합격했다고 하면 과장은 아닐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포켓몬은 내 합격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험생활 동안은 새로운 게임기를 살 수도 새 게임팩을 사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집에 빨리가자."


아빠가 말했다. 역시 내 마음을 잘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다림은 엄청난 고통이라는 걸. 수험생활이 끝나고 4년 만에 하는 포켓몬은 정말 재밌었다. 날씨는 좋았고 좋은 날씨에 집안에 틀어박혀서 게임을 하는건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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