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아메리카노

10년 후 나에게

by 드래곤실버

크리스마스 연휴 마지막 일요일 카페. 연휴가 깊어질수록 카운터 앞에 알바생의 표정에는 영혼이 없어지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키오스크 앞에서 고민 중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느냐 아니면 말차라떼를 먹느냐. 나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말차라떼, 돌체라떼, 헤이즐럿라떼, 망고스무디, 등등 이 카페에서 다른 음료를 먹으면 늘 후회를 했었다. 결국은 아메리카노가 제일 나은 선택이다. 그리고 오늘도 빵을 사는 상상을 한다. 먹으면 살이 찌니까. 늘 먹는 상상만 한다.


진동벨을 들고 오늘도 2층 창가자리 쪽에 앉았다. 태블릿과 책을 탁자 위에 꺼내 놓았다. 노점상이 좌판을 벌리듯 오늘 영업 시작을 하는 기분이다. 단 아직 메인인 아메리카노가 준비되지 않았다. 나는 창밖 풍경을 본다. 홍성다운 한적함이 보인다. 내년에도 여기 있는 건지 확실하진 않지만 이 여유로움을 그리워할 때가 다시 오겠지. 이제 아메리카노까지 준비가 되었다.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었다.


연말 분위기, 크리스마스 그런 것과 관계없이 나는 외딴섬처럼 시간을 보낸다. 내년에는 쓰고 싶은 소설에 대한 구상과 유튜브롤 보며 새로 나온 메가 진화포켓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책을 읽고. 그때 진동벨이 울린다. 그리고 준비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신다.


오늘은 어째 평소보다도 더 씁쓸한 것 같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일을 하는 알바의 서러움이 한 스푼 첨가 된 모양이다.


내년에 쓸 소설을 생각해 본다. 브런치에 10화 이상의 분량으로 연재를 할 생각이다. 그러려면 첫 계획을 잘 짜야한다. 충동적으로 연재를 시작했다가 10화 분량 채우는 게 어려워서 고생을 해봤으니 이번은 시작부터 신중하게 시작을 할 생각이다. 소설의 시작은 작명부터 이다. 그리고 적당한 제목을 생각하고 그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시점은 어떻게 정해야 할지 어떤 재미를 줄 수 있을지 등등을 고민한다.


“이렇게 고민을 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쓰다가 말겠지.”


그다음 고민 이번 주 글쓰기 모임의 주제인 '10년 후 나에게 편지 쓰기' 나는 몇 번 글을 시도해 본다.


놀랍게도 글의 시작이 똑같았다.


'결혼은 했니?'


10년 후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10년 전의 나. 네가 노력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연대책임이라고 생각 안 해?'


그럼 나는


'아니 나는 지금 홍성군에 살고 있는데 여기서 결혼할 여성을 찾는 건 나한테는 연금술 하는 것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니콜라스 플라멜(*유명한 연금술사이다.)도 인간을 만들어내진 못했잖아.'


이렇게 대답을 할 것이다. 그래 여자문제는 그렇다 치고 그다음은 어떨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일단 글을 계속 쓰고 있는지 혹시 책이라도 출간했는지 매년 참가하는 공직문학상은 계속 참가했는지 책은 꾸준히 계속 읽고 달리기 운동도 꾸준히 하는지 여전히 포켓몬을 좋아하는지 회사는 계속 잘 다니는지


물음표 천국이다. 이런 글은 재밌지도 좋지도 않으니 나는 글을 지운다.


그리고 다시 결혼은 했니?로 아 이거 진짜 아닌데.


어째 명절 때 내 옆에서 눈치 보면서 지금 만나는 여자는 있니? 를 입에 내뱉고 싶어 하는 껄끄러운 친척어른 역할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나는 씁쓸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다. 10년 후 나에게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 이 상황이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혼자 글쓰기 포켓몬 유튜브 보고 게임하고 시간을 보내는 작은 즐거움. 그때의 나도 이 즐거움을 알고 있었으면 한다.


그러고 보면 10년 후 나에게 나는 바라는 게 많았다. 지금의 나에게서 10년 지났을 뿐인데. 아마 그때가 되면 나는 더 아저씨가 되었을 거다. 10년 전에도 포켓몬을 좋아했으니 10년 후에도 포켓몬을 좋아하고 있을 거고. 회사도 계속 다니고 있겠지. 운이 좋거나 노력을 많이 했다면 출간작가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만. 슬픈 일도 많이 겪었을 거도 즐거운 일도 많이 겪었을 거다. 10년 후 나는 잊어버린 것도 잃어버린 것도 많겠지만 지금 내가 즐기고 있는 변덕스러운 아메리카노 이것 하나만 기억하며 지냈으면 좋겠다.